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의원 주민소환 참여 9,577명, 투표장 찾은 이유는 ‘아이’

대기오염도 걱정···"졸속적인 행정 문제"

12:05

“아이 엄마이고,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 이걸로 우리 의사를 보여주고 계속 반대할 거다” (이남경, 32, 여)

포항SRF(생활폐기물 에너지화시설)호동2 위생매립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인근에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반경 2.5Km 안에 학교가 7곳(대학 1개 포함), 학교 주위로는 아파트단지도 들어섰다. 그 때문일까, 18일 주민소환 투표장에서 만난 주민들 중 다수는 투표장을 찾은 이유를 ‘아이’로 꼽았다. 투표장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도 다수였다. 같이 온 아이의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고 SNS에 공유하는 주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포항SRF 인근 학교들(초록색 별표) 출처=네이버 지도 갈무리

<뉴스민>은 주민투표 날 오천읍 투표소 두 곳에서 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SRF에 반대 의사를 보였고, 특히 아이를 언급하며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나온 지적은 ▲악취 등 환경공해 피해 ▲지역 시의원의 역할 부재 ▲SRF 건립 과정에서 시의 홍보 부족 등이었다.

특히 아이를 언급하며 우려를 드러내는 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최 모(30, 여) 씨는 “아이를 키워야 하니, 투표에 나왔다.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시의원들의 책임이 있다”고 했고, 김태규(31) 씨도 “냄새가 심하고, 학부모라서 투표했다. 아이에게 좋지 않다. 이사를 하려 해도 집값도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32살 여성인 채 모 씨도 “아이 키우니, 투표했다”며 “시의원의 책임이 크다. 지역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북구에는 아이들 놀이터를 만드는데 남구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을 만들었다”고 했고, 30대 여성 유 모 씨도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아이를 위해 투표를 해줬으면 한다. 정책에 대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게 이 방법 말고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들은 눈에 띄게 나빠진 대기 환경 오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시의원들의 역할을 주문했다. 김형민(41) 씨는 “공기가 너무 나쁘다. 주민소환 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해결 방법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의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시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역할 해야 한다”고 했고, 정 모(44, 여) 씨도 “환경공해가 심하다. 눈만 뜨면 느껴진다. 쓰레기 냄새, 고무 타는 냄새가 심하다. 안 그래도 포스코 때문에 공해가 심한데 이런 공해시설을 졸속으로 들인 행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세진(35) 씨는 “살면서 쓰레기 냄새가 점점 심해졌다. 민원을 넣었는데도 해결되지 않았다. 주민소환이 잘 될 것 같진 않지만, 주민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투표하러 나왔다”고 했고, 24살 여성 이 모 씨는 “지역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 시의원의 책임을 묻고 싶다”고 했다.

<뉴스민>이 만난 10명 중 9명이 SRF 반대 의사를 보였다. 채상환(48) 씨는 지역 발전을 위해 SRF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건립 과정에서 시와 의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채 씨는 “지역 발전, 지역 활성화가 우선인데, 전체적으로 시에서 안이하게 대처했다”며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많다.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시설 공청회나 설명회 한 번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다. 시의원들도 주민들을 찾아가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잘못했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이나겸, 박정호 두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는 최종 9,577명(21.75%)이 투표하면서 투표함을 열지 못하게 됐다. 투표자 수가 오천읍 유권자 4만 4,028명의 ⅓인 1만 4,676명에 미치지 못하면 법에 따라 투표함을 개봉할 수 없다. 투표율과 무관하게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주민소환에관한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포항시에 따르면, 포항SRF는 2008년 11월 주민설명회 이후 2009년 2월 입지(포항시 남구 호동, 4만 5,000㎡) 선정이 완료됐다. 2015년 9월 환경영향평가를 마쳤고, 2019년 1월 완공돼 2월 19일부터 상업 운영을 시작했다. 민자 826억 원을 포함한 정부·시 예산 등 1,534억 원이 들어갔다. SRF란, 생활쓰레기를 고형연료로 가공해 이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18일, 포항시 오천읍에서 이나겸, 박정호 시의원 주민소환 투표가 열렸다. 투표장에는 어린이 손을 잡고 투표하러 온 주부·학부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