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베스트셀러, 반일 종족주의 /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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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도서관 로비에는 추천도서 칸이 있다. 그중에서 이름표만 있고 책은 없는 칸이 있었다. 이미 빌려갔다는 의미이다. 8월 22일 현재까지 책은 ‘대출중’이다. 그 칸의 주인은 8월 3주째 베스트셀러인 <반일 종족주의>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외 5명의 공저로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를 뒤집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일본군의 강제 징용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에 따라갔다는 주장을 담았다. 조선의 발전 또한 일본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기도 한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 사실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승만학당 홈페이지 갈무리

<반일 종족주의>를 읽는 이유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인 이영훈 전 교수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이승만TV>를 통해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찾았다는 것, 두 번째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서 <반일 종족주의>를 읽는다는 것, 세 번째는 책의 내용을 비판하기 위해 읽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책을 접한다는 것, 책의 내용을 알고 비판하기 위한다는 이유는 책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인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 이 책을 읽는다는 이유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읽음으로써 얻게 될 ‘균형 잡힌 시각’은 어떤 의미일까? 일제 강점기로 인한 조선의 명백한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존재 또한 부정해서 얻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이란 실재하는 것일까?

28년 전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를 처음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이후로 끊임없이 증언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문서로 증명할 수 없는 주장’으로 대하는 ‘균형 잡힌 시각’은 일종의 기계적 균형이다. 이때 기계적 균형이란, 일본이 불태워 없앤 문서가 있었다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문서로써 ‘종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기계적 균형에는 일제 강점기로 인해 박탈당한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현재의 노력이 제거되어 있다. 전쟁을 일으키고, 비논리적인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가해국을 대변하는 것이 균형 잡힌 역사관은 아니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밝혀진 피해사실을 인식하고, 어떤 형태로든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균형’이다. <반일 종족주의>가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반일 종족주의>를 극우세력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독자는 월간조선과의 대화에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인데 현 정부는 반일감정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기 바쁘다”라며 “굳이 우파라서가 아니더라도, 이 시국에, 이 정부에 선동 당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말했다 (월간조선. 2019.08.15 대한민국 20대가 《반일종족주의》를 읽는 이유).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것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 식민지배 당시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노력을 현 정부의 선동수단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밝혀진 일본 식민지배의 피해를 정부의 여론 선동의 일부로 보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행하는 ‘2019년식 폭력’이다.

시대상을 알려면 베스트셀러를 보라는 말이 있다. 2019년 8월, 주요서점의 베스트셀러이거나 상위권을 차지한 책은 <반일 종족주의>다. 한편, 얼마 전 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별세했다. 강제징용 피해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의 기록은 역사적 아픔을 겪은 이들과 우리의 간극이 멀어질 수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