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m 고공에서 맞는 성탄절, 해고노동자 박문진 “내 용기는 연대의 힘”

[인터뷰] 고공농성 177일,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12:04

영남대의료원 옥상으로 난 환풍구는 여전히 굉음을 냈다. 한여름 두통을 부르던 악취는 날이 추워진 탓인지 익숙해진 탓인지 견딜만했다. 오늘(24일)로 영남대의료원 해고 간호사 2명이 고공 농성을 시작한 후 177일째다. 송영숙(42)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이 건강 악화로 내려간 뒤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이 홀로 농성을 한 지도 70일째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장에서 홀로 농성 중인 박 지도위원을 만났다. 박 지도위원은 벌써 옷을 5겹씩 껴입었다. 모자와 목도리, 장갑은 필수다. 침낭 안에는 핫팩을 10개씩 깔고 잔다. 70m 고공 위에 부는 바람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몰차다. 박 지도위원은 “제가 내려가서 조금 정신이 이상하면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아서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거라고 그래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의료원과 실랑이를 벌이며 한 여름이 지나 겨우 연결했던 수도는 동파 위험으로 다시 잠갔다. 김지영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을 위로 올렸다. 박 지도위원이 머리를 감을 때 쓸 물이다. 농성을 시작할 때 숏컷이던 머리는 단발머리가 됐다.

▲모자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만지는 박문진 지도위원

박 지도위원은 송 부지부장이 먼저 내려간 뒤 한동안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늘 위에 홀로 남겨진 것이 무서웠다. 불안한 마음을 붙잡기 위해 매일 500배를 시작했다. 두꺼운 방석을 하나 깔고, ‘톨게이트 직접 고용’이라고 적힌 손수건을 앞에 걸고 절을 올린다. 매일 찾아오는 까마귀와 안부 인사를 나누고, 밤에는 달에게, 아침에는 해에게 말을 걸어 본다.

“송 동지 내려가고 나서는 한 2주 정도는 많이 힘들었죠. 밤에 혼자라는 것 때문에 많이 무서웠어요. 사실 제가 굉장히 씩씩한 척하는데 겁도 많고 놀라기도 잘 놀라거든요. 그 이후로 매일 500배 절을 시작하면서 명상을 더 깊게 하면서 마음을 되잡았죠. ‘혼자다’, ‘밤이다’, ‘바람이 부는구나’.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매일 달님한테 빌어요. ‘나의 수호천사 달님, 잘 지켜주세요’.”

고공농성을 시작한 후 ‘제3자 사적조정’을 노사가 동의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첫 사적조정은 조정위원이 조정안조차 내지 못하고 끝났다. 지난 10월, 농성 100일을 넘겨 재개된 사적조정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예측했을까. 박 지도위원은 농성장에 올라오는 날 한 겨울옷도 챙겼다.

“각오는 했어요. 13년 동안 사측의 무능력한 태도를 보면서 만만치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방한복들을 다 챙겨 왔어요. 그래도 1차 (마무리 시점은) 연말, 2차는 또 언제, 이렇게 얘기했었어요. 각오는 했지만, 설마 여기까지 오겠나 이런 생각도 조금은 들었어요. 새해 일출을 여기서 장엄하게 보게 됐습니다.”

▲송영숙 부지부장이 내려간 뒤 홀로 남은 박 지도위원은 500배를 시작했다.

의료원 측은 두 해고노동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며 원직 복직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해고된 2006~7년 당시 영남대의료원 자문 노무사였던 창조컨설팅 심종두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영남대의료원에서의 노조 파괴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노조의 요구다. 해고노동자의 복직과 노동조합 원상회복은 의혹이 밝혀지면 당연히 따라야 할 수순이다. 해고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더라도, 박 지도위원의 남은 정년은 겨우 1년이다. 그는 정년을 넘기기 전에 노동조합을 되살려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이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서글프죠. 민주화를 위해서,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많은 선배님이 목숨까지 바치셨잖아요. 그 대가로 지금 조금씩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편안한 조건에서 투쟁한다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내가 힘들다고 징징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대 가려면 최대한 공부해야 하는 거처럼 저도 최선을 다해서 투쟁하는 거예요.”

하루도 빠짐없이 지역 노조,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고 있다. 올해 ‘2019 대구·경북인권주간 조직위원회’가 뽑은 지역 인권 뉴스 중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사태가 1위로 뽑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는 올해 대구경북 민주시민상에 박문진, 송영숙 두 해고노동자를 선정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도 나서 지난 13일 약 2km를 오체투지를 벌이기도 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에서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3일, ‘오랜 친구 박문진’을 응원한다며 부산에서 대구까지 도보투쟁을 시작했다. 박 지도위원은 이 연대를 투쟁의 힘으로 꼽는다.

▲’여자는 체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박 지도위원

“인권 뉴스로 고공농성이 1위로 뽑혔더라구요.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버틸 수 있고, 앞으로도 제가 여기 돌부처처럼 앉아서 끝까지 갈 거라는 용기를 주는 것은 연대의 힘이죠. 더웠을 때는 그 연대가 선풍기가 됐고, 겨울에는 화롯불이 됐어요. 저도 여기서 잘  싸울거고, 우리 동지들도 지금처럼만 같이 지치지 마시고, 꺾이지 마시고, 같이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오는 27일, 영남대의료원노동조합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는 ‘송년 특집 문화제’를 연다. 박 지도위원은 박은지 작가가 직접 보내준 <여자는 체력>을 읽으며 2020년에도 이어질 투쟁을 준비한다.

▲사진=영남대의료원노동조합정상화를위한범시민대책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