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성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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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 연예인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여성의 폭로가 나왔다.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은 “거짓 미투는 없어져야 한다”며 맞고소로 대응한다고 한다. 시시비비와 법적 책임은 법정에서 가릴 일이지, 이 칼럼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부 우려스러운 시각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세간의 관심은 폭로한 여성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사람이고, 사건이 벌어진 곳도 바로 유흥업소라는 데 집중된 듯하다. 이 사실이 마치 문제의 본질을 밝히는 데 핵심인 양.

“유흥업소에서 무슨 성폭력?”, “유흥업소에서 성관계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데서 일을 했으면서 이제와서 딴소리야”라는 식의 주장이 인터넷 댓글에 공공연히 달린다. 심지어 멀쩡한 언론사에서도 기사 제목을 “유흥업소 직원인데 ‘강간죄’라니…”라고 뽑았다. 대놓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해진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고, 그녀들과 맺는 성관계는 강간일 수 없다는 말이다.

▲2019년 12월 10일 한국경제 인터넷판 보도

얼마 전까지 같은 취급을 받던 여성들이 있었다. 아무리 폭력적인 성관계를 해도 강간죄로 처벌받을 염려가 전혀 없던 대상들. 바로 결혼한 여성들이다.

“자신의 부인을 강간할 수 없다면, 도대체 누구를 강간할 수 있다는 말인가?”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상원의원이 한 말이다. 요즘 이런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엄청난 비판을 받겠지만, 때는 1979년이었다.

부부강간은 결혼한 사이에 한쪽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많은 나라에서 부부강간을 범죄로 다루고 있지만, 부부강간을 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미국의 경우 1993년이 되어서야 50개 모든 주에서 부부강간을 형법상의 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부부강간죄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2013년에야 나왔다.

전통적으로, 결혼한 사이에서 성관계는 남편의 당연한 권리이자 부인의 의무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부부 사이의 강간, 즉 동의를 받지 않은 일방적인 성관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불문법에서는 결혼을 사회적 계약으로 보았고, 이 ‘결혼계약’에는 남편이 부인과 성관계를 할 권리가 포함되었다. ‘결혼계약’을 지키기 위해 부인은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했고, 남편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동의 없는 성관계로 정의되는 강간은 애당초 부부 사이에 일어날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남성들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걱정없이 마음대로 강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자신의 부인이었다.

이런 관점은 영국뿐 아니라 부인을 남편에게 귀속되는 ‘소유물’로 취급한 모든 사회에서 통용되어 왔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법은 이런 성차별적인 ‘전통’에 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여성차별이 당연시되어 온 것과 괘를 같이한다.

미국에서도 이런 전통에 따라 197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아내를 강간한 남편은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앞에서 인용한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의 말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면서, 1976년 미국 최초로 네브라스카주가 강간죄에서 부부 예외조항을 삭제하기에 이른다.

미국에서 ‘정상적인 부부관계’ 즉, 부부로 같이 살고 있는 동안 부인의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한 남편이 기소된 첫 사건은 1978년 오리건주에서 일어났다. 그레타라는 여성은 남편을 강간죄로 고발했다. 사건이 벌어지기 한해 전인 1977년, 그녀가 살고 있던 오리건주가 부부강간 예외조항을 삭제하면서 부부 사이에 벌어진 강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레타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해왔다. 그날도 성관계 요구를 거부하는 자신을 남편이 강제로 때려눕힌 후 강간했다고 한다. 두 배기 딸 아이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은 성관계한 것은 인정했지만, 서로 동의를 받고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딸은 법정에서 증언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레타가 입은 부상에 대한 의사의 증언과 사건 당일 부부의 아파트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한 이웃의 증언이 그레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그레타의 남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법 조항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부부강간죄가 명시화된 오늘날에도 부부강간과 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구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여성이 남편이나 전 남편에게 강간당할 확률이 모르는 사람에게 당할 확률보다 4배 높고, 기혼 여성의 10-14%가 부부강간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강간 피해자 중 실제로 신고하는 경우는 일반 강간 사건보다 더 적다. 2009년 미국 연방 법무부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부부강간 신고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부부강간을 중대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일반적인 사회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부부강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낮다고 하더라도, 부인을 강간하는 것이 남편의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에 당신은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성관계는 일방적인 권리가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의 몸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처럼,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받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이는 2005년 노래방 도우미 여성에 대한 성범죄 사건에서 한국의 대법원도 인정한 일이다.

성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유흥업소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칼럼으로 남수경 칼럼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글을 써주신 남수경 변호사,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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