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김부겸과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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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에는 두 명의 대권 주자가 출마했다. 김부겸과 홍준표. 두 사람 모두 대권이 목표임을 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을 지근거리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공적인 공간에서의 모습이기에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인에게 공적인 공간에서의 입장과 태도가 중요하지, 사적 공간의 모습이야 관여할 바 아니기에(사적 관계인이 공적 공간에 침범한다면 문제지만, ex 박근혜) 공적 공간에서 보고 느낀 두 대권 주자를 정리해봤다.

두 사람은 닮은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뛰어난 웅변가다. 어느 정치인이라고 그렇지 않겠느냐만, 이 둘은 특출나게 말을 잘한다. ‘홍’이 거침없는 직설화법의 달인이라면, ‘김’은 넉살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감을 보인다.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두 사람의 연설은 청중과 호흡하는 느낌이 있다. 자기 말만 쏟아내는 느낌의 정치인들과는 다르다. ‘느낌’이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물으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다.

두번째는 지피지기가 되고, 자기 위치를 아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일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를 예로 들면, ‘홍’은 다른 후보에 비해 자신이 강한 유권자와 약한 유권자에 대해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그와 동네 한바퀴를 돌며 인터뷰를 할 때 그는 “20대에서 폭발적”이라고 했고, “60대에서 밀려”라고 했다. 밀리는 이유는 그들이 당을 보고 찍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20대에서 폭발적이라는 말은 공감하지 못했다. 설마? 그런데 이후 공개된 여론조사를 보면 그의 말대로 2, 30대에서 그는 강했다. 상대적으로 2, 30대에게 호감을 끄는 민주당 후보와 박빙이었다. 60대 이상에선 통합당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다른 두 후보와도 만나고 난 다음에, 홍이 이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아는 것에서 적을 이길 방법이 보일테니까.

‘김’은 자기 위치를 분명히 알았다. 두 가지 사례를 설명하면, 코로나19가 대구에서 퍼지기 시작한 2월 19일 정세균 총리가 대구에 왔다. 그날 대구 시청에 ‘김’도 왔다. 여당의 중진 국회의원이 시청에 왔기 때문에 대구시에서도 ‘의전’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은 눈치였다. 원래는 총리와 시장의 좌담이 예정됐는데, 국회의원도 넣어야 하는건지, 자리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건지 등등이 새로운 숙제거리가 됐다.

아마 여느 ‘눈치 없는’ 의원이었다면 자기 자리도 만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은 대구시가 필요한대로 하라고 했다. 자신이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자리를 만들고 아니면 로비에서 인사만 전하고 가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김’은 로비에서 인사만 전했다. “신경 써 달라”는 당부를 더했다. 모르긴 해도 장관까지 지낸 의원이 복도에서 인사를 전하면 총리야 까마득한 후배가 인사하는 정도로 알겠지만, 직원들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다를 거라고 본다. 굳이 인사하러 온 의원이 다시 연락해 오는 것과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의 전화는 분명 다를테다.

개표 당일에도 그랬다. 출구조사에서 패색이 짙은 걸로 나오자 기자들에게 ‘저녁 먹고 오라’며 ‘경험적으로 투표소 몇 개를 열어보면 알 수 있으니, 9시쯤에 되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10시쯤 돌아와서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아직 20% 밖에 개표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경험적’으로 진 싸움을 알아챘다. 본인이 가장 힘들테지만, 지지자를 위로하는데 마음을 쓴 것도 눈에 띈 지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두 공통점에서도 또 다른 점이 있다.

웅변가, 달변가인 ‘홍’은 그 잘하는 말을 남을 현혹하는데 쓰지만 ‘김’은 설득하는데 쓴다. ‘홍’은 여러차례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재밌는 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는 본인이 먼저 공표하며 고맙다고, 기뻐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여론조사 믿지 않는다더니, 왜 그러는거냐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 “여론조사 안 믿는다”였다. “캠프 내부에 정확한 여론 측정 기법이 있다”고 덧붙이긴 했다. 그 방법이 뭔지 궁금했다.

‘김’은 2012년 대구에 내려온 후 매번 대구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럴듯한 말로 현혹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가끔 고구마 먹은 것 처럼 답답할 때도 있다. 대구 사람들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매력적인 말을 전하거나 할 수 있는데 그건 안 했다. 그러면서 “비겁하게 연명이나 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지자한테 박수받기 위한 정치를 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지피지기가 되는 ‘홍’은 적극적으로 그것에 편승한다. 이번 대구 출마 자체가 딱 그짝이다. 대구를 풍패지향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무주공산이 된 대구의 보수 정치 리더 자리를 자신이 먹겠다는 욕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역주의에 편승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데 전혀 꺼리지 않았다. 그가 출마 선언하는 날, “대표님 같은 큰 정치인이 너무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구태 정치를 하려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처음 지역 기반 정치를 하려는거다. 여태 한 적 없다”, “대통령 하려면 지역 기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김’도 지역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나 층위가 ‘홍’과 다르다. 지역주의가 팽배한 정치 지형에서 호감도가 낮은 정당 후보로서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를 ‘홍’과 같은 층위로 볼 순 없을거다. 원래 되치기가 파괴력이 더 세니까, 제대로만 된다면야 더 할 나위 없는 도전이다. 하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내동댕이 처진다. 항상 등을 모래판 가까이 대고 하는 씨름과 진배 없는데, 그걸 계속하려고 한다.

솔직히 2012년에 그가 처음 수성구에서 출마할 때 그러려니 했다. 얼마나 오래갈 ‘쇼’일까 생각했다. 이미 2008년에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대구에 뼈를 묻겠다며 내려왔다가 바로 올라간 경험도 있었다. 당신이라고 뭐가 다르겠느냐 싶었고, 오히려 그동안 지역에서 터전을 닦아온 진보 정치인이 그로 인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분위기여서 더 싫었다. 이제 9년째다. “농사꾼은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