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설리의 노브라를 카메라로 보는 당신에게 / 이기쁨

09:42

배우 겸 가수 설리가 새삼 화제다. 지난 21일 JTBC2에서 방송한 ‘악플의 밤’ 1회에서 설리가 ‘노브라’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기 때문이다. 설리는 방송에서 “속옷 착용 문제는 개인의 자유”라며, “브래지어는 그냥 액세서리다. 옷에 어울리면 하고, 어울리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설리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자극적인 기사와 악플에 시달려 왔다. 설리는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브라’ 사진을 계속 올린 까닭에 대해 “노브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영상이 나간 이후 설리에게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해당 영상이 담긴 네이버TV의 클립영상에는 ‘전현무는 하우두유두 이러면서 유머로 소비하고 설리는 노브라라고 논란되는 거 자체가 이해 안 간다. 노브라 보고 불편해하는 거 자체가 이상한 거임’(공감 3057개, 비공감 93개)라는 댓글이 달리는 등, 공감 1000개 이상을 받은 베스트댓글 모두가 영상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담고 있었다.

▲JTBC2에서 방송한 ‘악플의 밤’ 1회에서 설리는 노브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사진=jtbc2)

그러나 여전히 설리의 발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부정적 댓글들은 공통적으로 ‘노브라를 하는 것도 자유, 쳐다보는 것도 자유’라는 주장을 골자로 하며, 쳐다보는 행위를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것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이 자극적 범죄용어에 대한 불쾌감을 강하게 표현하는 이유는, 맘껏 ‘쳐다보고’ 싶은 욕망을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는 여성의 신체를 철저히 성적대상화 해서 바라보는 태도가 폭력이라는 뜻에서 쓰이는 단어다. 그들이 느끼는 것처럼 이 단어는 과격하다. 강간이라는 단어가 여성을 수동적 객체로 만든다는 문제점 또한 내포하고 있고, 표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부분에 있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강간’이라는 단어가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폭력적인 시선에 대한 불쾌감을 더 강력하게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는 이 표현의 문제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적 도구’로서 과격한 단어가 사용되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설리의 발언을 두고 ‘쳐다볼 자유’를 운운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선은 권력이다. 무언가를 마음대로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폭력적 시선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직면해보지 못한 이들, 타인의 고통을 두고 한 발짝 떨어져 감상하는 것에서 그칠 수 있는 이들 말이다. 수전 손택은 카메라를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이라고 했다. 남성들의 시선은 그 ‘카메라’와 같다. 때문에 설리의 발언은 그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일, 다시 말해 그들 스스로가 폭력을 자행하고 있음을 자각시키는 일과 같다. 동시에 관습처럼 여겨져 온 시선의 폭력에 대해 저항하는 의미 또한 지닌다. 이는 이제껏 남성들이 독점해 온 신체의 자유를 되찾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자유’란 이럴 때 쓰는 단어다. 남성들이 ‘쳐다볼 자유’를 운운하며 저항의 언어와 행동을 모독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브래지어를 해 가슴을 가리는 것을 ‘정상적인 행위’로 규정해왔다. 그리고 ‘노브라’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가슴이기에 맘껏 조롱해도 좋다고 착각해왔다. 이 착각은 여성의 신체나 행동을 남성들이 생각하는 여성성과 연결시켜 사고하는, 남성중심사회의 오랜 버릇에서 기인한다. 남성중심사회가 결정한 ‘여성의 가슴’은 어때야 했나. ‘내 여자의 가슴’은 가려져야 마땅했지만, ‘보통 여자의 가슴’은 ‘섹시한 수준’에서 드러날수록 환호 받았다. 남성의 관점에서 멋대로 정상성의 기준을 세우고,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시키는 일은 이제 멈춰져야만 한다. 가슴은 그냥 가슴일 뿐이다. 정상적인 가슴과 비정상적인 가슴이란 없으며, 여성의 가슴은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시트콤 ‘프렌즈’의 주연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은 극 중에서 거의 대부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등장한다. 그는 이미 그 당시에 미디어를 통해 ‘노브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 행동했다. 제니퍼 애니스톤의 당당한 행보에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었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도 브래지어의 착용 여부는 개인의 영역으로 두며, 미국 타임지는 브래지어를 두고 “브라 100년의 역사는 탈브라(taking off bras)의 역사”라고 평하기도 했다. ‘프렌즈’가 방영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한 명의 연예인이 본인의 SNS에 노브라 패션을 업로드했다. 자신의 몸을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노브라가 음란물로 분류되지 않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을 권리가 너무 당연해 새삼스레 화제가 되지 않는 사회, 폭력적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2019년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