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과 함께] ⑥ 공사장의 ‘인간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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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13:23 | 최종 업데이트 2019-07-31 13:23

1969년 가을, 전태일은 인력시장으로 간다. 평화시장에 더 발붙일 수 없어 ‘공사판에 품팔이’를 나간다. 시장에 나간다고 엄마를 안심시키고 막일을 하러 간다. 공사장에서 태일은 또 다른 평화시장을 만난다. 평화시장에서는 서로를 ‘7번 시다’처럼 번호로 불렀다. 몇 년을 일해도 이름을 모르고 헤어지기 쉬웠다. 일용직 막일꾼들은 아예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삽 한 자루씩 나눠줄 뿐, 간섭이나 주의도 없다. 피곤한 침묵 속에 삽질을 반복하면 그만이다. 노가다들은 자기가 살 수 없는 집을 짓는 일부 공정에서 맥락 없는 일을 하고 사라졌다. 어머니는 소문으로 태일이가 공사장에 나가는 걸 알게 된다. 태일은 유일한 말벗인 어머니한테 결국 사실을 털어놓는다. 공사장에서 일을 한 지 20일쯤 되는 10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등짐을 지고 사다리를 오르던 40대 남자가 휘청하며 흔들리자 바로 뒤에서 올라가던 태일도 자칫 떨어질 뻔한 사고가 있었다. 태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내한테 괜찮냐며 사연을 물었다. 노임이 밀려 굶주린 남자는 힘이 들어 내일은 도저히 못 나오겠다고 한다. 외면할 수가 없다. 다음 날 태일은 현장 사무실에 가서 남자의 사정을 말한다. 책임자는 ‘넌 누구냐’ 물었고, 태일은 같이 일하는데 사정이 딱해 그런다고 답했다. 마음을 움직였나 보다. 책임자는 노임은 시간이 걸리고 이거라도 받으라며 밀린 5,000원 중 3,700원을 제 주머니에서 꺼내어준다. 숨통이 트인 남자는 전날과 같은 등짐을 지고도 날듯이 계단을 올랐다. 돈의 힘이 좋긴 좋은 모양이라고 하니 “너 거기 가서도 노동 운동하냐? 그러다 거기서도 쫓겨나면 어쩔 거냐”며 어머니는 허탈하게 웃는다. 태일이도 씩 웃는다.

하지만 남자의 등짐 진 다리는 다시 휘청대고 배고픔은 되돌아왔을 것이다. 급한 불은 껐겠지만 남은 돈은 받았을까, 다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무사했을까. 수십 년이 흘러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2019년, 공사장 꼭대기의 청년

▲ 김태규씨가 사망한 공사현장. (사진=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

문재인 정부는 2019년 2월 20일, ‘건설 현장 추락 사고 줄이기 원년 선포식’을 거행했다. 매년 500명 안팎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재 사망 사고의 대부분이 추락사이기 때문이다. 국토부 장관은 안전 장비를 단단히 갖춰 버클을 채우고 렌즈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뉴스는 일제히 행사를 보도한다.

두 달 가까이 지난 4월 10일 아침. 스물다섯 살 김태규는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현장 5층에서 20미터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미승인 화물 엘리베이터로 폐자재를 옮기다 건물과 엘리베이터 사이 43.5㎝ 틈으로 추락했다. 안전교육은 물론, 틈새에 안전대나 안전망은 없었다. 공사장에서 제법 일해 본 김태규는 “이렇게 위험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친구한테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은 늘 열린 채 운행되었다. 잠깐의 행사를 위해 장관에게 지급되던 안전모와 안전화, 안전벨트가 일용직 김태규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누나는 동생의 옷가지와 ‘운동화’를 받았다. ‘안전화’가 아니었다. 현장은 보존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찾은 현장은 말끔했다. 경찰과 노동부는 5일이 지나서야 현장을 조사했다. 엘리베이터가 사고 당시의 5층이 아닌 1층으로 이동된 이유를 따지자 노동부 감독관은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누나한테는 그래도 괜찮다는 말로 들렸다.

