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미국이 표준이라는 신화의 붕괴 /강우진

10:53

김형에게

이렇게 김형에게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이 객쩍네요. 어제는 좀 내가 과한 것 같네요. 자의반 타의반 고독한 삶을 버티고 있는 나에게 김형은 사실상 유일한 말벗 아니오? 어제 일을 다시 끄집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가 이어져 지기지우(知己之友)와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용기를 내었네요.

어제 일은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서 ‘미국이 표준이라는 신화가 붕괴되었다는 나의 다소 거친 주장에 대해서 김형이 발끈하면서 시작되었죠. 여전히 미국을 천조국(天朝國)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상황에서 나의 주장이 김형을 포함한 적지 않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화하고 있는 세상 사정을 이해하는 것은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을 찾는 첫걸음이라고 판단합니다.

김형이 철석같이 믿는 공산화 위기로부터 우리나라를 구해준 ‘구세주로서 미국 신화’를 먼저 이야기해 보지요.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어느 나라도 국익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은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어떤 목사님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처럼 원래는 그럴 계획이 없었는데 트루먼 주위의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서가 아닙니다. 두루 알듯이 2차 대전 후에 냉전이 급속히 전개되었고 우리나라는 분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아시아 전략상 아시아 대륙의 끝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신생독립국 한국을 대 공산주의 전진기지로서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김형도 잘 알고 있듯이 지난 70여 년 동안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전혀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단독정부를 밀어붙인 이승만을 지지했지만 한국전쟁 와중에는 이승만 제거작전(Plan everready)을 심각히 고려하기도 했지요. 5.16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했고, 광주항쟁의 무력진압을 방치하기도 했지만 6월 항쟁 때에는 군대의 동원을 반대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해당 시기 미국의 행정부가 정의한 세계전략(Grand Strategy)과 이에 기초한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결정되는 것이 자명한 것 아닙니까? 특히 미국중심주의를 외친 트럼프의 집권이후 최근 벌어진 방위비 협상 논란은 이른바 혈맹으로서 한미동맹의 가치가 미국의 국익 앞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드러내 주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어떤 경우든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구세주 신화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딪혔던 지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표준으로써 미국에 대한 신화였죠. 김형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독립(1776)이 프랑스 혁명(1778)보다 빨랐으며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천부인권을 명시한 근대 최초의 문서인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라고 하는 선거를 통한 대표자의 선출은 미국에서 최초로 이루어졌습니다(1788).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사(1961)에서 자유주의 혁명의 횃불이 새로운 세대의 미국의 손에 넘겨졌다고 담대히 선언한 것처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헤게모니 국가로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구축하였죠.

팍스아메리카나의 우산 속에서 우리나라는 안보와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김형, 나는 김형이 알듯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기저에 있는 자유주의로 치장한 패권의 논리에 비판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체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재(public goods)를 제공하는 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미국이 민주주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은 빛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로서 한동안 아메리칸 드림이 상징하듯이 역동적인 기회의 땅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의 하나로 변모하였고 이제 미국은 신도금 사회(New Gilded Society)가 되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모델이라는 미국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는 체제라는 점입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전 세계적인 판데믹 위기 속에서 드러난 미국의 민낯은 민주주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의 슬픈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진=flick.com Lorie Shaull]

대낮에 경찰 네 명에 의해서 목이 눌려 죽은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 ‘숨을 쉴 수가 없어(I can’t breathe)’는 미국 민주주의에 의해서 대표되지 않는 하층민들의 절규를 상징합니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촉발한 시민들의 저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주요 도시를 휩쓸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체제를 뒤흔드는 위기 속에서도 민주주의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배웠던 민주주의는 갈등을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체제라는 정의가 무색해지는 상황입니다.

제도로서 민주주의는 미군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촛불혁명을 통해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확인한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상상속의 민주주의 표준으로서 미국모델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표준(K-Democracy)을 만들어 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형, 김형이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동아시아 권력 교체기마다 한반도에 물리적 충돌이 빈번했었습니다. 고려시대 대몽항쟁,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20세기 일본의 조선병탄이 대표적이죠. 김형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가 또 한 번의 권력의 교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형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에 있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 권력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지적하셨죠. 또한 이미 몽상(夢想)임이 드러난 중국몽을 같이 꾸는 것은 19세기 말 조선의 망국의 리더십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20세기를 통해서 증명된 자유주의 리더십의 편에 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죠.

김형, 김형의 우국충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김형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 진영의 맏형 미국에 줄을 서야 우리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우리나라는 분단의 상흔과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서 허덕이던 시절의 우리나라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시민들의 힘으로 한국형 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었고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었습니다. 더구나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의 의료체계와 한국형 방역모델의 우수성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중국몽을 함께 꾸던 미국을 천조국으로 모시던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여전히 굳건한 대보단(大報壇)을 이제는 허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형, 작년 우리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서 근대로의 여정을 시작한 지 100년을 맞이했었습니다. 이제 광복 100주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근대로의 여정동안 분단국가형성, 산업화, 민주화를 차례로 이룬 우리는 이제 후손에게 물려줄 우리나라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의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민주주의 국가 모델을 만들어 가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모델에 대한 치열하지만 열린 토론이 그 시작이 되어야함을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이 글이 김형과의 간극을 좁히는 또 다른 토론의 시작이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