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로 1번지'에서···도로공사 점거 두 달, 우리가 농성하는 이유

점거 농성 61일···공사, 대법 승소자 직접 고용 후 낫질, 삽질
"아내, 며느리, 엄마 아닌 나로 살기 위해"
"나의 권리 보장받기 위해"
"후배들, 자식들 비정규직 안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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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18:18 | 최종 업데이트 2019-11-08 18:24

"민주노총 소속 수납원들도 소모적인 농성을 즉각 중단하고 하루빨리 합의에 동참해 안정된 고용상황 속에서 판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고용해결에 도움이 될 것"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 농성 60일째던 지난 7일, 공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이같이 밝혔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원하면 지난 10월 공사와 한국노총 합의를 적용해 줄 테니, 농성을 중단하라는 요지다. 2심 계류 중인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2명도 한국노총 합의를 적용해 직접 고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서울고등법원의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 인용 결정에 따라 복귀한 거라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재하고, 공사와 한국노총이 합의한 대로 대법원 판결 승소자 중 직접 고용을 원했던 이들은 직무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배치됐다. 수납 업무는 아니다. 청소나 영업소 주변 풀베기, 삽질 등 이른바 '현장지원업무'다. 노조에 따르면 벌써 두 명이 낫질하다 손을 베여 8바늘 이상 꿰맸다. 풀 베다 뱀을 보고 놀라 쓰러져 실려 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본사를 점거 중인 이들은 수납 관련 업무로 직접 고용돼야 한다는 투쟁력이 더 돋았다.

<뉴스민>은 8일 오전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농성장을 찾았다. 로비 밖에서 농성하던 100여 명이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앞으로 투쟁 거점을 옮겨갔다. 일부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무실로 갔다. 130여 명이 로비 안에 남아 "수납 업무 직접 고용"을 외치고 있었다. 로비 안에는 웃풍이 그대로 들어왔다. 햇빛이 비치지 않아 바깥보다 더 한기가 든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로비 점거 농성장, '투쟁로 1번지'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노조별, 지역별로 자리를 잡고 나름대로 '집'을 만들었다. 로비 한가운데 '직고 광장'에서 '투쟁로 1번지'를 따라 들어가면 각종 라면 박스와 스티로폼 박스로 벽을 세운 집들이 나온다. '북강릉 캐슬', '금순이네 수선집' 등 이름도 붙였다. 벽 곳곳에는 '직접 고용', '우리가 이긴다', '함께 싸워 승리' 등 문구가 적힌 배지와 플래카드, 모자 등이 걸려있다.

"누구의 아내, 며느리, 엄마가 아닌 나"
전남 담양 톨게이트 수납원, 정은자(54) 씨

비상구 자리 앞에 자리를 잡은 정은자(53) 씨는 전남 담양 톨게이트에서 지난 2016년부터 일했다. 자회사를 선택하지 않자 용역회사와 계약이 만료된 6월 30일 직후부터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투쟁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누구의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로 한 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튼튼한 내 직장이 있어야 하잖아요. 다른 직장 구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직업이 좋아요. 우리 남편이 꼭 해야겠느냐고 해서, 내 직장이고 소중한 직장인데 당당하게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어요. 당신한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구하는 거다 이랬더니 아무 말도 안 해요. 농성하다가 45일 만에 남편 얼굴을 봤는데 얼마나 서먹하던지^^."

▲정은자 씨의 공간, '공공연대 직고학과 19학번 정은자'

은자 씨 머리맡에는 '공공연대 직고학과 19학번 정은자'라고 적힌 책이 놓여있다. 간식 박스를 쌓아 손거울과 스킨, 로션 등을 놓고 작은 화장대도 만들었다. 비상구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신문지와 비닐로 문을 막았다. 그래도 바람이 불면 비밀이 풍선처럼 부풀어 들어온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은자 씨는 "1심, 2심 승소하고 대법원 판결만 앞둔 상황에서 느닷없이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라고 자회사 정책을 들고  나왔다"며 "우리는 그대로 있었으면 다 직접 고용 노동자가 됐을 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자회사는 1년마다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민간 기업이 된다. 민간 기업은 수익이 안 나면 공중 분해된다. 그게 눈에 보인다"며 "자회사를 만든 그 자체가 고용불안이다. 굳이 더 큰 용역회사를 만들었다"고 반발했다.