경찰, 노동부, 건설사와 시공사 모두 믿지 못하게 된 누나는 현장을 드나들며 직접 조사하기 시작한다. 보름 동안 현장을 드나들던 누나를 맞이한 것은, ‘무단 침입’했다는 경고와 ‘다 끝난 것 아니냐’는 건설사 직원의 냉소, 현장 직원의 무례한 반말과 훈계였다. 안전 난간이 없는 건물 내부를 촬영하다 쫓겨나면서 “내 동생 죽은 자리도 못 보느냐”고 소리 질렀다. 직원은 무단 침입을 경고하며 ‘나가세요’를 반복하였다. 고용노동부는 5월 16일 작업 중지 명령을 해제하였다. 공사가 재개되고 6월부터는 아예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피해자가 고분고분하지 않게 싸움을 시작하면 관련자들은 그럴 시간이 어딨냐는 듯 낯빛을 바꾼다. 유가족의 진상 규명 요구는 냉소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싸우는 유가족에 대한 경멸은 한국사회의 재난 대응 매뉴얼로 자리 잡았다.1

1969년 9월 15일 아침의 부끄러움

이소선은 태일이가 공사장에 다니는 것을 알았지만 한동안 내색하지 않았다. 침울한 얼굴에 대고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답답하지만 기다렸다. 원금과 이자가 똘똘 뭉쳐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9월 15일 아침, 공사장에 일하러 나가는 태일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서 어떻게든 만원 버스에 올라타려고 애쓰는 한 여자가 보인다. 한 손은 광주리를, 다른 손은 문 옆 손잡이를 잡고 여자는 악착같이 매달린다. 한 발 디딜 틈 없는 버스는 ‘풍선’ 같이 부풀었다. 발끝을 디밀고 꾸역꾸역 몸을 들이민다. 비명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콩나물시루 버스에 찡겨본 사람은 안다. 지옥이다. 다음 차를 타면 어떤가. 억척스러운 그 여자가 밉다. 가난의 악착같은 맨얼굴은 또 다른 가난이 봐도 환멸이 느껴진다.

태일은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불쑥 일어난 제 마음이 낯설다. 버스에 오르려는 안간힘이 밉다가, 이건 대체 무슨 마음이지? 문득 불쌍해진다. 그러다가 미안해진다. ‘전태일, 봐라. 저것은 있는 힘을 다한 헌신이 아닌가. 얼마나 정직하고 충실한, 거짓이 없는 생존경쟁의 한 인간이냐’2 고 마음을 바로잡는다. 배차 간격과 그의 처지, 생계를 생각 않고 어떻게든 타고 나가야 하는 사람을 탓하다니.

곧이어 그 여자의 모습에 어머니가 겹친다. 신경질 난 얼굴로 입을 꾹 다문 자신을 말없이 지켜보던 어머니한테 미안하다. 평화시장에서 쫓겨난 게 엄마 탓, 가난 탓인 양 화난 얼굴로 집을 나선 게 후회된다. 집에 거의 돈을 갖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빚을 내어 활동비로 쓰기만 한 것도 미안하다. 돌아선 세상에 대한 원망을 어머니한테 쏟아버린 것이다.

부끄러웠다. 침묵으로 어머니를 학대했다며 자책한다. 태일은 그동안 겪은 일들이 힘들어 그만 가족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 있었다. ‘현실이 나를 외면하고 냉소한다고 나도 현실과 같은 패가 되어 나를 조롱하는구나!’ 그제야 가슴을 친다. 화들짝 놀라 주위 사람들을 다시 쳐다본다.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이 갠 듯, 경멸과 환멸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사랑스러운 전체의 일부’를 보는 따뜻한 전태일 특유의 시선을 되찾는다.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일어나던 혐오와 경멸의 감정은 사라지고 없다. 광주리 여성의 안간힘에, 어머니의 생활고가 연결된다. 좀 전과 다른 세상이 열린다.

태일은 그 눈으로 다시 사람들을 본다. 등짐을 지고 위태롭게 공사장 계단에서 휘청거리는 남자가, 통성명도 없이 앞뒤 맥락 모를 삽질로 함께 땅을 파는, 모자 쓴 덩치 큰 사내의 주름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 이야기를 고향 친구 원섭이한테 편지로 쓰던 9월 말일의 조용한 방에서 그들은 태일에게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로 새롭게 인식된다. 태일은 힘겨운 침묵 속에서 사람 보는 눈을 그렇게 갈고 닦는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라고 그해 말 수기에 쓰고 있다.

