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불행한 활동가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허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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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5:00 | 최종 업데이트 2019-07-08 15:00

최근 존경하는 소수자인권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인권 변호사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전문성을 무기로, 기득권에 편입하지 않고, 불의에 맞서 싸운 수많은 변호사들의 삶들을 보라.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하는데, 전문성을 지니면서, 공익적인 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리. 요즘 변호사업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청춘들이 고민하는 길이다. 지금은 정당 조직가, 청년 활동가로 일하는 나도 예전에 잠깐 변호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도무지 나의 길은 아닌 듯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의 삶을 생각하던 중에 강사가 말한다.

“법률가 10명보다 활동가 10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획일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법률가 1명과 활동가 1명 중에 누가 더 중요하냐는 질문은, 김치와 된장 중에 어떤 것이 소중하냐는 질문처럼, 대답하기 어렵다. 강사의 말씀은 겸손의 표현이지만, 한국의 시민사회, 사회개혁, 공익활동을 추구하는 영역에서,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활동가가 과소평가되는 부분을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법률적 문제로 쟁점을 다투는 영역에선, 법률적 지식과 해석이 중요하다.

그런데 최초에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떤가. 입법을 포함한 민주적인 정치과정이 있다. 여기선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되는가가 중요하다. 1인 1표의 정치적 평등을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강자로 불리는 누군가의 의견은 과잉 표출된다. 사회적 약자들의 의견은 과소 표출된다. 훌륭한 법률가들이 넘쳐흘러서, 수많은 판결에서 이기더라도, 최초의 정치과정,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역할은 한계가 있다. 정치가 있어야할 자리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것은 법률가들만으로 지킬 수 없는 자리다.

활동가는 실무자일 수도 있고, 조직가일 수도 있다. 홍보/교육/모금/조직을 넘나들며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후원자도, 명망가도 있어야 하고, 비판적인 시민들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면서 직업으로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인 활동가들이 없다면 변화의 힘을 조직하기 어렵다.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시민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민일수록 자발적인 참여의 비용이 증가한다. 시민 참여의 이상은, 불평등을 고려하는 관점을 놓친다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시민들의 낭만에 그칠 수가 있다. 특히 시민 각자의 삶은 다양한 시공간에 위치한다. 보통 시민의 삶을 24시간 내내 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철인의 삶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시민 개인의 사적인 삶을 누리면서, 적재적소의 공적인 삶이 공존하기 위하여 활동가, 조직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활동가, 조직가라 불리는 이들은 시민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공적인 역할을 연결한다.

활동가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 조직은 오래갈 수가 없다.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 가득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변화는 어렵다. 다양한 전문가, 다양한 시민들, 다양한 후원자들을 연결하는 활동가들은 세상을 바꾸는 손과 발이다. 세상을 바꾸는 손과 발인 활동가들의 삶을 응원한다. 존경하는 소수자인권 변호사는 명언을 남긴다.

“불행한 활동가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대구경북 공익활동가들의 삶을 응원한다. 정당 활동가는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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