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경북 안동의 문중 정치, 바꿔 보시더! /허승규

10:13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경북 안동의 정치 문화 특징으로 ‘문중(門中) 정치’가 있다. 주요 선거에서 후보자 성씨(姓氏)/가문(家門)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문화다. 2000년대 이후 당선된 안동시 국회의원과 안동시장은 모두 ‘안동 김씨’ 또는 ‘안동 권씨’다. 국회의원이 ‘안동 권씨’에서 ‘안동 김씨’로 바뀌면, 우연의 일치인지 안동시장은 ‘안동 김씨’에서 ‘안동 권씨’로 바뀌었다. 국회의원/시장뿐만 아니라 광역의원, 기초의원, 농협 조합장 선거 등에서 후보자 성씨와 문중은 주요 변수로 이야기된다. 선거를 앞두면 후보자들이 종친회를 찾는 것은 일상적이며, 주요 문중들 간의 정치 구도를 예상한 언론 보도도 쉽게 볼 수 있다. 경북 안동뿐만 아니라 한국 지방선거에서 ‘문중’은 종종 중요한 변수로 언급된다. 이러한 문중 정치는 지방선거의 폐단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안동이 발전이 안 되는 이유로 종종 문중 정치가 거론된다.

그런데, 선거에서 혈연/학연/지연/종교와 같은 연고주의 투표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념과 정책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한국 지방 정치의 현실을 감안하면, 같은 값이면 ‘아는 사람’, 나와 조금이라도 이해관계가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역사회에서 ‘종친회’, ‘동창회’, ‘향우회’가 인맥으로서의 가치,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한다면, 연고에 따른 투표를 하는 유권자는 ‘합리적’이다. 이렇게 개별 유권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는 ‘문중 정치’는 무엇이 문제일까? 왜 ‘성씨’와 같은 연고 투표가 선거 과정에서 주요 변수가 되는 것이 문제일까?

먼저 문중은 태어나면서 주어지기에 평등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동창회’나 ‘종교단체’보다 선천적인 요소가 크다. ‘아버지 성씨를 어떻게 만나는지’에 따라 지역 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이러한 특징은 귀족적/계급적/가부장적이며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어긋난다. 또한 선거에서 ‘문중’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유력 문중이 아닌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든다.

한편 ‘문중’ 정치에 압도되어 가려지는 쟁점들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일당독재 사회와 달리 의견의 차이를 인정한다. 갈등은 필연적이다. 정치는 갈등의 억압과 표출을 다루는 일이다. 어떤 갈등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어떤 갈등은 가려진다. ‘문중’이란 쟁점은 귀족 사회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다수 시민들의 삶의 주요 쟁점일 수는 없다. 부차적인 변수면 족할 ‘문중’ 정치가 중요한 변수가 될수록 실제로 시민들이 몸소 느끼는 갈등과 지역 정치권에서 다루는 갈등의 거리가 커진다.

예를 들어 안동시민 다수가 낙동강 오염 문제를 걱정한다고 치자. 그런데 시민의 대의기관인 안동시의회에서 낙동강 오염 문제를 외면하고 지역구 예산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사회 갈등과 정치 갈등의 불일치가 생긴다. 시민의 삶과 정치의 분리다. ‘문중’ 정치는 정치를 다수의 보통 시민들에게 멀어지게 하고, 소수를 위한 정치를 강화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될수록, 정치혐오/냉소/무관심은 커진다.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유력 문중의 자존감을 높이는 정치에 16만 안동시민이 동원될 필요가 있는가?

