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레거시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묻는 ‘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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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역대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11월 20일이면 가쓰라 다로(1848~1913) 전 총리의 2,886일 재임기록을 깨고 역대 최장기간 집권한 총리로도 등극한다. 일본 헌정사상 최장 재임 총리를 눈앞에 둔 아베 총리는 2017년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사학재단인 모리토모·가케학원의 스캔들은 그를 퇴진 위기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당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활용한 대북 위기론을 내세워 돌파한다.

<신문기자>는 이 스캔들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가케학원 스캔들은 이 사학재단 소유 오카야마 이과대학이 수의학부 신설을 정부로부터 허가받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일본에서 수의학부 신설 허가가 난 것은 52년 만의 일이고 이곳만 규제 완화 혜택을 받았다. 수의학부가 들어선 곳은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덕분에 정부로부터 사업비 절반을 지원받기도 했다. 결정타는 가케학원 이사장 가케 고타로가 아베 총리와 오랜 친구라는 점이다.

영화는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익명의 제보와 고위 관료의 석연치 않은 자살, 정권이 조작한 가짜 뉴스들 속에 진실을 찾아 나선 신문기자의 여정을 그렸다. 친아베 저널리스트의 성폭행과 가케학원 사건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의 자살 등 영화의 핵심 사건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4년차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는 신문사로 들어온 익명 제보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정부의 외압을 뚫고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저널리즘을 정공법으로 다룬 <스포트라이트>나 <더 포스트>처럼 끈질긴 취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형태다. 사건을 밀도 있게 압박하며 긴장감을 높이지 않고, 잔잔하고 차분하게 사건을 이끌어간다. 이에 따라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엮인 사람들의 상황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한국에선 그동안 직설법, 풍자 등의 방식을 활용한 영화가 흥행한 탓에 <신문기자>를 고저가 없이 지루하다고 볼 여지가 높다.

<신문기자>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잃어버린 언론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도쿄신문 사회부 소속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그는 ‘언론이 더는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모치즈키는 영화에서 TV토론 속 패널로 등장한다.

모치즈키는 2017년 6월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에서 40분 동안 23차례 질문을 쏟아내 주목받았다. 정치부 기자들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에서 사회부 기자가 질문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지만 10분 정도면 끝나던 회견이 40분 이상 진행된 것도 관례를 깬 것이다. 그는 이후에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부가 불편해하는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질문하면서 총리관저의 눈엣가시로 찍혔다.

영화는 한국 현실과 닮아있다. 일본 내각정보실에서 비밀리에 음해성 정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뜨리는 모습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 집단과 언론이 결탁한 정언유착이나 언론이 진영 논리와 출입처 입김에 휘둘리는 실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밖에 새로운 플랫폼과 뉴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언론의 현실도 공감된다. 그만큼 최근 독립성과 비판의식을 회복하라는 취지로 시민들이 외치는 언론 개혁이 깊게 반영된다.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고 의심하라”는 메시지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신문기자>는 일본에서 흥행했다. 143개 영화관에서 개봉하고도 한 달 만에 33만 명을 동원, 수익이 4억 엔(약 43억7천500만 원)을 넘었다. 흥행의 이유는 전통 매체의 역할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도 흥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