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피해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판타지 / 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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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 아저씨의 성추행 때문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형사는 정확하게 진술하라며 나를 다그쳤고, 나는 그때 당시에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진술했다. 형사는 손의 위치, 당시에 아저씨와 나눴던 말들, 왜 그곳에 있었는지 등을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나의 기억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부담감은 조사 내내 나를 압박했다. 최근 윤지오 씨가 한 MBC 뉴스데스크 인터뷰를 보며 지난날이 떠올랐다. 내가 느꼈을 불안함과 압박감이 인터뷰 중이던 윤지오 씨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사 기간에  피해 당사자는 극심한 긴장과 심리적 불안을 느낀다. 피해자는 그걸 온전히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받아들인다. 나 또한 그랬다. 부담감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MBC 뉴스데스크 왕종명 앵커는 윤지오 씨에게 장자연 사건 연루자 중 밝혀지지 않은 이들의 실명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MBC)

왕종명 앵커는 생방송 뉴스의 영향력을 앞세워 윤지오 씨에게 사건 관련 인물의 실명 ‘공개’를 재촉했다. 당사자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방송에서 실명을 언급하도록 강요하는 태도는 무례를 넘어서 폭력이다. 뒤이어 ‘이름을 발언한 자신을 책임질 수 있겠냐’는 윤지오 씨의 물음에 ‘저희가요? 여기 안에서는 저희가 어떻게든지···’라며 왕 앵커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당황스러움에서 언론이 피해자를 그동안 어떻게 대해 왔는지가 드러났다. 왕 앵커의 유도는 윤지오 씨를 위한 선의가 아닌 특종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특종을 위해 ‘뉴스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은 MBC 뉴스데스크가 감당하겠다는 왕 앵커의 말은 허무했다. 결과적으로 왕 앵커가 진 책임은 인터뷰와 관련한 사과문과 사과 방송이 다였다.

피해자를 타자화할수록 제3자인 개인은 사건에 대해서 냉정해진다. 이 냉정은 ‘나’의 피해가 아니기에 피해자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그 객관성은 사건을 해결할 힘이 될 것이란 판타지가 된다. 그래서 피해자의 ‘것’들로 여겨지는 진술과 실명 거론 등을 유도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으로 결론지어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3자의 착각은 피해자의 ‘것’들을 본인들이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이 된다. 왕 앵커가 윤지오 씨로부터 실명을 듣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뉴스 영향력으로 피해자를 책임질 수 있다며 설득했던 개인만의 확신이 그러하다.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의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의 진술을 유도하는 것은 책임을 가장한 무책임한 행동이다. 피해자를 책임지겠다는 섣부른 확신이 위험한 이유는 피해자를 만든 사회 구조의 빈틈은 책임지겠다는 자신감만으로는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고한 사회 구조의 빈틈은 피해를 입은 개인과 그 피해에 공감하는 이들의 유대를 통해 채워진다. 빈틈을 채우는 과정에서 사회는 변화한다.

윤지오 씨가 알고 있는 실명을 ‘발설’하게끔 재촉하는 앵커 개인의 욕심은 피해자를 가십거리로 만들 뿐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윤지오 씨와 장자연 사건을 잊히지 않도록 유도하고 수사 기관의 합당한 수사를 감시하는 여론의 장을 형성했어야 했다. 그게 뉴스가 가지는 영향력이자 가치이다. 피해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은 판타지다. 우리의 몫은 피해자들이 2차, 3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