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조조'에게서 '이승복'이 보이네, '조조래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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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0:05 | 최종 업데이트 2020-02-11 10:06

<조조 래빗(Jojo Rabbit)>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동심(童心)을 활용했다. 이럴 경우 대개 주인공은 전쟁의 피해자 유대인으로 설정하는데, <조조 래빗>은 가해자 나치로 진영을 바꿨다. <조조 래빗>과 <인생은 아름다워(1997년)>의 차이점이다.

<인생은 다름다워>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 귀도(로베르토 베니니)가 마법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들 조수아(조르지오 깐따리니)를 죽음의 공포에서 보호했다. 부자의 절절한 사연은 유대인의 비극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조조 래빗>은 정반대다.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10살 소년이 주인공이다. 나치를 선망하는 소년의 눈을 통해 현실의 참상을 똑똑히 보여주려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조조 래빗>의 초반부는 어른들의 사상에 세뇌당한 한국의 아이들처럼 나치즘에 심취한 조조가 그려진다. 그는 히틀러유겐트 단원이 돼 전쟁 영웅이 되길 바란다. 곁에는 상상 속의 히틀러가 있다. 조조는 그와 함께 걸으며 말하고 밥을 먹는다. 히틀러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만 체구는 작고 신발 끈도 혼자 묶지 못하는 어린이다.

영화에서 조조는 나치에 어울리지 않는 면모를 보인다. 매사가 수줍어 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살아있는 토끼를 손으로 죽여보라는 선배의 말에 머뭇대다가 토끼를 놔줄 정도로 심성이 여리다. 겁쟁이 조조 래빗으로 놀림감이 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훈련 교관인 클렌첸도르프 대위(샘 록웰)가 들고 있던 수류탄을 갑자기 낚아챘다가 오히려 큰 부상을 당한다. 얼굴과 다리에 부상까지 입어 한껏 기가 죽은 조조는 어느 날 집 안에 숨어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마주치며 서서히 변화한다.

<조조 래빗>은 유럽 작가 크리스틴 뢰넨스의 장편소설 <갇힌 하늘>이 원작이다. <갇힌 하늘>은 엄마가 유대인 소녀를 다락방에 숨겨준 사실을 알게 되는 히틀러유겐트 소속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는 코미디 요소를 더해 각색했다.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고 유연하게 풀어내기 위해 순수한 아동 시점의 판타지를 활용했다. 때 묻지 않은 소년의 눈에 비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은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섬뜩하고 슬프기도 하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년)>와 비슷하다.

영화의 매력은 담백한 연출과 코미디를 극대화하는 슬로 모션, 독일 특유의 정서를 살린 미장센,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된 의상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배경과 소품, 화면의 색감까지 미술의 전 요소가 동화적이라는 점이다. 웨스 웨더슨 감독의 <문라이즈 킹덤(2012년)>이나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2014년)>의 수평 수직선을 강조한 좌우 대칭 구도와 수평 트래킹, 동화 일러스트 풍의 미술 등이 흡사하다.

배우들의 고른 호연도 돋보인다. 아역 배우부터 조조의 엄마 로지를 연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강인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여성을 멋지게 그려냈다. 특히 조조 앞에서 1인 2역 하듯 말하는 장면은 연기파 배우의 입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코미디언으로 출발해 다수의 단편 작업 TV 연출과 출연으로 다년간 내공을 쌓은 뒤 2017년 <토르:라그나로크>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조조 래빗>에서는 연출과 함께 조조의 상상 속 히틀러를 연기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 안의 동심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시 아이가 될 수 있다면 세상에는 문제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조 래빗>을 보면 한국 독재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이 떠오른다. 히틀러유겐트(나치스 독일의 청소년 조직)의 모습이 독재정권이 국민을 세뇌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교육과 닮아서다. 영화에서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주인공 조조 베츨러(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유대인이 뿔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절멸을 자행하던 나치의 세뇌교육 때문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968년 12월 강원도 평창군 산골 마을에 침투한 무장공비들의 손에 참혹하게 살해된 ‘반공 소년’ 이승복은 한국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상징이다. 공산당이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이가 공비들에게 살해당하고 죽어서는 반공 교육의 표본이 됐다. 이승복의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졌고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는 그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실렸다. 반공교육이 극심할 때 한국에서 상상하는 북한 공산당은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었다. 시대를 장악한 이념이 때로 어처구니없고, 사람들이 의심 없이 대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러니한 것이다.

1940년대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루머를 지속적으로 접한 아이들은 유대인을 혐오·악마화하며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했다고 한다. 당시 나치 사상을 주입받은 아이는 8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도 나치 사상에 심취한 이들이 벌이는 테러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어떤 집단이 모여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게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갖는지 알게 된다. 아직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로 대립하고 있는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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