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쪽방에 달려온 광주 시민사회…“취약계층 주거비 지원 필요”

대구쪽방상담소, 주 2일 생필품 배달·주 3일 직접 방역
전국에서 온 후원 물품 쪽방에 건네며 체온 체크까지
쪽방촌 주민, 외출 못 해 생계비·주거비 마련 막막

18:41

봉고 트럭에 생필품 세트가 한가득 실렸다. 쌀, 라면, 김치, 마스크, 손 소독제 등이 담겼다. 대구 동구 쪽방촌으로 지원 나가는 물품이다. 트럭 한 대에 활동가 두 명이 올라탔다. 체온계도 챙겼다.

9일 오후 1시, 대구 서구 자원봉사능력개발원 대구쪽방상담소 앞은 분주했다. 활동가 10명이 물품을 포장하고, 실어날랐다. 한쪽에서는 쌀을 소분해서 담았고, 한쪽에서는 비닐봉지에 쌀과 라면, 마스크 등을 세트로 묶었다. 쪽방상담소에 등록된 쪽방은 91개소, 거주인은 700명이다. 넉넉하게 매일 750인분을 준비한다. 비어있던 쪽방상담소 맞은 편 피자가게도 한 달 동안 임대해 물품 보관 용도로 쓰고 있다.

상담소와 피자가게를 사이에 두고 좁은 골목에 활동가들이 잠시 숨을 골랐다. 오후 1시 30분께 광주에서 후원 트럭이 왔다. 물품 목록을 본 활동가들은 “골목에 다 내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 활동이 불가능해진 쪽방 주민들을 위한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배우 이영애 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5천만 원을 대구쪽방상담소로 지정 후원했다. 이어 방송인 김제동 씨가 쌀, 라면, 김치를 꾸준히 보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세븐일레븐 등 기업과 대구시, 각 구청, 시민단체, 익명의 개인 후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쪽방상담소 활동가들이 쪽방으로 지원나갈 생필품 세트를 싣고 있다

쪽방상담소는 후원 물품을 구·군별 쪽방으로 직접 전달한다. 매주 화요일은 동구, 서구, 목요일은 중구, 북구 쪽방으로 나간다. 물품은 하루 이틀 내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적재할 공간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상할 수 있는 식품류도 많다.

오현주 쪽방상담소 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저희가 몰랐던 네트워크에서 후원이 많이 온다. 대구 시민사회와는 네트워크가 되어 있지만, 최근 대구시민센터가 가진 전국 네트워크에서 후원을 모아주고 있다”며 “기사를 보고 전화 오는 경우도 많다. 세븐일레븐 같은 경우도 그렇다”고 말했다.

광주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김밥 도시락 75인분이 들어왔다. 대구시에서 배분하는 물품을 받기 위해 대구스타디움에 나가 있는 활동가에게서 차량 공간이 부족하다는 연락이 다급하게 왔다. 잠시 숨을 돌리던 활동가가 차를 끌고 출발했다.

광주에서 온 트럭은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1시 55분께 ‘광주재능기부센터’라고 적힌 1톤 트럭 한 대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왔다. 광주에서 직접 운전해 온 광주재능기부센터 장우철 사무처장은 “차가 무거워서 조금 늦었다”는 농담으로 미안함을 전했다. 1톤 트럭에는 의료용 고글, 냉동 돈가스, 김치, 생수 등이 가득 담겼다. 특별히 의료진에게 전달해 달라고 적힌 수제 초콜릿도 보였다.

▲광주재능기부센터에서 온 후원 물품을 쪽방상담소 활동가들이 내리고 있다.

장우철 사무처장은 “광주시민들이 대구분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모금했다. 물품 기부도 많이 들어왔다”며 “달빛동맹으로 지자체 차원에서 먼저 연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응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류가 있던 대구시민센터에 연락해 소개를 받았다”고 말했다.

쪽방촌을 직접 방역하는 역할도 쪽방상담소가 맡았다.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화장실이나 부엌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쪽방 구조상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보건소에 방역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확진자가 나오거나 지나간 곳이 아니면 미리 방역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오현주 팀장은 “보건소 인력도 부족하다고 하고, 후원받은 금액이 있으니 우리가 직접 방역을 하기로 했다. 겨울철 일자리도 없으니 방역으로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방역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았다. 막상 나가려니 필요한 방호복을 구하지 못해서 초반에는 비옷 같은 걸 입고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매일 물품 지원과 방역을 하다보니 인력도 부족하다. 물품을 후원해주는 단체에서 직접 봉사를 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방역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쪽방상담소는 혹여나 외부 봉사자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될까 공식적으로 봉사를 요청하지는 않는다.

▲정의당 장태수 대구 서구 예비후보가 쪽방 방역 활동을 벌이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 일용직 일자리가 풀리길 기대하고 있었다. 오현주 팀장은 쪽방촌에서 3월은 ‘보릿고개’라고 한다. 겨울 동안 돈을 긴축해서 버텨온 생활이 겨울 끝에 다다르면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사태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자 쪽방촌 주민들은 당장 주거비나 생계비를 마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오 팀장은 “저희는 민간단체라서 지금 당장 정부가 하기 힘든 역할, 후원 물품을 배분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건 주거비나 생계비 문제”라며 “온누리상품권을 푼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 착한 임대료 운동처럼 정부가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비를 한시적으로 탕감해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구참여연대는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근로장려금 대상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요구했다.

대구참여연대는 “대구시 수급자는 11만7천 명이 넘고, 저소득 근로장려금 대상자는 18만여 명이다. 대구시민의 10분의 1이 소득이 없거나 근로자 평균소득에 훨씬 못 미치는 저소득층”이라며 “사회적 재난 상황일수록 경제적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시민들의 생활과 경제 활동이 멈춘 지 한 달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기초적인 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정부는 노력해야 한다”며 “권영진 시장은 대구시의 장부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