조롱과 냉소의 반대편에 서기

한국 사회의 두 눈은 전태일과 반대편을 보았다. 태일이 자신의 ‘일부’로 인식한 ‘일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는 눈이었다. 그 두 눈은 부실 공사로 무너지고 100명이 죽어도 전진하던 경부고속도로의 ‘기적’이래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중대 재해’를 ‘기업 살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사소한 일’로 느끼도록 충분히 훈련되어 왔다. 강자의 편에서 세상을 보도록 길들여진 시선은 피해자가 싸우려 들면 어느새 도끼눈을 뜬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OECD에서 2006년, 2011년을 제외하고 23년간 1위를 기록하고 있다.3 미국, 일본의 3배,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이 제정된 영국의 15배가 일하다 죽는다. 지난 5월 2일 고용노동부는 2018년 산재 통계를 발표했다. 산재 사망자는 2,142명. 질병을 제외한 사고 사망 971명의 절반인 485명이 건설 현장에서 숨졌다. 소규모 사업장, 외주 하청업체에서 대부분 죽었다.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사후 점검을 할 뿐이다. 영국의 8배, 독일의 6배에 달하는 사업장을 감독해야 하기 때문이다.4 법은 다단계로 전가된 책임을 엄하게 따지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매년 400곳에서 사망 사고가 나면 단 두 곳의 책임자만 구속5 되었다. 대부분 벌금, 집행유예로 부담을 벗어나 하던 일을 계속했다.

스웨덴 사람은 어떻게 일하다 사람이 죽냐며 물어본다. 귀화한 한국인 박노자의 노르웨이 친구들은 공사장에서 수백 명씩 떨어져 죽는 것도 잘 못 믿지만, 그럼에도 사장이 감옥에 안 가는 것을 이해 못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수용한다. 기업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보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가 관용어가 되었다.

▲신축 아파트 현장

오늘도 경기 부양의 사명을 띠고 아파트는 올라간다. 7월 10일 부산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20대 승강기 수리공이 문과 벽 사이로 떨어져 사망했다. 올해 부산 아파트에서만 6명째 추락사다. 그나마도 30%만 보도되는 끊임없는 죽음의 소식에, 우리는 이제 무감각하다. 일하다 죽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집단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이다. 그 무뎌진 감수성을 ‘이윤 추구’에 관대한 법과 제도가 떠받치고 있다.

장관이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모아 다짐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상의 모든 힘을 모아 사회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해, 기업 살인 처벌 사례를 내야 한다.6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가 삶 속에 목격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못나서 그런 일을 하다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니라고 여럿이 말하고 생각해야 한다.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포스코 건설 정규직이 되길 바라기보다, 작년에 포스코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10명 모두가 하청 노동자라는 현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동생을 잃고 석 달 동안 김태규의 누나는 ‘예견된 죽음’의 구체적 조건들을 확인하며 절규하고 있다. 2022년까지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대통령한테 공개 편지를 쓴다. 동생한테 편지를 써서 울며 읽는다. 사고가 난 아파트형 공장은 8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TV 화면의 떠들썩한 안전 선포와 건설 현장 꼭대기에서 일하는 하청, 일용직 노동자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긴 싸움을 누나는 시작했다. 우리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의 편에 서서, 찡그리고 체념하며 세상을 봐 왔다. 이제 태일과 함께, 몸을 돌려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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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단락의 기본 내용은 시사인 618호(2019.7.23.) 36~37쪽 ‘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진실을 찾아서’(김연희 기자)와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와의 전화 인터뷰(2019.7.27.)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2. 전태일 수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돌베개, 118~119쪽
  3.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돌베개, 29쪽
  4. 〈노동자, 쓰러지다〉, 희정, 2014, 오월의봄,에서 전반적인 상황을 추려 정리하였다. 소식지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통권184호, 2019년 6월호)에서 올해의 통계 등을 전반적으로 참고하였다.
  5. ‘사진 한 장에서 기업처벌법을 보다’ 안종주, 프레시안, 2019. 4. 29
  6. 故(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4월 발의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국회의원들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경총 등 재계는 경영이 위축된다며 사망사고 발생시 사업주의 3년 이상 징역, 5억 이하 벌금의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다. - ‘사진 한 장에서 기업처벌법을 보다’ 안종주, 프레시안, 2019. 4. 29 기사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