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한 영남대의료원 노동자가 13년째 ‘복직예정자’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

16일,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복직 투쟁 선포식 열려

18:12

16일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가 해고자 복직과 노조 정상화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지난 2006년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3일 부분 파업을 벌인 후, 노조 간부 10명이 해고됐다. 조합원 800여 명이 동시에 노조를 탈퇴하면서 노조는 와해됐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고, 2010년 해고자 7명은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복직했다. 하지만 박문진(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송영숙(현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등 3명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날 영남대의료원 본관 로비에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과 민주노총 대구본부 조합원 1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해고자 복직, 노조 정상화”, “해고자 없는 병원 쟁취하자”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해고자는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고 외쳤다.

▲왼쪽부터 박순복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송영숙 영남대의료원 부지부장,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지난 1984년 영남대의료원 영양과 직원으로 입사한 박봉선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지난 2006년 파업 후 해고됐다가 대법원 판결 후 복직됐다. 박 부지부장은 파업 당시를 회상하며 복직하지 못한 3명의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박 부지부장은 “비겁하지 않아서 해고된 이들은 30년 동안 우리 노조와 이 로비의 역사였다. 그 이름만으로 든든한 빽이었고, 따뜻한 동지이자 벗이고 길인 그들을 올해는 반드시 복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고 푸른 스무살에 병원에 입사했습니다. 야채와 생선을 다듬고 요리하고 배선하는 일을 하기엔 버거운 나이였고, 익숙하지 않고 폼 나지 않는 영양과의 일이였습니다. 곧 사무직으로 옮길 거라는 기대로 내일모레면 퇴직해야 하는 이날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면서 고스톱을 치는 거처럼 대의원 순서가 내게 왔고, 어쩌다 노조 사무실에서 가서 듣는 노동 가요는 빨갱이 소리 듣기 딱 좋은 강한 가사와 리듬에 한없이 낯설고 이상했습니다. 게다가 집회에 나가면 빨간 머리띠를 매라는 말에 ‘내 인생 여기서 조지는구나’ 생각하며 줄행랑을 치고 도망가기도 했지예. ‘엄마야, 방송에서 말하는 빨갱이 맞는가보다’ 간부들을 기피했고 노조 대의원대회도 자주 안 갔고 몰래 틈틈이 간부들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영양과 일이 험하다 보니 사고도 많이 나고 그런저런 일들을 갖고 노조 간부와 상의하니 내 일처럼 걷어 붙이고 나서 주었습니다. 사표를 내야하나 늘 망설이고 외로움을 달래며 주눅 들었던 내 어깨가 환하게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함, 직종을 가리지 않고 따뜻하게 품는 간부들의 말, 주말과 밤에도 쉬지 않고 현장에 다니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왜 저카나 싶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서서히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강력한 꼬임에 간부를 맡게 되었고, 서기로 단체교섭에 들어간 첫 날은 간부들의 용맹한 모습에 놀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떨려 한 자도 적지 못한 일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더듬거리던 조합원들이 ‘가자 노동해방’ 노래를 가장 좋아했고, 열정적으로 불리던 우리 노조의 95년 전석절인 50일 파업은 노동자들만 억압하고 탄압받는 세상의 치우친 모순을 알게 했고, 법과 노동부와 언론은 개뻥임을 알게 했고, 직종의 벽을 깨고 우리가 하나된 노동자임을 선언하게 되었고, 전국 동지들의 연대 투쟁은 뼛속깊이 연대의 중요성을 알게 했습니다. 

오백여 명의 백골단이 이 로비로 쳐들어와 우리를 닭장차에 싣고 갈 때도 조합원들의 힘찬 구호와 노래로 차가 몇 번씩이나 서야했고, 그 과정에서 눈이 맞아 연애하는 일도 있었고, 경찰서 가서도 ‘야식 내놔라’, ‘생리대 내놔라’ 기세등등한 그 씩씩함은 대구 지역 전체 경찰서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경찰서에서 풀려나 이 로비를 탈환하기 위해 바로 로비 밖에서 조합원들이 농성과 단식을 했는데 그 조합원들에게 소화기로 물을 뿌리고, 병원 진입 투쟁에서도 의사와 사무직 구사대들은 조합원들을 못 들어오게 패고 담뱃불로 지지기도 하고, 나영명 동지도 사측에 디지게 맞아 옷이 다 찢기고 다치기도 여러 번이었지예.

무상 의료를 위해, 더불어 함께 사는 평등 세상을 위해 많은 선배의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일궈냈습니다. 

그 길에 비겁하지 않았던 그래서 해고된 곽순복, 송영숙, 박문진. 그 이름은 30년 동안 우리 노조와 이 로비의 역사였고, 그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빽이었고, 우리들의 따뜻한 동지이자 벗이고 길인 그들을 올해는 반드시 복직시켜야 합니다.

김진경 지부장님도 육아휴직 끝나고 자연스레 사표를 내면 지금까지 주말부부 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해고자가 있었고 노동조합이 판판이 깨졌기에 복귀하였고. 저도 두 번의 암수술을 하여 명퇴를 해도 욕하는 사람없지만, 내 청춘을 기운나게 했고 꽃길만 걸어도 업어주고 싶은 태산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저러고 있는데 도저히 병원 문지방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엊그제 제 아들을 군에 보내며 많이 울면서도 왜 해고자들이 생각났는지 모릅니다. 씩씩한 이들을 난 군대도 보내는데 그들은 그 많은 것을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미안함 때문일 것입니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같은 정해선 부위원장님이 4월 13일 환갑이었습니다. 부위원장님도 제가 노조를 시작하기 전부터 비켜서지 않고 묵묵히 저희들과 본조를 지키신 역사 자체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소망도 해고자 복직과 성성한 저의 노조를 보는 것이 명예로운 마무리라 하셨습니다.

950명에서 80명으로 조합원들이 줄고 갖가지 잔인한 탄압에 맞서 싸운 간부들은 창자가 녹아내리고 속은 검은 숯덩어리로 탔습니다. 청춘을 바친 노동조합인데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집 나간 조합원들이 이 로비에 다시 모여 해고자 복직과 노동조합이 정상화된다는 것은 우리들의 빛나는 청춘이 부활해 깃발이 되고 함성이 되는 것입니다.

-박봉선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한편, 이들은 오는 24~25일 영남대학교에서 영남대의료원까지 1박 2일 도보 투쟁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