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숙제 ‘신청사’ 풀어낸 대구형 숙의민주주의···탈락 지자체도 ‘승복’

대구시 신청사 부지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으로
“어떻게 하면 단점 줄이고, 장점 극대화할까 고민”

18:23

“반발이 없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희가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하면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를, 2박 3일 동안 그것만 고려했다. 자신들의 구·군이 안 됐다고 실망하실 순 있지만, 저는 미래를 봤을 때 누구에게나 득이 되고, 대구시의 발전을 위해 선정되었다고 생각한다. 저희 시민평가단 모든 분이 알맞은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250명 시민평가단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손지우 씨는 평가단장 역할을 맡았다. 지우 씨는 탈락한 구·군에서 반발이 나올 수도 있다는 질문에 또박또박 평가단 결정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설명했다. 22일 오후, 15년을 끌어오던 대구 신청사 부지가 달서구로 결정됐다. 지우 씨를 포함한 250명 시민평가단이 2박 3일 동안 숙의한 결과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겨 김태일 대구시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장을 선두로 해서 시민평가단 8명이 팔공산맥섬석유스호스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대구 첫 숙의민주주의 사례로 기록될 현장에는 수많은 취재진으로 일찍부터 붐볐다. 김태일 위원장을 포함한 평가단이 회견장으로 들어서자 연신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평가단 8명이 준비된 자리에 앉고 김태일 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250만 시민의 이름으로 15년 동안 풀어내지 못한 일을 이제 해결하고자 한다”며 “최고득점 지역은 1,000점 만점에 648.59점을 받은 달서구”라고 결과를 발표했다.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는 7가지 세부평가항목에서 고르게 점수를 받아 다른 후보지를 제치고 최종 후보지로 결정됐다.

▲시민평가단의 평가 결과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부지가 최종 신청사 후보지로 결정됐다. (사진=대구시)

김태일 위원장은 “지난 4월 공론위원장을 맡으면서 적어도 이 과정이 대구의 민주주의 역량을 크게 성장시킬 것이란 기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며 “대구시에서 정책 결정을 시민 참여 방식으로 한 첫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이 시장이라는 가치 실현에 정점을 찍는 일이 아닌가 한다. 놀라운 시민성을 확인했고, 참여한 시민들도 놀랐다. 이런 경험이 우리 지역사회 문제를 풀어가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평가단의 생각도 김 위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가단장 지우 씨는 “대구시 역사에 큰 획을 그을만한 사건에 함께 했다는 것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젊은 사람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만드는 대구, 시민이 시장이라는 말에 굉장히 부합하는 2박 3일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인영옥(83) 씨는 “70을 넘기고 80을 넘긴 나이에 시민참여단에 참여해서 15년 동안 결정하지 못한 신청사 건립을 어느 지역에 해야 할 것인가 결정 못 하던 걸 오늘 우리가 해냈다”며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마음이 뿌듯하고, 저희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된 것보다 더 기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정의호(51) 씨는 “오기 전엔 나름대로 원하는 구가 있었고, 그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2박 3일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론조사 하듯 정한 게 아니라 장단점을 비교 평가하면서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평가단에 참여했다는 오명순(49) 씨는 “공정한지 궁금했다. 2박 3일 동안 즐거웠냐고 물으면 즐겁진 않았다. 어려웠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후보지였고 오기 전에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면서 생각해둔 지역이 있었는데 2박 3일 동안 바뀌었다. 숙의민주주의를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청사가 들어설 옛 두류정수장 부지(사진=달서구)

이들은 평가에 불복하는 지자체가 나올 수 있다는 물음에도 불복이 가능하진 않을 거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의호 씨는 “대표성 있는 시민들이 모여 공개적으로 토론했기 때문에 불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오명순 씨는 “마음에 안 들어도 불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민에 대한 설득은 단체장의 몫이다. 누군들 100% 만족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인영옥 씨는 “시민참여단은 결정하기 전에 원하는 곳이 선정 안 되더라도 결과에 순종하기로 했다”며 “눈앞에 이익을 생각한다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불복하겠지만, 대구시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그래선 안 된다. 결과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결과 발표 후 각 지자체는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달서구는 이태훈 구청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환호하는 사진과 함께 “250만 대구시민의 현명한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는 입장을 밝혔다. 달서구는 “대구의 새 시대를 위한 세계적 랜드마크로 우뚝 설 시청사가 완공되는 그날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배광식 북구청장은 소감문을 통해 “달서구에 축하를 드리며, 함께 힘든 시간을 달려 온 중구, 달성군은 그동안 고생하셨다. 힘든 시간을 더불어 겪은 만큼 앞으로 대구의 비약적 발전과 혁신을 위해 힘을 모아주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개인 SNS에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명당인 화원 후보지는 달성을 위해, 대구를 위해 더 크게 활용될 것입니다. 신청사 유치 과정에서 우리 구민들은 위대했다”고 밝혔다.

류규하 중구청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시민추진단 결정을 존중하고 실제로 타당성 조사부터 먼저 하라고 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건 유감”이라며 “앞으로 도심 공간에 대한 대책을 대구시에서 잘 세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