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뜨거운 외침, “우리는 당당한 존재”

한국피플퍼스트대회, 발달장애인의 눈으로 ‘평등’ 외치다

14:31

“하나, 우리는 하나이고 평등하고 영원하다!”
“하나, 똑똑한 사람이든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하나, 우리도 장애인이기 전에 인간이고 싶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류청우 한국피플퍼스트대회 공동집행위원장이 하나씩 슬로건을 외치면, 넓은 강당에 모인 수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조력자들이 끝 구호를 따라 외쳤다. 발달장애인 스스로 만든 슬로건 한 문장 한 문장에 그들만의 힘과 결의를 담았다.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각 지역별 기수들이 팻말을 들고 입장했다.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각 지역별 기수들이 팻말을 들고 입장했다.
▲대구 덕영연회장에서 열린 한국피플퍼스트대회에는 300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대구 덕영연회장에서 열린 한국피플퍼스트대회에는 300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

‘정신지체’가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람’으로 불리길 원한다는 외침, 피플퍼스트(people first).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이미 전 세계 43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권리 선언과 실천의 장인 피플퍼스트대회가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대구 덕영연회장에서 열렸다.

앞서 2013년부터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주최가 되어 비슷한 형식으로 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가 열렸던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회 준비과정에서부터 비장애인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한국피플퍼스트추진위원회(준)가 이번 대회를 직접 준비했다. 이를 위해 서울, 경기, 충북, 대구, 경남, 울산, 광주 등 전국의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이 추진위에 결합하고, 대회 이름에도 당당히 ‘피플퍼스트’를 내세웠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개인별 복지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발달장애인법’ 시행을 하루 앞둔 이날, 전국에서 모여든 3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앞으로 더욱 당당하고 평등한 인간으로서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말하고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발달장애인의 권리가 어느 때 보다도 크게 울려 퍼진 1박2일의 현장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한국피플퍼스트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인 류청우 씨(왼쪽)와 조수진 씨(오른쪽)
▲한국피플퍼스트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인 류청우 씨(왼쪽)와 조수진 씨(오른쪽)

# 발달장애인의 눈으로 말하는, 장애등급제와 탈시설

장애인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침해하는 커다란 두 개의 벽, 장애등급제와 장애인 수용시설. 이에 대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울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김대범 씨와 대구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최관용 씨는 각각 이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발표했다.

▲장애등급제에 관한 주제발표가 진행되는 모습.
▲장애등급제에 관한 주제발표가 진행되는 모습.

“우리나라에는 ‘장애등급제’라는 나쁜 제도가 있습니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이 소나 돼지가 아닌데, 1급부터 6급까지 등급을 나누는 제도입니다. 제 생각에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엉터리인 것 같습니다.?오랫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해서 나온 장애등급 3급인 송국현 아저씨는 활동보조가 너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활동보조서비스를 2급까지만 받을 수 있어서 집에 불이 났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저씨는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혼자 있었습니다.?우리는 낮에도 밤에도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 결과 2급까지였던 활동보조서비스를 3급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장애등급제가 있어서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여러분도 서울에 오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주세요. 그리고 같이 외쳤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따라 외쳐주세요! 장애등급제 폐지하자, 투쟁!!!” (김대범 씨)

▲최관용 씨가 탈시설에 관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최관용 씨가 탈시설에 관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저는 제가 장애인인지 몰랐었고, 20살이 되고 알았어요. 그리고 20살 때 양육원에서 장애인시설로 가라고 했어요. (시설에서)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제가 폰이 있었는데, 시설 선생님이 ‘같이 있는 사람들이 폰이 없는데, 왜 너만 있냐“면서 폰을 압수했어요. 연락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는데, 폰을 압수하는 거예요.

외출도 외박도 자유롭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설에서는 한숨밖에 안 나오는 거예요. 시설 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자립하고 싶다고 말하고 무릎도 꿇고 빌었어요. 그런데도 소용없다고 말해서 결국 그냥 나왔어요. 근데 결국 잡혀 들어갔어요.

2014년에 대구다릿돌센터 체험홈에 오게 되었어요. 저는 혼자서 생활하고 싶었고, 혼자 살면서 아는 사람들이랑 자유롭게 놀고 싶었어요. 체험홈에서는 동료상담도 하고, 자립에 필요한 훈련도 하고, 야학에 다니며 공부도 해요. 그리고, 저금도 하면서 영구임대아파트로 갈 준비도 해요.

