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명예 해친다” 설립자 후손 최염 선생 강연 불허

서길수 총장, “정치적 이슈 되길 원치 않아”
이승렬 의장, “학교 측이 정치적으로 만들어”

17:42

영남대학교가 최염(87) 선생 초청 강연을 불허했다. “대학의 명예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최염 선생은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한 최준 선생 손자로, 박정희 정권이 영남대를 강탈했다는 지적을 해왔다.

영남대학교 교수회(의장 이승렬)는 8일 오후 3시 영남대 문과대학 101호에서 최염 선생을 초청해 ‘독립운동, 백산무역 그리고 민립대학’을 주제로 강연을 준비했다. 백산무역은 일제강점기 초기 영남 지주들이 설립한 무역회사로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 교수회는 독립운동을 돌아보고 영남대의 뿌리, 설립 과정에 담긴 정신을 성찰하자는 목적으로 강연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남대 측이 강연을 불허한다는 공문을 교수회에 7일 발송했다. 영남대는 학교 공문에서 “그분(최염)의 언행 등에 비추어 보아 우리 대학의 명예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교수회 행사 취지에도 불구하고 초청 강연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영남대를 ‘박근혜 재단’으로부터 되찾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문제삼은 것이다.

최염 선생은 2007년부터 영남대가 박정희 군사정권의 강압과 강탈로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최염 선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남학원 재단 이사(1980~1988)를 지내던 시기에 재단 정관에 ‘교주 박정희’를 못 박으면서 학교를 사유화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수차례 영남대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관련기사=“박근혜 추천 이사진 영남대에서 손 떼고 시민 품으로 돌려줘야”(‘18.10.4))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이다. 1967년 12월 15일 날 반도호테루 924호 B실에서 대구대, 청구대 합동이사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 유일하게 외부인사로 제가 참석했다” 2017년 6월 최염 선생이 영남학원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민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서길수 영남대학교 총장은 7일 <뉴스민>과 통화에서 “최염 선생이 이제까지 평소에 영남대학교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견지를 취했으니까 학교 입장에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우리 학교는 좌우지간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여든, 야든 가급적이면 학문의 전당으로서 학술적 행사가 되길 원하지 이런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교수회는 불허 통보와 상관없이 강연을 진행하고, 예정된 장소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야외 강연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이승렬 교수회 의장은 “만약 학교가 무리해서 강의실을 원천 봉쇄한다면 야외에서, 숲에서 말 그대로 임간(林間) 강의라도 할 것”이라며 “정치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교수회는 영남대의 철학, 교육 철학 차원에서 강연을 준비했다.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건 학교”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경주 최부자 집안의 독립 정신과 나눔의 정신, 오늘날 부자들이 보여줘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영남대의 교육적 자산이고 철학적 자산이니만큼 내일 강연은 영남대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 행사라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영남대는 1967년 옛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통합해 설립했다. 대구대학은 1947년 독립운동을 한 최준 선생의 주도로 뜻 있는 유림들의 모금으로 ‘민립 대학’으로 출범했고, 청구대학은 최해청(1905~1977) 선생이 시민대학으로 설립했다. 1960년대 “한수(한강) 이남에서는 제일 좋은 학교로 가꾸겠다”는 삼성그룹 이병철의 제안에 대구대학 운영권을 넘겼다. 그런데 이병철은 대구대학 경영권을 박정희에게 넘겼고, 당시 청구대학 경영권을 갖고 있던 박정희는 두 대학을 합쳐 영남대를 만들었다. (관련기사=[박근혜와 영남학원](1)영남대는 어떻게 “장물”이 되었나(‘12.11.5))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80년 4월 영남학원 이사장을 맡았다가, 학내 반발이 심해지자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 이사로 있었다. 그러나 입시 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1988년 11월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영남학원은 관선·임시 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2009년 6월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설립자의 유족이자 종전 이사라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영남학원 이사 4명(전체 7명) 추천권을 다시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