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대추리 주민을 기억하는가, 영덕의 미래는 ‘원전’이 아니다

[영덕핵발전소주민투표-연속기고] (2) 김연주 경북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14:32

잊혀진 가을이 있다. 큰 가을이란 뜻의 대추리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 공사가 진행 중인 곳. 농민들은 “올해도 농사짓자”며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순례하며 투쟁을 이어갔지만, 1만 5천여 명의 공권력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을 거치면서 2007년 봄 강제이주를 당했다. 당시 국가와 언론은 ‘외부세력’이 국책사업을 방해하며 주민을 배후조종한다며 그들을 불순세력, 종북집단으로 몰아갔다.

▲평택 대추리 주민들. [사진=참세상]
▲평택 대추리 주민들. [사진=참세상]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미군기지 건설을 수주했던 대표적인 기업인 서희건설은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아 하도급업체 사장이 분신자살을 했다. SK건설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본사와 기지건설현장에 대해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지역 하도급업체들의 도산과 건설노동자 임금체불이 잇따랐다. 막대한 정부예산이 투입되는 미군기지 건설로 모두가 잘살게 되리라는 지역민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영덕 또한 마찬가지다. 10년 전과 똑같은 논리로 주류언론은 연일 ‘외부세력’을 공격하고, 관에서는 주민투표가 불법이라며 투표 저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듬직한’ 대기업들이 핵발전소 건설로 ‘영덕의 미래를 만들겠다’며 지역민을 상대로 ‘안전한 원전’ 홍보를 자처했다. 수차례 여론조사에서 60% 이상 반대가 나와도 그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주민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려 했으나, 정부, 자본, 언론은 이를 원천봉쇄 하려 한다. 영덕주민투표가 ‘투표’가 아닌 ‘투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후쿠시마는 잊혀졌다. 일본에서 후쿠시마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전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 1위 국가인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후쿠시마가 사라진 자리에 ‘안전한 원전’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해체 분야의 시장가치가 2050년경에는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경주?부산 등 전국 8개 지자체에서는 원전해체센터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핵발전소를 만드는 것도, 핵발전소를 해체하는 것도 저들에게는 남는 장사다. 핵 마피아를 넘어 원전광신집단이 곳곳에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후쿠시마핵사고 현장에서는 브라질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하청에 재하청을 거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방사능 오염물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 원폭투하 당시 방사능 피폭의 잔혹함을 겪었던 희생자들이 지금도 합천 평화의집에 생존해 계신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한다. 후쿠시마 아동과 부산 고리핵발전소 주민들의 갑상선암 증가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영덕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결코 제2의 후쿠시마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오는 11월 11일과 12일, 영덕 주민투표는 ‘영덕’만의 주민‘투표’가 아니다. 민주적인 의사 표현 마저 가로막으려는 영덕군수와 한수원에 의해 투표마저도 투쟁이 되었다. 새우젓 배, 숭어 배가 드나들던 갯벌을 간척을 통해 비옥한 들녘으로 일구었던 평택 대추리의 농민들은 그들의 땅을 빼앗기고 유민(流民)이 되었고, 후쿠시마의 사람들은 그들이 살던 일상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내려두고 피난길에 올랐었다. 평택과 후쿠시마의 사람들이 이르렀던 그 길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안전한 원전’도 ‘한수원’도 아닌, 현대나 두산이 아닌 수많은 유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11월 영덕주민 투표는 그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선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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