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알라딘', 변화하는 시대를 담다

0
2019-07-17 11:29 | 최종 업데이트 2019-07-17 14:25

[‘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디즈니 실사영화 <알라딘>의 누적 관객 수가 1천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53일 만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4일 <알라딘>의 누적 관객 수가 1천2만967명으로 집계됐다. 디즈니 실사영화 가운데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라딘>은 개봉 전 원작 팬들의 우려가 컸다. 실사영화에서 원작의 판타지적 요소가 이질감 없이 표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 때문이다. 특히 램프의 지니역을 맡은 윌 스미스가 파란색으로 몸을 페인팅한 모습이 공개됐을 때는 피부 분장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명작을 망칠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실사영화의 성패는 그 만듦새가 관객의 기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데 달렸다. 줄거리는 향수를 자극하는 원작를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수성을 담아내야 한다. 컴퓨터그래픽(CG)과 시각효과(VFX) 기술은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킬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한다.

▲영화 '알라딘' 스틸이미지

우려가 큰 탓인지 <알라딘>의 개봉 첫날 성적은 7만2천736명에 그쳤다. 9일 전 상영을 시작한 <악인전>에 밀리고, 뒤이어 칸 국제영화제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에 뒤쳐졌다. 하지만 24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다. 개봉 4주 차에 접어든 영화가 1위로 다시 올라서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알라딘>의 역주행 흥행은 입소문 때문으로 보인다. 친숙한 이야기와 캐릭터,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불러일으키는 향수가 영화 속 흥겨운 노래와 신나는 춤에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관객 요청으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볼 수 있는 댄서롱·싱어롱 상영이 마련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알라딘의 액션 연기는 리드미컬하며 흥겹고 윌 스미스의 장기를 살려 랩, 비트박스를 통해 현대식 ‘스웨그’를 담은 것도 매력적이다. 27년 전 원작의 재현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지 못했을 시도다.

CG도 큰 볼거리다. 영화 속 감초인 원숭이 아부와 호랑이 라자, 앵무새 이아고는 털 한 올부터 움직임 하나까지 세심하게 다듬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백 마리의 코끼리와 타조, 공작 등 화려한 알라딘 일행의 행렬과 마법 양탄자를 타고 아그라바 상공을 날아다니는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가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무엇보다 과거 명작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 것은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디즈니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의 역할을 확대했다. 공주 캐릭터의 변화는 현대적 여성상을 영화에 잘 녹여낸 것이다.

1992년 개봉한 원작에서 자스민 공주는 왕국의 2인자인 마법사 자파를 속이기 위해 억지로 키스를 하고 모래시계에 갇혔다가 알라딘에게 구조된다. 하지만 실사영화에서 자스민 공주는 아버지 술탄과 알라딘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자니까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에 맞서고, 자파 앞에선 “나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당당히 대항한다. 결말도 달라졌다. 원작에선 알라딘과의 결혼으로 마무리되지만 영화에선 공주 자신의 힘으로 꿈을 이뤄낸다. 이는 흥행에 직결된 것으로 분석된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알라딘 관객은 20~40대가 골고루 분포했다. 지난 11일 기준 여성 관객은 68%에 달해 같은 기간 평균 관객 비율(60.8%)보다 많았다. 국내 주요 음악차트에서도 나오미 스콧이 부른 ‘스피치리스(Speechless)’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보수적인 세계관을 탈피한 것도 신의 한수다. 흥행 참패를 겪은 과거 실사영화와 달리 인종에 관계없이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화이트 워싱’ 논란을 피한 것이 관객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알라딘>의 흥행은 이 시대 관객 눈높이에 맞추려면 변화는 필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흥행공식을 운운하며 과거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진보적이고 참신한 콘텐츠로 승부할 것인가.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