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자의 ‘헬 대구’··· 장시간·저임금 노동 심각

"청년이 직접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 모니터링 제도 필요"

15:25

“대체교사가 없어서 연차를 아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은행을 이용할 시간은 물론이고 아파도 쉴 수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의 낮잠시간을 이용하여 빠듯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보육교사 A 씨)

“애초에 근로계약을 할 때 주말에만 일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공휴일도 주말이라고 하시면서 일을 하기를 강요합니다. 공휴일에 일하지 않으면 해고당합니다”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 B씨)

“사장님이 매장에 CCTV를 설치하고 수시로 휴대전화 앱으로 CCTV를 확인합니다. 잠깐 쉬거나 화장실을 갈 때면 항상 매장으로 전화가 와서 왜 일 안 하느냐고 혼을 내십니다” (화장품 상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C씨)

대구 청년노동자의 삶이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기본, 사업주의 불합리한 대우도 다반사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청년노동자도 법정 근로시간 초과, 법정 수당 미지급, 인권 침해 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9일 오전 11시 대구청년유니온이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9일 오전 11시 대구청년유니온이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구청년유니온은 10월 한 달간 대구지역 청년노동자 600명(만 15세~39세, 직장인 400명, 아르바이트 노동자 200명)을 대상으로 청년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이들은 평균 근로시간, 월평균 임금 등 기본적 노동조건과 부당경험 사례, 만족도 등도 조사했다.

직장인 청년 평균임금은 163만 원으로 드러났다. 주당 52시간(주당 최장 노동시간) 기준 법정 최저임금인 156만 원에 근접한 수준이다.

법정 노동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는 77%, 초과 노동시간으로 허용된 52시간을 초과하는 비율은 35%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시간 외 수당(야간수당, 연장수당, 휴일수당)은 응답자의 63%가?받지 못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수당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이외에도 근로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27.5%,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2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노출됐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응답자의 대부분(72%)이 생계형 아르바이트 노동자인데, 최저임금마저 받지 못하는 경우가 27.6%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정 수당을 꿈꾸기도 힘들다. 응답자의 78.5%가 주휴수당을 받지 못했고, 71.1%가 연장수당을, 76.2%가 야간수당을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인 셈이다.

설문에 응답한 아르바이트 노동자 중 25%만이 4대?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이 때문에 40.2%의 응답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해도 산재처리를 하지 못하고 본인이 치료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권 침해도 심각했는데, 76%의 청년이 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사례로는 ▲근무시간 강제 변경(41건) ▲사업주의 과도한 감시(10건) ▲임금 차감(8건) ▲꺾기(조기 퇴근 강요, 7건) ▲폭언 등 인격 모독(12건) 등으로 나타났다.

대구청년유니온은 9일 오전 11시, 대구시청 앞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구시 청년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자유이용권을 맡긴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청년 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이들은 ▲청년이 직접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을 모니터링?하는 ‘청년명예근로감독관’제도 운용?▲사업주와 청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 인권교육 시행?▲대구시 등 민관이 함께하는 거버넌스 구축 ▲연도별 청년노동 실태조사와 청년고용지표 개발을 제안했다.

최유리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면 청년 노동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라며 “매년 만 명의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대구에는 창조도 활력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