저는 4월에 탈시설 장애인 활동가들이랑 투쟁을 하는 ‘탈선(탈시설투쟁 선봉대)’을 했어요. 탈선은 ‘시설을 넘어, 세상의 차별을 넘어 탈선하자’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는 거예요. 저는 지금 자립도 하고 투쟁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투쟁하는 활동가가 되어서, 저와 같은 장애인도 시설에서 제가 경험했던 것을 겪지 않고, 지역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최관용 씨)

# 우리를 가로막는 차별의 장벽, 함께 소리쳐 깨뜨려요!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노동 현장에서 발달장애인은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낯선 용어를 쏟아내면서도 어느 누구도 발달장애인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언제나 잘 알아듣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탓으로 돌리고, 이들을 사회활동에서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다 여긴다.

피플퍼스트대회 참가자들은 이런 비장애인 중심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오는지, 그것이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의 권리를 얼마나 제약하는지를, 조금은 서툴지만 분명한 메시지로 상황극에 담았다.

▲발달장애인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은 상황극 공연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발달장애인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담은 상황극 공연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영호: 여기는 나의 직장. 오늘부터 첫 출근이다. 정말 어렵게 취업을 했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이제 드디어 나의 힘으로 돈을 번다! 열심히 일해서 우리 엄마 선물도 사주고 연애도 해야지. 어떤 사람들과 일하게 될까? 정말 기대가 된다!

(…)

영호: 안녕하세요! 잘 부탁…

작업반장: (말을 자르고) 니 자리는 저기야. 저리로 가. 그리고 이제부터 나를 반장님이라고 불러.

영호: 아, 네. 반장님.

작업반장: 자, 바로 일 시작한다. 오늘은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으니 사용법을 가르쳐주겠다. 이 기계에 동그란 셀을 넣는다. 양쪽 꼭다리를 컷팅하고. 다들 알아들었겠지? 그럼 한 명씩 해 봐.

영호: (자신 없는 표정. 결국 실수를 한다. 실수하면 삐- 소리가 난다.)

작업반장: 뭐야 임마! 실수를 하면 어떡해?

영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작업반장: 다들 척척 잘 하잖아. 왜 너만 이해 못 하는 거야? 이게 뭐가 어려워!

영호: 죄송합니다. 사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시 한 번만 알려주세요.

사회자: 자, 여러분. 영호 씨 왜 힘들어 하고 있죠? 네. 공장의 반장님이 어렵게 가르쳐 줬어요. 그래서 영호 씨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못 알아듣는다고 다그쳤어요. 영호 씨도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일을 못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반장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영호 씨가 힘들어 하잖아요! 우리가 일터에서 무언가를 배울 때 좀 더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모아 함께 외쳐볼게요. “우리에게도 일할 권리가 있다!”

# 나의 권리를 말하고, 함께 춤을 춰요!

“커피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
“직장에 다니고 싶다.”
“천천히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여행을 마음껏 다니고 싶다”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회원들.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회원들.

대회 둘째 날, ‘나의 권리를 보여줘’ 시간에 쏟아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자신이 꿈꾸는 것, 누리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없이 통제하고 억압하기만을 고집하는 이 사회를 향해 크게 비웃기라도 하듯이.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발달장애인 스스로 만들어낸 그 웃음은 1박2일 내내 노래와 춤, 그리고 함께 나누는 어깨동무를 타고 더 크게 울려퍼졌다.

조수진 한국피플퍼스트추진위원회(준) 공동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조수진 씨
▲조수진 씨

▶ 피플퍼스트대회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인가요?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전국발달장애인당사자대회를 가서 한국 피플퍼스트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작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피플퍼스트대회에도 가봤습니다.

▶ 이번 대회 준비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사회를 본 것입니다. 직접 폐회 선언문 낭독도 하구요.

▶ 내년에 대회를 또 하고 싶다고 했는데,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공연도 하고, 마술도 하고, 노래 장기자랑 등등 많이 하고 싶어요.

▶ 이번에 사람이 300명이나 왔는데요, 내년에는 얼마나 왔으면 좋겠어요?
500명 이상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정말 열심히 준비해야겠네요.
네,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기사제휴=비마이너 / 하금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