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불매운동이 향해야 할 곳 / 노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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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이른바 ‘보이콧 재팬’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수출 규제에 대한 불만을 한목소리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브랜드와 제품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대체할 국내 제품을 소개하는 웹페이지인 ‘노노재팬’은 한 때 사이트 접속이 마비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불매 운동의 주요 타깃이 된 일본 맥주는 매출이 30% 가까이 줄었다. 하루 평균 1,200명을 웃돌던 일본 여행 예약자 수는 현재 절반에 그친다고 한다. 나아가 일부 연예인들은 자신의 SNS에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한 인증샷을 남기며 불매운동에 힘을 더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희훈 기자

불매운동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여행가는 매국노 팔로우 하는 계정’ 이라는 이름의 SNS가 논란이 됐다. 해당 페이지 운영자가 일본 여행 인증샷과 후기를 올린 계정을 찾아내 팔로우한 후, 당사자를 조롱하고 망신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목된 계정에는 ‘한심하다. 이걸 자랑질이라고 올리다니’, ‘굳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뭔지‘ 등 당사자를 겨냥해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경제 보복이라는 심각한 시국에 굳이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과 이를 인증하는 행위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으로서 책임과 연대가 암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행 후기와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행위만 놓고 보면, 사회적 공감을 방해하고,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비쳐져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당사자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을 ‘매국노’로 지탄하는 것, 그들을 고의적으로 찾아내 저격하며 인격 모독적 발언을 일삼는 것 등 말이다.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는 ‘애국자’, 그렇지 않은 ‘너’는 ‘친일파’로 분리하려는 심리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여기에는 애국자로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반일감정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인 불매운동을 ‘정의구현’으로 등가해 당사자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식이다. 이는 개인에 대한 모욕과 혐오로 이어진다. 불매운동의 목적과 가치가 훼손된 채, 불매운동의 동참 여부에 따라 언어적 폭력이 정당화 되어선 안 된다. 불매운동은 특정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행위이기 전에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며, 이것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을 만들어낼 뿐이다.

일부 언론은 여태 단기적이었던 불매운동의 전례와 ‘냄비근성’을 거론하며 지금의 불매운동 역시 한시적일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일본의 부적절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결코 한시적이라 단언할 수 없다. 불매운동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