[부고] 농사짓는 동양철학자 김성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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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23:15 | 최종 업데이트 2019-02-27 23:43

지난 25일 새벽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경북 경산 도깨비농장 김성범 씨의 유해가 대구 명복공원에서 화장 후 경북 영천 청통추모관에 모셔졌다. 향년 58세, 유족으로 아내 서성혜와 자녀 김정호, 김동희가 있다.

▲지난 25일 새벽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경북 경산 도깨비농장 김성범 씨의 유해가 대구 명복공원에서 화장 후 경북 영천 청통추모관에 모셔졌다

고인은 뉴스민 창간해인 2012년 주말판 '노는날'에 '김성범의 동양철학 다시보기'를 연재하며 유학자로서 날카롭게 사회 문제를 비판했다. 유기농법으로 복숭아와 포도, 자두를 생산하는 농부인 그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지 10여 년 만에 최상의 과실을 키워냈다.

대구 지역의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교류가 있어 자주 문화예술 행사장을 찾았고, 해마다 그들을 그의 과수원에 불러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마을을 위한 갖은 노력으로 주민의 지지를 얻어 경산 신월리 이장을 세 해째 맡았다. 새봄을 맞아 새 꿈을 꾸던 그가 아내와 두 자녀, 그의 과수원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다.

▲노태맹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함께 참석한 고인과 아내 (사진=정용태 기자)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보낸 고인은 경북 영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구 계명대 철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시간강사로 강단에 섰다. 이후 아나키스트 철학자 하기락의 영향으로 화담 서경덕에게 매료되어 동양철학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양명학자이자 아나키스트인 유명종 박사를 찾아 동아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마쳤다. 1998년 <전통문화와 미래사회>를 공저했다.

시간강사 일과 함께 수성구에 한문과 철학을 가르치는 '정동서당'도 운영했는데, 당시 논술고사 바람으로 성황이었다. 이후 2004년 비정규교수노조 대구대분회 결성에 나서고 몇 해 동안 노조 활동에 함께했다. 그 무렵 그는 농사를 꿈꿨고, 이듬해 장인의 과수원을 구입해 처가 이웃마을인 경산 신월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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