실제로 같은 문중 출신 정치인이 당선되어도, 도움받는 문중의 수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안동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진성 이씨, 의성 김씨, 안동 장씨, 김해 김씨 등의 문중은 어떠한 대안을 말할 수 있는가? 문중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는가? 가문의 자존감을 높이는 효능감을 제외하면 문중 정치가 어떠한 공익적 역할을 하는지 안동 시민들에게 물어본다. 특히 아버지 성씨를 따르는 문중의 특성상, 종친회의 주요 간부는 거의 남성이다. 성별 불균형 정치를 개선하는데 문중 정치가 크게 기여할 일은 없다. 안동 여성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문중 정치는 무엇을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문중’정치 현상을 개선할 수 있을까?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욕만 한다고 바뀔 것인가? 문중 정치는 정치인 모두 ‘그 매이가 그 매이’(‘거기서 거기/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다’라는 뜻의 안동 사투리)인 선거의 결과다. 선거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비스무리하면, 문중 정치 현상을 바꾸기 어렵다. 문중 정치의 원인은 문중 자체보다, 문중 정치를 활성화시킨 정치 저발전이 원인이다.

그래서 문중 탓만 하기보다, 정치의 메뉴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중 정치의 영향력을 줄이려면 문중이 아닌 변수를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념, 정책, 가치 중심의 선거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지역의 다양한 정치 세력화, 다원적인 정당 경쟁 체계가 대안일 수 있다. 안동 김씨VS안동 권씨 구도보다 지역 일당 독점VS견제와 균형, 예산 낭비VS예산 감시, 낙동강 수질 개선VS지역 개발 사업 구도가 훨씬 공익적인 경쟁이다. 문중 정치를 개선하고 싶거나, 문중 정치 구도에서 불리한 이들은,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는 경쟁을 만들어야 한다.

▲2018년 지방선거 운동 기간 중 안동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 안동시의회 18명 중에서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이 아닌 시의원 2명이 있다. 최초의 민주당 시의원 2명이 있다. 앞으로 문중 변수보다 정당 변수가 두드러질 가능성을 높였다. 문중 경쟁 구도보다 정당 경쟁 구도가 공익적이다. 기초의회 정당공천제폐지 여부와 별개로 지역정당/지역정치모임은 허용해서 지역의 정치 다양성을 살려야 한다. 지역정당은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종속성을 경계하면서도 지역 정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통수호 안동시민연합, 변화를 위한 안동시민연대,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학부모 연합과 같은 지역정당이 서로 경쟁하면서 문중 정치 구도보다 공익적인 경쟁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양천 허씨, 안동에선 소수 문중이다. 청소년 시절 정치를 꿈꾼다고 하니, 지역의 어르신들은 성씨 때문에 너는 안 된다고 했다.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데, 그렇다면 한국은 현재 삼국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었다.

나는 2018년 지방선거 안동시의원에 출마하였고, 성씨보다 정당, 정책, 세대, 정치 다양성을 강조했다. 명함에 종친회나 본관을 명시하지 않았고, 대신 무소속이 아닌 녹색당으로 출마해서 정당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물론 종친이라고 자발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은 있었다. 같은 학교 출신이어서, 부모님과 아는 사이여서 얻은 표도 많다. 나 또한 내가 지닌 연고는 최대한 활용하였다. 고민 끝에 종친회 사무실에 가서 큰절도 드렸다. 그러나 연고 활용은 부차적인 변수였으며, 녹색당 허승규 후보의 주요 쟁점은 ‘18명 중에 1명의 다른 목소리’였다. 녹색당으로 출마해서 얻은 16.54%에서 문중 정치로 얻은 표는 얼마나 될까? 내가 의도한대로 표를 다 얻었다고는 못 하겠다. 그럼에도 기존 안동 정치 구도와 다른 구도를 만들기 위해 조금은 다른 방식의 선거운동을 택하였고, 여기에 반응한 시민들이 있었다.

선거 이후에는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지역사회를 바꾸려는 안동 청년들과 함께하고 있다. 문중 정치에 답답함을 느낀 안동 시민들에게 말씀드린다. 문중 욕만 하지 말고, 제대로 바꿔 보시더! 다가오는 2020년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지방선거에서 문중 아닌 주제로 떠들어 보시더! 종친회는 종친회 본연의 역할을 하고 정당은 정당 본연의 역할을 하는 선거판 만들어 보시더! 안동시민 여러분 함께 하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