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폐허가 된 후쿠시마를 다녀와서 /김익중

제3회 피폭, 의료, 후쿠시마 심포지움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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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10:06 | 최종 업데이트 2019-03-22 10:06

[편집자 주=이 글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의사회’ 2-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일본에서 열린 ‘제3회 피폭, 의료, 후쿠시마 심포지움’에 다녀왔습니다. 김익중 교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게재합니다.]

2019년 3월 10일 후쿠시마 시에서 열린 ‘피폭, 의료, 후쿠시마 심포지움’에 참가했습니다. 이 행사는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기리고,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열린 심포지움이었습니다. 주최는 지난 수년 간 우리 반핵의사회와 교류해온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이며, 2015년부터 시작하여 격년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가 3회였습니다.

후세 사치히코 원장님의 인사말로 시작된 심포지움 발표자는 3명이었습니다. 첫 번째 발표는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체계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해주신 야가사키 카츠마 교수였습니다. ICRP와 일본 정부가 핵사고 이후 일본 국민의 피폭량을 어떻게 축소 발표하고 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발표였습니다. 참고로 야가사키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피폭량에 관하여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입니다. 저는 ICRP의 속임수에 대하여 대충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 강의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과학적 사실들이 많았습니다.

두 번째 발표는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서 병원장으로 근무하시던 정신과의사 와타나베 미즈야 선생님이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자신이 원장으로 있던 병원이 피난해야 하는 지역에 있음을 알고서 수백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직접 피신시키고 모두 믿을만한 의료기관으로 직접 이송시켰던 분입니다.

와타나베 선생님의 발표는 주로 정부가 핵사고 이후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피폭에 의한 건강 피해는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데 대한 분노와, 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가 피해정도를 숨기고, 피폭량도 축소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위한 이분의 노력은 정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8년간 신문의 부고란을 모두 정리하여 후쿠시마현에서 최근 젊은 사람들의 부고가 늘었다는 통계를 냈습니다. 정부가 숨기고 있는 핵사고의 건강영향을 확인하려는 감동적인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발표는 한국의 탈원전 정책에 관한 설명을 한 저였습니다. 저는 이 심포지움에서 3번 연속 발표했으니, 고정출연자가 된 셈입니다. 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 탈원전 선언과정, 원자력계와 야당의 저항, 앞으로의 과제 등을 설명했고, 방사능의 건강영향에 관한 대규모 역학조사인 INWORKS 연구를 소개하였습니다. 청중들은 특별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심포지움이 끝난 후에 청중 중 한분이 “내 생각과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시켜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는데 의학지식이 없는 주민 입장에서 이사를 해야 할지,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할지, 어떤 음식을 사먹어야 할지 등 여러 가지 상황 판단을 하면서 겪은 고뇌들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 심포지움에서 발표하는 모습입니다. 옆에 계시는 분은 통역을 맡아주신 강혜정 선생님입니다. [사진=김익중]

심포지움 다음날 저는 하루 더 머물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쓰나미 피해지역, 귀환곤란지역, 귀환곤란 해제지역, 후쿠시마 원전 등을 갔습니다.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의 사무국장님이 자기 차를 운전하면서 안내해주셨습니다.

먼저 간 곳은 쓰나미 피해지역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쓰나미 피해 잔해들은 이제 거의 다 치워졌습니다. 마치 논처럼 보일 정도로 아주 말끔합니다. 이곳이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살던 동네였다는 것을 알기 힘듭니다. 곳곳에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되어있었습니다. 자기 집이었던 곳에 다시 집을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살던 사람들도 가설주택으로 갔느냐고 국장님께 물었더니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하셨습니다.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쓰나미 피해지역 [사진=김익중]

두 번째 간 곳은 귀환곤란지역이었다가 해제된 지역입니다. 이다테무라라는 곳인데, 비 때문에 이 지역을 구석구석 가볼 수 없었지만 차안에서 측정한 방사능 수치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0.3 마이크로시버트 정도가 측정되었습니다. 도쿄에서 측정한 값이 0.05 마이크로시버트이니 그 6배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지금 웬만한 오염지역에는 모두 주민들을 귀환시키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주던 보조금을 끊으면 별수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정부는 이렇게 예산도 줄일 수 있고, 제염결과 안전하다는 홍보효과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다테무라 뿐 아니라 그 다음에 간 곳인 미나미소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을은 조금 낮은 편이지만 산이나 들 같은 곳은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높았습니다. 미나미소마는 그래도 비교적 방사능 수치가 낮은 곳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피난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설주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가설주택은 많이 비어있었습니다. 그곳에서 8년 동안이나 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가설주택에서 조금 진보한 복지주택이라는 건물을 지어서 거주할 수 있게 했는데, 가설주택보다는 훨씬 나은 건물이었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제법 튼튼한 건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소위 복지주택입니다.

