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부당해고 저항하려면 가족과 연 끊으라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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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14:28 | 최종 업데이트 2019-12-04 17:29

지난 8월 23일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22명은 4년 만에 법원 앞에서 웃었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제1민사부(부장판사 박치봉)가 “아사히글라스가 직접고용 당사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시위할 때마다 벌금형을 내린 법원이 처음 노동자들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바로 복직되진 않았다. 판결에 불복한 회사가 항소했다. 노동자들은 다시 법원을 찾았다. 고용 의무를 위반한 아사히글라스가 최저임금은 지급해야 한다는 손해배상 소송과 가처분 신청을 냈다. 최소한 생계 걱정 없이 해고의 부당함을 다툴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아사히글라스가 마땅히 져야 할 고용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일터에서 받아야 할 임금의 일정 부분을 달라는 요구였다. 이미 2017년 8월 동양시멘트, 2019년 10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같은 소송에서 생계비를 줘야 한다는 결정을 받은 바 있었다.

12월 4일 해고노동자들은 법원 앞에서 웃지 못했다. 기대가 어그러졌다. 직접고용 결정을 내린 법원은 해고노동자에게 ‘부양의무제’를 적용했다. 11월 26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제2민사부(재판장 김정태)는 소득이 있으니, 22명 가운데 6명에게 평균 40만 원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민 후원 등을 모아 노조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 97만 원을 소득으로 봤다. 성년이 된 가족의 소득도 따졌다.

기초생활수급 기준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가난해도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가족이 있으면 생계·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해고노동자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보전 필요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해 “가족 구성원의 수와 연령, 부양자와 피부양자의 구성 비율, 가계 전체의 수입에서 근로자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 등”을 따져봤다.

후원금은 생존을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법원의 결정은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려면 가족과 연을 끊으라는, 노동조합이 해고된 조합원의 생계에 신경 쓰지 말라는, 응원하는 시민에게 금전적 후원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빈곤층의 극단적 선택이 벌어지고 나면 부양의무제가 발목을 잡은 경우가 많았다. 법원이 해고노동자의 발목을 잡았다.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 차헌호 씨는 “싸우려면 그렇게 고생해서 한 번 싸워봐라. 이렇게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12월 4일로 예정됐던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은 또다시 연기됐다. 1심 선고 후 4개월째 공판 한 번 열리지 못했다. 또다시 해를 넘기게 됐다.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노동자들은 구미시, 노동부, 경찰, 검찰을 상대로 4년 6개월 동안 줄기차게 해고 사태 해결을 요구했다. 넘고 넘어 법원 앞에 섰다. 문을 열자 법원은 손해배상금 없이도 4년 6개월 동안 살아있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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