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이 와중에, ‘보수’를 생각한다 /채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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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일은 좀처럼 없으며, 인간이 생각을 하는 것은 생각하고자 하는 의욕의 고양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충격’ 때문이다.” 저명한 철학자 들뢰즈(G. Deleuz)의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지구를 정지시키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이라는 게으른 동물이 마침내 생각이라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버린 거대한 충격임에 틀림이 없다. 교회 예배와 비행기 엔진만 멈춘 것이 아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도 지속된다는 우리의 삶도 여기저기에서 멈춰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빛나는 것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시민들의 연대이다. 분명 모두는 아니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위험하지만 스스로 나서고 있고, 부족하지만 보태고 있으며, 불편하지만 감수하고 있다. 자신들을 ‘빨갱이’라고 수도 없이 매도한 (그리고 지금도 매도하고 있는) ‘감염된 도시’ 대구를 향하여, 너른 품을 활짝 열어준 광주 시민의 모습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독특한 이타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동물만이 진정한 상부상조적 협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2.
이 와중에, ‘보수’를 생각한다.
소위 진보에 대한 불만도 차고 넘치지만, 지금은 다만 보수만을 문제삼겠다. 보수의 핵심적 덕목은 당면한 위기로부터 공동체의 안녕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에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보수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은 그렇게까지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다음 달이면 과잉대표된 보수정당과 또한 과잉대표된 진보정당이 각자의 위성정당을 거느리고 전면적으로 격돌할 총선이라는 데스매치도 예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보수는 대내외적인 위기로 인하여 공동체가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지속성을 위하여 내키지는 않지만 스스로 내려놓을 줄도 아는 유연성을 가진 이념이자 태도이다. 일각에서는 ‘가능한 천천히, 가능한 우아하게 양보하는 과정’이라고 보수의 역사를 규정할 정도이다. 물론 보수의 이러한 특성은 ‘반개혁주의(현상유지주의)’와 ‘반동주의’, ‘근본주의’ 등으로 규정되는 ‘수구’와의 명백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보수는 보수의 본원적인 덕목인 공동체의 가치와 안녕을 지켜내기 위하여 어떤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가? 모 정당의 지역구 공천에서 컷오프된 후보가 “끝까지 싸워서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습니다.”라는 사즉생(死卽生)의 웅변과, 여기에 호응하는 “이번 공천은 ‘망천’이다.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죽이고 미래가 없는 미래통합당”이라는 댓글에 등장하는 ‘보수의 가치’라는 것은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과연 보수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30여 년의 징역형이 선고된 명실상부한 중죄인이 어쭙잖게도 ‘옥중서신’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선거에 개입하고, 이러한 행위를 “이 나라, 이 국민을 지켜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이라고 감읍하는 정치인이 보수를 통합한 정당의 대표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현재적 자화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언명령이라고 떠받드는 그들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그리도 힐난하였던 슈미트(Carl Schmitt)의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개념에 자발적으로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그다지 당혹스럽지도 않다.

이러한 보수를 통합하고 대표하고 있다는 모 정당은 현재 ‘코로나 추경’ 확대를 정부와 여당의 총선용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법인세 인하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과 같이 기득권에게 유리한 감세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해 불가한 그들의 ‘일관성’에 대하여, 같은 정당 소속인 대구시장이 “이런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한다면, 국민의 아픔에 동참하는 정치가 아닐 것”이라고 비판하는 장면은 그저 난감할 뿐이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요구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나쁜 바이러스로 인하여 발생한 위기의 극복을 위한 현명한 대책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보수의 역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모 후보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갈음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라 꼴이 이게 머꼬. 문재인 정권 밑에서 더는 못 살것다. 정권탈환의 기수 OOO!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설마 보수는 위기의 극복을 위한 시급한 대책은 정권교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3.
최근 태국의 어느 도심에서는 원숭이들의 패싸움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그 지역의 관광객이 뜸해지면서 이들이 제공해주는 먹이가 줄어들자, 원숭이들이 부족한 먹이의 쟁탈을 위하여 무리를 지어서 싸움질을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균형은 깨어졌고, 예견할 수 없는 어떤 일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이번 사태는 우리의 공동체와 그 속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강제한다. 또한 ‘특수하고 예견하지 못한 사건에 대응하는 사회적 작용’이 정치의 특성이라면, 당면한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의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할 기회도 제공한다.

장차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하여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하여 오래된 진실을 재차 확인하고 있다. 재난의 폐해는 평등하지 않으며, 약자에게 그것은 더욱 가혹하다. 일상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재난의 상황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전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보수의 타당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난망하다.

자칭 보수와 소위 진보의 암묵적 합의로 재난기본소득은 시행되지 않을 것이며, 그러다가 조만간 코로나19 사태도 종결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위험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여하튼 새로운 질서는 형성될 것이다. 모쪼록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질서는 좀 더 생태적이고 인간적인 내용으로 채워지기를. 그러한 가운데 보수가, 그리고 대구가 마침내 변화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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