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세월호와 방탄소년단 /이택광

0
2019-04-15 15:33 | 최종 업데이트 2019-04-15 15:33

2007년에 우연히 스쳐갔던 분을 다시 만났다. 12년 전에 성장 동력을 학교 다닐 때 데모만 하느라 공부를 안 했던 386세대가 말아먹고 있는데 한류가 그나마 희망이라고 말했던 분이다. 당시 이분이 “자기 먹고살 것을 스스로 만드는 20대”로 상찬했던 이들은 이른바 ‘비보이들’이었다. 12년 만에 만났지만 이분은 한결같았다.

이번에 비교 대상은 세월호와 방탄소년단이었다. 방탄소년단처럼 “문화 국가대표”로 손색없는 20대들을 키워줘야지 안타깝게 세월호에서 희생된 이들을 자꾸 상기시키면 국가 성장에 좋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방탄소년단이 컴백하면서 달성한 전대미문의 기록이 이분에게 심오한 고민을 하게 했던 모양이다.

전혀 내 일과 상관없는 분이긴 했지만, 명색이 문화비평가라는 직함을 내세우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이분은 세월호와 방탄소년단의 유관성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는 점에서 아예 본질을 외면하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전혀 무관하게 보이지만, 다름 아닌 ‘국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둘은 밀접하게 엮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이분의 ‘망언’은 나름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방탄소년단을 “문화 국가대표”로 호명하는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이미지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이 국가 이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였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물음은 국위를 선양하는 자랑스러운 “문화 국가대표”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국가야말로 곧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의 국가일 것이다. 나 같은 ‘기성세대’에게 이 국가는 민족이라는 숭고대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민족을 달성하기 위한 ‘애국’에 대한 기억을 ‘기성세대’는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의 기억에 이 국가는 ‘목숨 바쳐 지켜야할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이 민족-국가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위기에 빠트렸던 사건이다. 이토록 목숨 바쳐 지켜야했던 국가가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력한 국가의 모습은 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망자를 애도하는 과정은 대상과 자아를 분리시키는 합리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불가항력적인 트라우마의 경험이었다. 애도할 수 없는 대상은 마음 깊은 곳에서 떠도는 멜랑콜리로 남는다. 이 멜랑콜리를 외면하고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직도 세월호인가”라는 주장을 낳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멜랑콜리는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할 국가가 사실상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깨달음은 지금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와 국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있었던 비트코인 신드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각자도생에 대한 젊은 세대의 집착은 ‘철없는’ 행동이라기보다 국가조차도 보호막 노릇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의 결과물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기성세대’에게 세월호 참사는 성장 가도를 달려온 대한민국에 항상 있던 여러 재난 중 하나였을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 사건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연호하다가 맞이한 최초의 비극이었다. 이 차이는 사소하게 보이지만 근본적이라는 생각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1997년생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막내인 정국이 1997년생이다. 지난해 한 방송국 가요프로그램은 송년 특집으로 1997년생 한류스타 특집을 내보냈다. ‘기성세대’가 자랑스러워하는 한류스타는 말 그대로 ‘한류’의 결과물이다. 이 ‘한류’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일 것이다.

이들은 상호배제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공존하는 하나의 진실이다. 누구는 참사로 희생되었기에 잊어버려야 하고 누구는 국위를 선양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둘 모두를 제대로 기억하는 ‘대한민국’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국가일 것이다.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