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동 ‘재건축’, 세입자들은 이주비도 없이 쫓겨난다

재건축 사업으로 아파트 들어설 예정
30여개 상가 세입자, 이주비도 못 받아

20:25

대구시 중구 남산동 ‘할매칼국수’ 사장 장봉수(가명, 73) 씨는 조만간 가게를 처분해야 한다. 장 씨 가게는 아파트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된 남산동4-5지구(남산동 2478번지 일대 45,836m²)에 있다.

장 씨의 삶과 남산동은 한 몸이다. 1945년 남산동에서 태어나, 직장도 평생 남산동에서 다녔다. 20대 중반 첫 직장이었던 남산동 양말공장에서 아내도 만났다. 세를 얻어 양말 작업장을 따로 차렸지만, IMF 이후 공장을 정리하고, 2000년대 초반 칼국수 가게를 열었다. 당시 칼국수 한 그릇에 2천 원, 지금은 3천5백 원이다.

▲남산4-5지구 재건축지역 우리할매 손칼국수 사장 장 씨와 아내

주변 상황에 무관심했던터라, 재건축 소식도 갑작스럽게 들었다.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권리금은 물론 이주비조차 받을 수 없다. 쌓인 단골을 두고 가게를 옮기기도 어렵다. 남산동4-5지구의 30여개 상가도 같은 상황이다.

‘남산가든’ 사장 김화자(가명, 60) 씨는 남산동에서 장사만 약 40년이다. 1981년 ‘남산통닭’ 집에 시집와서 일을 시작한 김 씨는 25년 전 남산가든으로 종목을 바꿨다.

“이제 나가라는데, 우리 아저씨는 여기를 떠나면 곧 죽는 것처럼 알아요. 장사가 잘돼서 못 떠나는 게 아니고, 그냥 못 떠나는 거예요. 그런데 재건축한다고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나요. 다른 데로 갈 용기가 없어요. 10원 한 푼 보상 받을 수 있는 것도 없고, 다른 상가 가격도 다 올랐고, 손님도 다 여기 있는데, 나이는 들었고. 엉뚱한데 가서 장사할 수 있을까요?”(김화자 씨)

남산동 4-5지구 재건축 사업은 2010년 5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며 추진됐다. 2014년 6월 재건축 사업을 위한 조합이 인가됐고, 2017년 5월 사업 시행 인가가 났다. 지하 3층, 지상 29층, 947세대 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중구청에 따르면, 2018년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부터 현재까지 거주민 약 94%가 이주를 마쳤다.

▲남산4-5지구 재건축지역
▲남산4-5지구 재건축지역

남은 30여개 상가 세입자들은 이주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이다. 이들은 구체적인 이주 대책을 마련과 강제 철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도 철거 작업 준비에 나선 건설사(GS건설)·용역업체와 충돌했다.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 충돌도 예견된 상황이다. 그러나 중구청은 중재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이주비나 대체 상가 마련 등은 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이것도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중구청은 허가사항 감독 이외에는 중재에 나서는 수밖에 없는데, 중재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철거민연합 대구지부 남산상가철거민 대책위원회는 22일 오후 1시, 대구시 중구청 앞에서 남산 4-5지구 세입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세입자 등 약 250여 명이 참여했다.

▲22일 오후 1시, 대구시 중구청 앞에서 남산동 4-5지구 재건축 지역 상가 세입자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상가세입자인 이영희(58) 씨는 “재개발이 됐으면 오히려 이주비라도 나오는데 지금은 빈손으로 나갈 상황이다.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인테리어도 하고 상권도 활성화해서 가게를 살려놨는데, 재건축된다고 땡전 한푼 없이 나가라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재건축 지구 지정 이후 장사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총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준연 중구의원(성내2·3·대신·남산2~4동, 무소속)은 “80세가 넘은 할머니도 과일가게를 하고 있다. 그런 할머니도 당장 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구청이나 구의회 도시환경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중재를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도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중구청은 23일 조합, 상가세입자와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