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빗겨간 대구 일가족 죽음

시민사회단체,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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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일가족 4명의 죽음 이후 보건복지부가 가동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3일 극단적 선택을 한 일가족의 부부는 2달 전부터 소득이 없었지만, 단전·단수 3개월 이상 체납 등 ‘위기가구’ 통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대구지역 시민단체는 “복지 제도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23일 오후 8시 9분께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40대 A 씨 부부와 중학생 아들(14), 초등학생 딸(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23일 오후 중학생 아들 담임교사의 신고로 현장을 발견했다. 담임교사는 이날 등교하지 않은 학생 집을 직접 찾았고, 문이 잠겨 있어 곧바로 신고했다. 집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확인됐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다른 요인은 없고,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확인됐다”며 “직장은 2달 전에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다 그만두면 고용보험이라도 받는데, 이런 제도 자체를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과 주민센터 관계자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가족은 채무가 1억 원이 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2013년 A 씨의 부인이 가계곤란을 이유로 차상위계층 신청을 했지만, 소득이 월 200만 원 상당이라 지원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 소득인정액이 선정 기준을 초과한 것이다. 이후 추가적인 신청이나 상담은 없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차량, 주택 등 다른 재산이 있으면 소득과 함께 판단하기 때문에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통해 위기가구 통보를 받거나, 지역 주민들이 제보를 하면 찾아가 지원하고 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가 체납되거나 3개월 이상 수도, 전기세 등이 체납되면 시스템을 통해 위기가구를 각 주민센터에 통보하고 있다. 주민센터도 복지 사각지대 발굴 전담 공무원을 두고 있다. 일가족 4명의 죽음은 이런 복지 시스템을 모두 빗겨나간 것이다.

이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27일 오전 11시 반빈반빈곤네트워크 등 대구 정당·노조·시민사회단체는 정부와 자치단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7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반빈곤네트워크 등 대구 단체가 대구 일가족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된다고 해도 낮은 보장수준 때문에 수급자로 사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복지 지원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빈곤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가족이 살아가기에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 상환 엄두가 나지 않는 큰 빚 등이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긴급복지 지원마저도 그림의 떡이었다.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라며 “이러고도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말을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대구시도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제도적 한계를 인정했다. 정국철 대구시 희망복지팀장은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지 가슴이 아프다”며 “소득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현행 복지 실정상 법의 범위 안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채무는 개인정보라서 시가 상시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었고, 소득도 이미 수급자 기준을 벗어나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반빈곤네트워크 등 대구 단체가 대구 일가족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행 복지체계에서 4인 가족은 ‘생계’(138만 4061원·중위소득 30% 이하), ‘의료’(184만 5414원·40% 이하), ‘주거’(202만 9956원·44% 이하), ‘교육’(230만 6768원·50% 이하) 등 4가지 기준에서 소득 수준이 각 항목에 미치지 못할 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