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남성의 성욕 해소보다 중요한 것 / 이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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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2 14:54 | 최종 업데이트 2019-08-02 14:54

여성의 신체를 본뜬 실리콘 인형 성인기구를 ‘리얼돌(real-doll)’이라고 한다. 리얼돌은 영화 특수메이크업에 사용하는 고급 실리콘을 이용해 사람의 피부와 비슷한 느낌으로 제작되며, 평균적으로 키 160cm에 몸무게 30-35kg, 여성의 가슴과 성기 등을 그대로 재현한 형태의 성인기구다. 우리나라 관세법에서는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대해 수출·수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한 업체가 이 조항과 관련해 인천세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업체는 리얼돌의 수입을 규제하는 세관의 처분이 ‘개인의 성적 결정권 행사에 간섭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7일, 대법원은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는 2심 재판부의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을 내린 2심 재판부는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왜곡할 정도가 아니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면서, 국내에서 제작되는 리얼돌에 대해서도 각종 우려와 논란이 쏟아졌다. 대법원 판결 이후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곧 20만 명이 넘는 서명이 모였다. 청원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한 리얼돌 국내 판매 사이트에 올라온 FAQ(자주하는 질문) 게시판에 따르면, 리얼돌의 얼굴을 연예인이나 이상형 등의 ‘원하는 얼굴’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며,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점, 모반, 타투, 상처 등 ‘나만의 특별한 리얼돌’로 커스텀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본인 동의 없이, 혹은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를 닮은 리얼돌’이 제작되고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왜곡’하는 분명한 행위다. 리얼돌 수입이 허용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지닌 리얼돌의 제작 및 판매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얼한 여체’를 홍보하는 성인기구가 아무런 규제 없이 대놓고 판매된다면, 이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일부 남성들의 잘못된 성관념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실의 여성을 인형으로 착각해 침묵을 동의로 착각한다거나, 싫다는 표현을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여성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성관념 말이다.

리얼돌 제작 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지 못하게 명확한 문장으로 규제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닥칠 잠재적 위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리얼돌이 재현하는 여성의 신체, 즉 성적 대상화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무엇이 ‘성적 대상화’인지 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성적 대상화와 관련한 적법한 처벌규정 또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작년에 있었던 ‘지인 능욕’ 사이트 사건이다. 남자 대학생 한 명이 SNS상에서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여학우, 주변 지인 등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문제가 됐다. 이후 이 학생은 다니던 대학에서 퇴학 처리를 당했고, 그게 끝이었다. 경찰은 ‘사진을 직접 찍은 것이 아니라 SNS로 합성한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 관련 혐의로 그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리얼돌을 마음껏 ‘커스텀’해도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못하고, 또 피해자만 온전히 상처를 뒤집어쓸 것이라는 전개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이유다.

그럼에도 여성이 지니는 실존적 공포는 여전히 남성들이 ‘무지’해도 괜찮은 ‘감정’ 정도로 여겨진다. 무지해도 괜찮은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오직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로만 여성의 신체를 바라본다.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집약시킨 리얼돌은 이를 방증하는 완전체다. 리얼돌은 남성들에게 큰 가슴, 잘록한 허리, 순진한 표정, (인형이기에 당연한) 순종적인 움직임 등을 제공한다. 여성의 몸을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여성의 신체를 오직 ‘보이는 존재’로 대하며, 이를 통해 남성성을 확인하려 한다. 리얼돌이 가지는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떠한 제재도 없이 재생산되는 왜곡된 성관념은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성범죄 발생 건수가 201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강간 범죄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97.8%)이라는 경찰청의 통계자료(2017 범죄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리얼돌은 남성의 성욕 해소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성인기구’로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 물론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면 성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올라간다’는 낡은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건강한 남자라면 성욕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명제는 긴 시간 동안 남성 대상 성산업의 성행을 합리화시키곤 했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음 또한 외면해왔다. 하지만 만약 남성의 성욕과 성범죄율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면, 남성의 성욕을 두고 ‘해소’가 아닌 ‘제재’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남성의 성욕이 신성시될 동안 여성을 향한 범죄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 왔다. 리얼돌 문제가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이라는 재판부의 발언이 이를 방증한다. 이 문제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성적 대상화와 관련된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적법한 방식의 정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남성의 성욕 해소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느끼는 실질적인 위협을 제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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