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싸워야 할 대상은 무관심이다,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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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3 18:18 | 최종 업데이트 2019-08-14 09:56

[‘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의 7대 죄악을 키워드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 데이빗 핀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세븐>은 ‘스릴러의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27분의 상영시간 동안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액션이나 긴장감 넘치는 심리극은 없다. 극적인 반전도 없다. 치밀하게 짜여진 트릭을 풀어가는 재미도 없다. 범인의 자수로 추적도 싱겁게 끝난다. 연쇄살인마를 통해 인간의 7가지 죄악을 주제로 다루면서 정작 자신에게 피해만 오지 않는다면 그저 무관심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를 지적한다.

여타 스릴러물과 다를 바 없는 시각으로 본다면 <세븐>은 ‘그저 그런 스릴러’다. 하지만 촬영기법을 따라 감상한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인물의 심리나 인물들 간 관계를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윌리엄 소머셋(모건 프리먼)과 신참내기 형사 데이빗 밀스(브래드 피트)를 철저히 분리한다. 상관에 수사 결과를 보고할 때도, 둘이 함께 차를 탈 때도 각각 다른 화면에 담는다. 이 때문에 둘은 한 공간에 있어도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는 둘을 향한 카메라 각도가 특이하기까지 하다. 소머셋과 밀스가 서로 마주보거나, 표정이 드러나도록 얼굴을 클로즈업하지도 않는다. 애매하게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낯선 각도로 둘을 비춘다. 이는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화면이다.

소머셋은 침착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출근을 준비할 때면 깔끔한 정장셔츠에 단정하게 타이를 멘다. 테이블 위에는 소지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외투의 먼지 한 올도 신경 쓰고 잠자리에 들 때는 메트로놈을 켠다. 현장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살피고 어떤 물건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치안을 담당해왔으면서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도 보이며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벗어나려 한다. 범죄보다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회에 더 크게 분노하고 절망한 탓이다.

밀스는 정반대다. 가죽재킷에 헐렁한 셔츠를 걸친다. 과묵한 소머셋과 다르게 쉴 새 없이 떠든다. 신중한 면모도 없다. 현장에서는 발견한 몇 가지 단서로 단번에 결론을 내고, 범죄현장을 제집처럼 편안해한다. 소머셋과 반대로 밀스는 사건 해결에 대해 의욕적이다.

소머셋은 파트너인 밀스와 거리를 둔다. 밀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화면에서 소머셋과 밀스를 애매한 각도로 촬영한 이유는 둘의 관계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으로 추측된다.

카메라의 각도가 변한 건 소머셋이 밀스 부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부터다. 밀스 부부가 사기당한 이야기를 들은 소머셋이 처음으로 농담을 내뱉고 셋이 함께 웃는다. 그때 밀스 부부와 소머셋은 화보에 나오는 것처럼 화목한 모습으로 한 화면에 담긴다. 이후 소머셋과 밀스는 한 화면에 자주 나타난다. 둘의 간격은 가까워지고 클로즈업된다. 다른 화면에 나눠 담지 않고 다른 공간에 있어도 한곳에 있는 모양새를 띤다.

소머셋의 행동도 변화한다. 늘 한발 물러서 있던 그가 수사에 앞장선다. 그토록 빼달라던 수사도 자원해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 거리를 두던 밀스와 함께 한 소파에서 잠들고, 잠자리에 들 때 켜던 메트로놈은 던져버린다. 긴 형사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방아쇠를 당겨본 적 없다던 그가 총을 들고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벗어나고 싶어 하던 현실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븐>에서 화면은 등장인물의 관계나 심리를 투영한다. 줄거리와 대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 변화를 철저한 계산과 정교한 손길로 빚어진 화면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카메라 기법의 절정은 마지막 장면에서 밀스와 범인 존 도를 비출 때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범인은 일말의 부동도 없는 마음을 나타내듯 고정된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불안과 슬픔, 분노의 감정으로 요동치는 밀스는 흔들리는 핸드헬드기법으로 보여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의 소머셋은 넓은 화면으로 비춘다. 영화는 소머셋의 심리 변화를 통해 7가지 죄를 저지르면서도 그게 흔하다는 이유로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다.

소머셋은 나지막히 말한다. “헤밍웨이가 말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가치가 있다. 나는 후자에 동의한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싸워볼 가치가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싸워야할 대상은 ‘무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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