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캠페인, ‘정치’, ‘자존감’, ‘동물학대’, ‘월경’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경화여고 청소년 공익활동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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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10:54 | 최종 업데이트 2019-09-17 16:03

오전까지 맑았던 하늘은 정오가 지나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11일, 오후 3시를 20분가량 남겨두고부터는 가랑비가 내렸다. 이따금 불어오는 돌풍이 들고 있는 우산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어떡해. 준비 많이 했는데” 회의를 마치고 나온 박성미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선임매니저가 안절부절못했다.

오후 4시부터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는 경화여고 학생 24명이 4개팀으로 나눠 준비한 공익캠페인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와 메세지팩토리협조합이 준비한 ‘청소년의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 사업 일환으로 준비된 행사였다. 학생들은 3시 무렵부터 광장에 나와 캠페인 부스를 만들고,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박성미 선임매니저는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곤, 서둘러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청소년에게도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은 이전부터 있었어요. 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업들은 일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성인을 대상으로 하거든요. 장기적으로 ‘청소년들도 공익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보자’ 그리고 ‘학교에서 동아리 활동 같은 정규 커리큘럼에서 공익활동을 배우는 길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사업이에요. 경화여고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 성격으로 운영된 거로 볼 수 있어요.” _ 박성미 선임매니저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박성미 선임매니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캠페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방은 비를 맞지 않도록 지붕 있는 무대 아래 줄 세워 놓았고, 비를 막아줄 붉은 천막을 쳤다. 캠페인에 필요한 물품을 둘 책상도 천막 가운데로 옮겼다. 흰색 블라우스를 입거나, 남색 생활복을 입기도 했고, 긴 머리, 단발머리, 안경을 쓰기도 하고, 화장을 하기도 한 학생들은 제각각인 모습처럼 제각각 궂은 날씨에 대응했다.

▲11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경화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공익캠페인이 진행됐다. (사진=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설명해 주세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준비가 마무리된 거로 보이는 한 팀을 찾아갔다. ‘정치 참여 필요성’을 주제로 캠페인에 나선 P.O.T(Politics of Teens, ‘십대의 정치’)의 캠페인 부스다. “이 캠페인을 하게 된 이유가 많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니 그렇게 어렵게 하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해라” 소현(17) 씨가 말을 이어가는데, 지켜보던 선우(17) 씨가 끼어들었다. 소현 씨는 “네, 일단 간단하게 일상생활에서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적어주세요”라고 말을 맺었다.

김소현, 장선우 씨는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공익메신저 활동을 함께하게 됐고, 4개팀 중 같은 팀도 선택했다. 같은 팀에서 ‘정치 무관심’을 주제로 캠페인에 나섰지만 18세 투표권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선우 씨는 “주변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친구들이 많다”면서 18세 투표권에 반대했고, 소현 씨는 “중학생만 되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며 18세 투표권에 찬성했다.

18세 투표권에 의견은 갈려도 두 친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은 같았다. 다만 ‘관심’의 방향은 조금씩 결을 달리했다. “지금 나라를 보면 참여하곤 싶은데 학생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캠페인을 통해서라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관심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소현 씨는 ‘참여’에 방점이 찍혔다. “정치가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부모님이나 언니처럼 어른들이랑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치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저는 거기에 끼질 못하니까 궁금했어요” 선우 씨는 ‘소통’에 무게추가 기울었다.

‘참여’든, ‘소통’이든 두 친구는 이번 캠페인 활동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는 동일하게 깨달았다. 그동안 좁은 의미에서 이해하고 있던 ‘정치’가 본인들 일상에서도 언제나 함께였다는 점을 알게 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는 딱딱한 이미지였는데, 다른 부류(일상의) 정치를 평소에 접하고 있구나, 다만 그게 정치인지 모르고 있었던 거구나. 그런 걸 알게 됐어요” 소현 씨가 말했다.

▲11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경화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공익캠페인이 진행됐다. (사진=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두 친구 왼편에선 ‘오, 캡틴, 마이 캡틴’이란 대사로 유명한 <죽은 시인의 사회>를 소설로 읽은 김혜진(17) 씨가 ‘청소년 자존감’을 주제로 캠페인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꿈이라는 팀원 정유진(17) 씨가 자존감 테스트를 한 결과지를 넘겨주면, 혜진 씨가 ‘처방약’을 지어줬다. 젤리와 초콜릿, 비타민C와 함께 ‘절대 고개를 떨구지 말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라’는 같은 옛 위인의 명언이 처방됐다.

‘청소년 자존감’ 팀의 이름은 ‘캡틴’, 혜진 씨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소설을 읽으며 울림이 커서”라고 팀 이름 배경을 설명했다. 청소년 자존감을 주제로 캠페인에 나서게 된 것에 대해선 “저도 그렇지만 친구들을 보면 성적 문제나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서로 비교하고 고민을 많이 하는 걸 봐요”라고 말했다.

유진 씨는 이번 기회로 꿈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청소년 관련 사회단체에서 그동안 몰랐던 청소년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됐구요. 많이 도와줄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유진 씨는 소감을 전했다.

▲11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경화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공익캠페인이 진행됐다. (사진=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두 친구 뒤에선 고양이 집사 김유진(18) 씨가 팀원들과 함께 동물 캐릭터를 열쇠고리로 만드는 부스를 운영했다. 슈링클스 종이을 미리 제작한 동물 캐릭터에 덧대 그린 후 오븐에 30초만 돌리면 종이가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굳어져 액세서리가 됐다. 유진 씨가 속한 ‘세이브 어 라이프’팀은 동물학대 반대가 캠페인 주제다. 부스 한켠에선 유기견 보호소 보호기간을 늘리는 걸 청원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유진 씨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열쇠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캠페인 마무리하는 소감이 어때요?” 팬더를 그리며 유진 씨에게 물었다. 유진 씨는 “조사하면서 동물 학대 수치가 이렇게 높은지 몰랐는데 알게 됐고, 학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작은 캠페인이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됐어요 해요”라고 답했다.

▲11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경화여고 학생들이 준비한 공익캠페인이 진행됐다. (사진=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마지막 부스는 참여자들 스스로가 여성인 만큼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터부시하거나 이야기를 꺼리는 주제가 캠페인 대상이었다. 팀 이름도 그에 걸맞게 여성 영웅을 뜻하는 ‘Heroine(히로인)’으로 정한 그들은 ‘월경에 대한 인식개선’을 캠페인 주제로 했다. 월경지식 ox 퀴즈를 하는 옆에서 백수현(18) 씨는 다양한 모양의 면 생리대를 부착한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맞았다.

수현 씨와 히로인 팀원들은 여성을 주제로 논의를 거듭하고, 여성단체도 방문해 이야길 나눈 끝에 월경을 캠페인 주제로 삼았다. 수현 씨는 “팀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주제로 골랐다”며 캠페인을 준비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대놓고 이야길 안 할 뿐이지, 여성으로서 월경은 누구나 겪는 거잖아요. 숨기기보다는 먼저 드러내면 다른 사람들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또 남성들도 월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여성도 잘 모르는 게 많아요. 월경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알려드렸으면 해서 어려운 주제지만 선택을 하게 됐어요”

수현 씨 본인도 이번 캠페인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수현 씨는 “면 생리대도 처음 보고, 사실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가 굉장히 비싼데, 그래서 저소득 아이라든지, 개발도상국 아이들은 생리대를 잘 못 써요. 그런데 원가가 정말 낮다는 걸 알고 놀랐거든요. 그런 부분도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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