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경북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 칼럼을 시작하면서 /손광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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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5 13:20 | 최종 업데이트 2020-02-05 13:20

성경의 마태복음 20장에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가 나옵니다. 하늘나라는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고 합니다. 밭 임자는 이른 아침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구하여 하루 일당을 합의하고 이들을 포도밭에 들여보냅니다. 아침 9시에 또 나가 장터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당을 정하고 포도밭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12시와 오후 3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오후 5시쯤에 나가 보니 장터에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밭 주인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종일토록 여기에 이러고 있습니까?” 그들이 답했습니다. “우리를 일꾼으로 쓰는 이가 없어서 종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당신들도 포도밭에 가서 일하시오”라고 했습니다.

해가 저물어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나누어 주는데 그는 오후 5시에 온 이들에게 먼저 하루치 일당을 온전히 주었습니다. 이전에 온 일꾼들이 이를 보고 자신들은 더 받을 줄 알고 기대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꼭 같이 하루치 일당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분개하여 주인에게 따졌습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한 우리를 어찌하여 해질녘에 온 저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합니까?”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친구여,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불의를 저지르는 것입니까? 내가 당신들과 약속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온 이 사람들에게도 당신들과 똑같이 품삯을 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

이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 주인의 뜻은 무엇이며 분배의 원칙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물론 2,000여 년 전 팔레스타인과 현재 자본주의는 여러모로 사정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삶의 질이 현저히 나아지고 전제군주제의 몰락과 함께 자유와 평등이 제도화된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은 새벽 일찍 고용된 사람과 오후 5시에 고용된 사람이 동일 임금을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오랜 시간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소득분배의 정의라면 그런 사람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와 상관없이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소득 불균형은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통계자료에 의하면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녀의 소위 일류대학 진학을 결정하며 고소득층 자녀는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곳에도 훨씬 쉽게 안착한다고 합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세계 최상위 부자 2,000여명이 가진 돈이 전 세계 인구의 64%인 46억명이 가진 돈보다 많으며, 상위 1%가 나머지 99%의 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2017년 기준 상위 1%가 국가 전체 부의 1/3을 갖고 있으며 전체 90%가 소유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를 모델로 하는 한국도 2016년도 기준으로 상위 1%의 부자와 재벌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며, 금융자본의 경우 이들 1%의 배당소득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극한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8년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런던 정치경제대학 리처드 윌킨슨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일수록 사회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사실을 통계자료로 보여주었습니다. 자존감의 상실과 함께 타인의 시선과 평가 중시, 과소비 경향, 정신질환 유병률과 수감률의 증가, 상호 신뢰도 하락 등의 현상이 심화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부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공동체가 와해되고 여성과 남성, 강자와 약자, 심지어 부모까지 증오하는 현상을 쉽사리 목격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향상과 함께 전체적인 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는데 왜 이런 부정적 현상이 일어날까요? 이 문제는 경제제도와 부의 분배라는 더 광범위한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1967년 8월 16일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연설에서 “우리는 인생의 시장에서 낙오한 약자들을 도우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러한 약자를 만들어내는 제도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자본주의라는 경제제도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시간이 돈이며 더 많은 시간을 일한 사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보상받아야 한다는 불변의 신념이 어쩌면 소득분배에 대한 올바른 정의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강자와 지식인들에 의해 주입된 신념체계일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체제 유지를 위해 교묘하게 위장된 책략이며 대중을 순종적이고 무지한 존재, 다시 말하면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속임수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20세기 들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자본가와 지식인들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왜곡하여 이기적인 욕심이 선이며 국가가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이 글로부터 시작하여 ‘경북대학교 민주화교수협의회’(경북대민교협)에서 격주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경북대민교협은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은 앞으로 각자의 전공을 바탕으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시민을 기반으로 합니다. 지배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에서 벗어나고 현실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관념과 관습과 제도, 심지어 법률까지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진리란 철저한 검증과 냉철한 사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민교협이 제공하는 생각거리에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우리는 이 사회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포도밭 주인과 같이 어려운 이들을 헤아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민교협교수들의 칼럼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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