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입고 시청 앞에 선 해고노동자…예수가 봤다면 외면했을까?

[크리스마스 이브의 풍경]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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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원치 않았지만, 크리스마스에도 계급이 있다. 캐롤이 신나게 흘러 나오지만, 마음이 더 울적한 이들도 있다. 24일, 마스크와 목도리로 추위를 겨우 감춘 채 소복을 입고 대구시청 앞을 지키는 이가 있다.

그는 경북대병원에서 9년 동안 주차정산원으로 일했던 장발장(가명) 씨다. 하지만 그는 84일째 출근하지 못하고 병원을 배회하고 있다. 주차관리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발장 씨는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 “경북대병원 26명 집단 해고”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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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일 경북대병원은 일방적으로 인력 4명을 줄인 가운데 주차관리 용역업체를 변경했다. 노조는?”전원 고용 승계”를 요구했지만, 병원은 듣지 않았다. 4명이 줄어든 채로 신규 용역업체 선정 공고를 냈고, 신규 업체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 직원과 새로 뽑은 인력이 섞여 채용됐다. 이 가운데 26명의 기존 노동자들은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사실상 해고다.

80여 일 동안 노조는 병원장 면담, 병원 로비 농성, 촛불집회, 대구고용노동청 면담, 대구 도심 행진 등으로 해고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병원의?고소?고발이었다. 법원은 병원이 노조간부 등을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병원 내 집회·시위에 집단으로 소리 지르거나 확성기 등을 이용해?구호·노동가·민중가요 제창하는 행위를 하면 벌금을 내게 됐다. 찍소리하지 말라는 것.

발장 씨는 “억울해 죽겠는데 이제 병원에서 원장님을 봐도 ‘원장님~’하고 부르지도 못한다. 병원 안에서는 그저 피켓만 들고 있다”며 “그래서 병원 밖으로 나왔다. 우리도 대구 시민이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은 공공기관이 용역 업체를 변경할 때 지켜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용역업체 변경 시 일방적인 인원 감축 없이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도록 관리?감독 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면서도 경북대병원은 지난 11월 26일 ‘대구?경북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 준수 이행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발장 씨는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3개 부처가 함께 만들었다. 대구시도 행정자치부 소속이니까 그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며 “경북대병원은 대구에 있는 유일한 국립 대병원이다. 대구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싸움에 발장 씨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당장 두 아이 용돈을 주는 것도 버겁다. 그래도 발장 씨는 “이 문제가 해결돼서 다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의 “보호”를 받지 못한 노동자 26명은 84일 동안 길거리에 있다. 보호 지침은 있는데 보호하는 사람은 없고, 보호하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다. 예수가 지나다 발장 씨를 봤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테다. 경북대병원장과 대구시장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요구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크리스마스다.

(관련 기사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인력 줄인다, ‘해고’ 논란(9.9),?“경북대병원, 주차관리 노동자 30여명 해고”(10,1),?신규채용에 해고까지 5일…”해고 계획했나?”(10.5),?주차노동자 ’26명 해고’에 퇴직금도 떼먹은 업체, 병원은 묵묵부답(10.22),?경북대병원, 해고자 두고 ‘용역근로자보호지침 이행선언’ 동참(11.26))

주차
▲지난 26일, 이들은 ‘대구경북총파업결의대회’에서 소복을 입고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부터 대구고용노동청 앞까지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