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급여 수천만 원 쿠폰으로 준 영천 인력소개꾼

지역 농가, 일손 부족·고령화로 인력 부족 시달려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 안돼···꼭 필요한 사람들"
제도적 미비로 이주노동자 보호 허점

11:00

영천 농장을 돌며 일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린진(가명, 54) 씨는 급여를 쿠폰으로 받았다. 명함 크기 황금색 쿠폰에는 인력 중개업자 윤 모 씨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혔고, 영천 특산물인 양파와 마늘이 그려져 있다. 쿠폰에는 1, 5, 7, 10만 원이라는 글자도 큼직하게 적혀 있다.

린진 씨는 일당으로 7만 원짜리 쿠폰을 받았다. 하루 일이 끝나면 베트남 동포 A 씨가 현금 대신 쿠폰을 줬다. 현금은 A 씨와 윤 씨가 챙겨갔다. 린진 씨는 농가에서 일당으로 실제 얼마를 주는지, 수수료가 있다면 얼마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중개업자 윤 씨 동업자 A 씨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나눠준 쿠폰

처음부터 쿠폰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2017년 말, 처음 일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하루 일당을 꼬박꼬박 받았다. 린진 씨와 남편 누프억팅(가명, 55) 씨는 한국에 시집간 딸의 초청으로 2017년 한국에 왔다. 출산한 딸의 육아를 도우려 딸 내외가 사는 경주에 정착했지만, 그렇다고 육아만 할 수도 없었다. 얹혀 지내며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베트남에서 공장에 다니며 2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다른 두 자식의 처지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가난했다.

취직할 수 없는 초청비자(C-3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상적인 임금노동은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SNS를 통해 자신 같은 처지의 사람도 일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곤 중개업자 윤 씨, 윤 씨의 동업자이자, 지역에서는 ‘장미’로 불리는 베트남인 A 씨와 연락이 닿았다.

영천에 10만 원짜리 월세를 얻었다. 영천은 인구 10만의 도시지만, 농촌인 신녕면에는 빈집이 많았다. 그 빈집 중 하나를 얻고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는 라면, 점심에는 일터에서 주는 도시락을 먹었다. 농촌에는 린진 씨와 비슷한 처지의 베트남 동포가 많았다. 초청비자를 통해 들어와, 언제 단속될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를 감수하고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 한 달 정도 일당을 꼬박꼬박 주던 A 씨는 2018년부터 쿠폰을 주기 시작했다. 일당을 못 받으니 당장 월세 낼 돈부터 없었다. 몸이 아프면 한국말을 잘하는 A 씨가 병원에 데려다줬다. 병원비는 받지 못한 일당에서 공제됐다. 베트남을 다녀 올 비행깃값이 필요할 때처럼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밀린 일당을 달라고 사정해야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2018년 말, 장인, 장모가 웬 쿠폰을 수두룩이 가지고 있기에 이상하게 여긴 사위가 묻자, 그제야 린진 씨 부부는 2018년 밀린 임금이 1,2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위는 윤 씨를 찾아가 잔금을 모두 치르겠다는 각서를 받아냈고, 2019년들어 2018년 체불 일당을 모두 돌려받았다.

하지만 2019년에도 윤 씨는 일당을 쿠폰으로 지급했다. 체불된 일당만 1,500만 원이 넘었다. 모두 정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쉽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린진 씨는 그해 자신처럼 윤 씨를 통해 농가에 파견되는 베트남 동포가 어림짐작으로도 150여 명에 달한다고 추측했다.

▲2019년에도 윤 씨는 임금을 체불했고, 그 액수는 1,500만 원을 넘겼다.

영천 상인·농가선 윤 씨 임금체불 소문 자자
주변 상인들, 쿠폰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기도

사위로부터 린진 씨 부부 소식을 접한 대경이주연대회의(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는 지난 4일 오전 11시, 윤 씨가 운영하는 영천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찾았다. 윤 씨와 A 씨를 만날 순 없었다. 대신 국을 끓이고 있는 베트남 여성이 한 명 있었다. 통역을 맡은 성서공단노조 활동가 윤다혜 씨는 그녀 또한 초청비자로 왔으며, 돈을 받고 일하는 건 아니라고 전했다.

2층짜리 기숙사에는 주방이 하나 있고, 이주노동자들이 지내는 방이 최소 4개 이상 밀집해 있었다. 방 하나에 개인 노동자, 부부 노동자가 뒤섞인 듯, 한 이부자리에 베개가 두 개 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작업복으로 보이는 옷들이 널려 있고, 특별한 가구 없이 여행용 캐리어에 옷이 담겼다.