은자 씨는 "한국노총과 공동투쟁을 해왔는데 그쪽이 공사와 합의를 해버렸다. 조합원들이 생전 해보지도 않은 낫질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비열한 합의 조건에 따라 들어가지 않을 거다. 직접 고용은 이미 된 거고, 수납 관련 업무를 합의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해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로비 점거 농성장

조합원도 몰랐던 한국노총 합의
"그 노조엔 내 권리가 없어"
경남 동김해 톨게이트 수납원, 윤주영(56) 씨

한국노총 합의에 반발해 노조를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한 이들도 있다. 경남 동김해 톨게이트에서 일한 윤주영(56) 씨는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톨게이트노조에서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공사와 노조 사이에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알 수 없었다.

주영 씨는 "합의안에 저희 권리 보장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대법원 판결 이전 조합원은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2015년 이후 입사자는 또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가 막혔다"며 "그 노조에 있다가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되고 서울로 김천으로 열심히 투쟁했다. 너무 답답했다. 투쟁 기금 내고, 사람 동원하는 중간 심부름밖에 하지 않은 거 같다"며 "협상 내용을 밴드에 올려서 질문하면 김천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설명했다. 그것조차 설명하는 사람마다 말이 달랐다. 반은 협박이고 반은 희망 고문이었다"고 떠올렸다.

한국노총을 탈퇴한 또 다른 조합원은 당시 합의 소식에 "당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부를 믿고 따랐는데, 우린 내용을 몰랐다"며 "직접 고용이라는 게 정년을 보장하라는 건데 자회사는 더 불안하다. 옛날에는 용역업체 사장이 다 다른데, 여기는 한 명이다. 정년이나 임금이나 1대1로 도로공사랑 입만 맞추면 된다. 더 나빠졌다"고 꼬집었다.

주영 씨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 현장에 복귀한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오히려 자회사로 돌아설까 걱정했다. 그는 "자회사로 가지 않기 위해 이 투쟁을 시작한 건데, 지금은 자진해서 자회사로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너무 허무하다"고 말했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로비 점거 농성장

"남은 정년 1년, 투쟁으로 채워도
후배들, 자식들은 비정규직 되지 않길"
전북 진안 톨게이트 수납원, 조미경(59) 씨

전북 진안 톨게이트에서 일한 조미경(59) 씨는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다. 지난 2002년에 입사해 18년째 일했는데, 직접 고용을 선택했다가 계약이 만료됐다. 해고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자회사를 택했다.

미경 씨는 '수납 업무 직접 고용'을 쟁취하고 로비를 나가는 날, 공사 뒤로 난 산책로를 걷고 싶다고 했다. 농성하는 두 달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크게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조합원들과 함께 율동 연습을 하는 게 전부다.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 걸리는 게 가장 무섭다.

그는 "내가 입사한 해 처음으로 비정규직으로 뽑기 시작했다. 그렇게 18년 동안 매년 재계약하면서 일했는데, 직접 고용 선택한다고 해고됐다"며 "이제는 내 정년이 다 될 때까지 (합의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못 돼도 후배들은 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여기 남아있다"고 말했다.

미경 씨는 후배 걱정, 자식 걱정이 앞섰다. 그는 "요즘은 공무원이나 공사 아니면 다 비정규직이더라. 우리 애들도 처음에는 몇 년을 (비정규직으로) 했다. 일자리가 불안하니까 결혼도 안 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내가 당해보니까 이해가 된다. 언제 또 이렇게 해보겠나. 오히려 보람차다"고 말했다.

▲김천 한국도로공사 로비 점거 농성장

이날 오후 6시부터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경북본부,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는 본사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연다. 전태일 49주기를 앞두고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민주일반연맹 소속 조합원은 전태일에 편지를 보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빚지고 있는 저는 아직은 전태일 열사를 모릅니다. 저는 이제 겨우 투쟁 병아리인데 얼마나 더 처절해야 전태일 열사를 알 수 있을까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 시대에 외쳤던 절규,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와 자본은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기계화를 주장하며 노동자들을 기계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뭉치고 단결해 옳음을 부정하는 이 나라를 바로 잡고 전태일 열사의 불꽃이 마음에 닿을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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