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조국 논란, 솔직히 말하자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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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11:29 | 최종 업데이트 2019-08-26 11:29

시끄러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나올 말은 다 나온듯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온도는 뜨겁다. 이 ‘논란’을 식지 않게 만드는 근본 원인은 아마도 정치공학의 계산에 따른 언론의 난타전일 터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국면에서 한국 언론의 민낯은 정론보다도 정치공학을 따르는 행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오마이뉴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견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조 후보자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실망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중단 없는 개혁의 완수를 위해서 조 후보자를 반드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조 후보자보다도 계급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각자 주장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반박과 재반박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고 하겠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서로 갈라서서 치열하게 치고받는 이 주장들이 사실상 같은 코끼리를 놓고 벌이는 진실공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 지금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논란’ 자체야말로 드러나야 할 진실을 더 강고하게 가리는 장막이 아닌가. 좁혀서 보면 조 후보의 문제는 90년대 이후 자유주의 가치를 표방했던 강남좌파의 몰락이자, 김의겸 전 대변인과 연결해서 본다면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386세대의 내파이다. 지금 ‘논란’의 상당 부분은 이 문제에 집중해 있다.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서 넓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망하는 주장마저 모두 빨아들여서 ‘자기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형국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후보 지지냐 아니냐, 둘로 나뉘어서 서로 간증대회를 펼치고 있는 것이 지금 형국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진정 이 세상은 조 후보를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는가. 참으로 조 후보가 그 분열의 접점에 있는 모순의 결정체인가. 우리 모두 솔직히 말하자.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조 후보를 둘러싼 이 거대한 ‘논란’이야말로 진짜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스크린이다. 이 문제를 ‘논란’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정작 이득을 보는 쪽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다. 조 후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현 정부세력이 말로는 기존 질서를 개혁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 기존 질서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부끄러운 진실이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논의가 감추고 있는 것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이다. 이 도저한 능력주의야말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 후보의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의감’은 이런 지배 이데올로기의 폐기라기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억견의 산물일 뿐이다. 이 억견이 배제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무역 규제 사태에 대응하는 현 정부의 태도에서 다시 한번 명확해졌다. 기술 국산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시간 규제에 대한 예외조항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현 정부의 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게 몫 있는 자들끼리 주고받는 리그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부흥회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범 진보 진영’의 태도는 역겨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런 이들이 자신들의 공정성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수꼴’이니 ‘일베’니 조롱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뭐했나’고 되묻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그 대학생들은 그때 조 후보의 딸이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입시를 준비했을 뿐이다. 나갈 수 있는 문을 하나밖에 열어두지 않고 이제 와서 왜 그 문으로만 나갔냐고 따지는 것은 사리 분별없는 비겁한 짓이다.

조 후보는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현 정부를 탄생시킨 이데올로그였다. 특별히 조 후보이기 때문에 이 ‘논란’이 커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조 후보의 이미지를 단번에 추락하게 만든 이번 사태는 과잉 대표되어 왔던 특정 세력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는 대학생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뿐더러, 강남좌파만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인 것도 아니다.

강남좌파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조 후보는 싫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곤혹은 진보의 대안이 부재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농담이다. 국민들은 좌파적 대안을 갈망하는데, 정작 정치인들이 좌파적 이념을 거부하는 아이러니가 정치적 분노를 한국당과 극우 지지로 나아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반동의 물결을 역사의 진보로 되돌릴 한국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언제쯤 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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