일당을 쿠폰으로 지급하고 제대로 정산하지 않자, 이주노동자들은 일당 받기를 포기하고 베트남으로,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떠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숙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윤 씨가 운영 중인 이주노동자 기숙사

연대회의 회원들은 2시간가량 윤 씨를 기다리다, 주변 상가·농가를 탐문했다. 상인 B 씨는 손님들이 떠나자 넌지시 알렸다. B 씨는 쿠폰을 받은 후 일당 지급을 사정하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봤다. B 씨는 그럴 때마다 “왜 그런 걸 받았느냐,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고 타이르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쿠폰에 액수가 적혀있길래, 이런 거 받아도 효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 돈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쿠폰을 매일 줬어요. 그 집에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쿠폰을 주기 시작하던데. 베트남에 와서 뼈 빠지게 고생만 하고 돌아간 사람이 많습니다. 며칠 전에도 일하고 돈 못 받아서 생활비 없다고 싸우는 걸 봤어요. 피해 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B 씨)

기주(가명) 어머니로 불리는 결혼 이주 여성 C 씨도 말을 보탰다. “진짜 심해요. 1천 만원 넘게 못 받은 사람이 수도 없어요. A 씨는 사기꾼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도 3,400만 원을 못 받았다고 해요.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도 많아요.”

지역 농가, 일손 부족·고령화로 인력 부족 시달려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 안돼···꼭 필요한 사람들”
제도적 미비로 이주노동자 보호 허점

“여기요, 그 사람들 없으면 농사 꿈도 못 꿉니다. 그 사람들 없으면 농촌은 안 돌아갈 겁니다.”

영천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농민 D 씨는 연대회의 활동가를 만나자 이렇게 설명했다. 인구 고령화를 겪는 지방 중소도시는 농번기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1월 기준으로 영천시 인구 102,433명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7,579명이다. 26.9%, 초고령화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선 20%를 훌쩍 넘어선다. 린진 씨가 일한 신령면은 3,981명이 사는데 이중 1,566명(39.3%)이 65세 이상 인구다.

농가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부족한 일손에 일당까지 싼 이주노동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영천 농가는 통상적으로 한국인 일당 11만 원, 이주노동자 일당은 8만 5천 원을 준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잘 해내는 쪽은 언제나 이주노동자 쪽이다. 한국인은 일당이 많은데도 하려는 사람이 드물다.

“영천 농사, 놉을 얼마나 잘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역에는 윤 씨처럼 놉을 조달해주는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랑 거래하다 보면 주거래처도 생기게 됩니다. 외국인들이 하루 이틀하고 안 맞으면 그만두는 경우도 많은데, 농가가 인력에 신경 안 쓰게끔 하는 곳이 잘하는 업체입니다. 윤 씨 쪽은 근래 들어 신용이 떨어져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없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하다가 망했다고도 하고, 도박을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임금 체불에 항의하면 출입국에 신고해서 잡아가도록 한다고도 들었습니다.” (D 씨)

▲윤 씨의 동업자 베트남인 A 씨 페이스북 갈무리. 이주노동자들이 영천 농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일명 ‘장미’, A 씨

농번기 인력 수요는 과다한데 이를 보완할 제도는 미비하다. 이런 상황에서 린진 씨처럼 농가에 꼭 필요한 노동자가 임금체불 같은 부당한 처우를 받게 된다.

법무부가 농어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곤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린진 씨 같은 경우도 채용돼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진 않다.

우선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외국 지자체와 별도로 MOU를 체결해야 한다. 근로 대상자 연령이 55세 이하로 제한돼 있고, 농장은 고용주로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농가 1가구당 채용 가능 노동자 수도 5명으로 제한된다.

영천시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위해 농가와 노동자를 1대 1 매칭해주는 농촌인력지원사업을 운용 중이다. 하지만 2019년 이 사업을 통해 매칭된 인원은 관내 372명, 관외 554명으로 농가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다보니 윤 씨 같은 인력소개꾼들이 성행한다. 영천시에 따르면 영천시에 허가를 받고 등록한 인력소개소는 37개소지만, 업체 사업주들 중에서 윤 씨 이름을 찾을 순 없다. 윤 씨 처럼 미등록 상태에서 인력소개업을 하는 이들은 시에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영천시 농촌지도과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는) 업체를 통해서 일한다기보다 연락책을 통해 현장에 간다. 이런 분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며 “농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영천만의 문제는 아니라서 해결이 시 차원에서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최선희 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농사도 기업화, 대규모화되면서 인력이 집중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영천 사례는 불안정한 신분의 이주노동자를 이용한 아주 악질적인 경우”라며 “제도로 농촌 인력난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든 아니든,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닌 노동자도 고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초청비자의 경우도 사실상 관광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잘못된 제도로 이를 막고 있어서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민>은 윤 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이야길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