▲복지주택 [사진=김익중]

다음으로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을 향했습니다. 원전에 가까울수록 방사능 수치가 높아졌습니다. 주변은 주로 귀환곤란지역으로 분류되어 건물 등이 거의 폐허상태로 있었습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면서 주도로의 통행만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도로에서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모두 차단되어있었습니다. 이 도로(6번도로)는 방사능 준위가 높아서 주차는 물론 정차도 금지된 도로입니다. 우리는 이 도로를 따라서 후쿠시마 원전 정문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제 방사능 측정기는 거의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 정도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본 수치였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정문 앞에 도달했을 때 사이렌 소리가 났습니다. 매년 3월 11일 오후 3시쯤에는 사이렌이 울리고 국민 전체가 묵념을 올린다고 합니다. 라디오를 켰더니 구슬픈 음악과 묵념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왔고, 아베 총리의 연설이 뒤따랐습니다. 내용을 물어봤더니 ‘오염된 지역이 점차로 회복중이며 점차로 귀환가능한 지역이 늘고 있다, 현재 귀환곤란지역도 머지않아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할 것이다. 후쿠시마의 부흥을 위해서 같이 노력하자’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위험한 곳으로 사람들을 귀환시키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야기하는 후쿠시마 부흥은 바로 주민 피폭량 증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쨌거나 일본 국민들과 함께 묵념을 하였습니다. 묵념이 끝나고 측정기를 살펴봤더니 측정기는 시간당 3마이크로시버트를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원전 정문 근처가 가장 높은 방사능 수치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다음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 정문 앞 모습과 그곳에서 찍힌 측정기의 수치입니다. 동행해주신 진료소 사무국장님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10마이크로시버트를 넘겼을 것이라고 전해주셨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정문 앞(왼쪽), 귀환곤란지역 방사능 측정치(오른쪽) [사진=김익중]

우리는 6번도로를 따라서 황급히 내려갔습니다. 피폭량이 신경 쓰였습니다. 몇 킬로미터 정도 내려갔더니 원자력홍보관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원전 옆에 원자력홍보관들이 있습니다만, 후쿠시마원전 홍보관은 이름이 ‘후쿠시마원전 폐로자료관’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주변의 방사능 준위가 상당히 높았지만 우리는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부에는 핵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도쿄전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사고 이후 처리과정은 어떤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동영상 자료도 있고, 원전 건물의 모형과 작업복 등도 전시되어있었습니다. 흥미로운 동영상이 하나 기억에 남습니다. 그동안 노심용융 잔해를 제거하려고 많은 로봇을 투입시켰으나 고장이 나서 사진도 찍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최근, 그러니까 2019년 2월 말에 고장나지 않는 로봇을 투입하는데 성공해서 노심용융물의 일부를 떼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관련 동영상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수백 톤의 용융물 중에서 몇 십 그램 정도의 잔해를 수거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도쿄전력이 정말로 노심용융물을 모두 제거하려는 계획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100년 내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제거한다 하더라도 보관할 방법도 기술도 없으니까요. 여하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그들이 선언한대로 노력은 할 것입니다. 적어도 노력하는 모습은 일본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요.

▲후쿠시마 원전 홍보관 사진 [사진=김익중]
▲폐로 자료관 [사진=김익중]

우리는 서둘러서 홍보관을 나온 후 다시 후쿠시마시로 돌아왔습니다. 방사능 측정치는 다시 0.05마이크로시버트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다음날인 3월 12일 오전에는 비도 그쳐서 후쿠시마 시내를 조금 산책했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아니 거의 집집마다 초록색 비닐로 덮여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쿠시마 공동 진료소에 물어보니 제염한 것들을 모두 수거해가지 않고 그런 모습으로 곳곳에 방치해뒀다는 것입니다. 거짓말 안보태고 이런 제염토들이 작은 규모로 한집건너 한 개씩 마당이나 구석진 곳에 보관되어있었습니다.

▲오염토 보관모습 [사진=김익중]

한심한 일입니다. 집집마다 그 집에서 발생된 오염토를 각자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염된 흙을 5센티미터 두께로 긁어낸 후 마당 한구석에 모아둔 것이지요. 시내건 외곽이건 너무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던 소위 검은 피라미드도 놀랍지만, 이렇게 한집건너 하나씩 보관중인 오염토 봉지들 역시 놀랍기만 합니다. 소위 제염(除染)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제염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잘못 붙여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한다는 의미의 제염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방사능 물질을 이동시킨다는 의미로 이염(移染)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원전사고는 전혀 수습되지 않았음을 후쿠시마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염토는 다른 곳에 이동된 채 고스란히 남아있고, 수 백 톤에 이르는 노심용융물은 이제 몇 십 그램 정도 떼 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오염지역에는 지원금이 끊겨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이 귀환하고 있습니다. 반핵운동을 하는 분들도 음식의 방사능 측정치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일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의 방사능 오염도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그저 무례한 행위, 혹은 자해행위일 뿐인 상황입니다. 아베 총리의 후쿠시마 부흥정책은 피폭량 증대정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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