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바다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질 동기

[기자칼럼] 새해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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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1 20:42 | 최종 업데이트 2015-12-31 20:42

시원섭섭한 기분에 땅이 술렁이는 12월 31일. 집에서 눈썹을 치켜들고 있다. 때마침 어머니가 타지 출장을 갔기 때문이다. 집에는 인지증을 앓는 할머니가 있다. 3년 전 이날 자정에는 혼자 시내를 걸을 수 있었는데. 당시 들뜬 사람들 사이를 환자복 바람으로 걸었다. 병원에서 죽다 살아나?보니 앞으로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욕심껏 살아보자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땅땅땅! 올해 끝을 선고하는 소리가 그치자, 다짐도 수그러들었고 삶은 곧 이전과 같게 됐다.

이듬해부터 펜을 잡았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지 쓰고 싶었다. 펜과 카메라를 쥐고 술렁이는 사람들에 속하고 싶었다. 2015년 쓴 기사는 315건. 겁 많은 내가 얼굴 붉히고, 언성 높이며 쓴 기사들.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애착?어린 지적을 들어본 적이 손가락에?꼽힌다. 서로에 대한 비평이 인색한 요즘, 각자도생의 시대에 쉬운 일은 아니다.

무수한 기사?중 조회수 1천 번을 넘긴 기사 78개를 분류해봤다. 대부분 국가와 기관, 자본, 언론을 비판한 기사다. 세상이라는 바다에 기사라는 돌을 던지면 어떨?때는 파도만큼 파문이, 대부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파도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작은 매체의 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래도 반응 없는 돌팔매질은 지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돌을 계속 던질 동기는 어디에 있나.

“어이 박 기자, 좀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를 써라. 보는 사람도 힘들다.” 친한 형이 지나가면서 한 소리다. 그런 한 마디에도 목말랐기에, 마음에 담았다. 돌이켜보면 내 마음에 남는 기사도 아름다운 기사다. 이 기사들을 그저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팍팍한 삶, 그들을 짓누르는 세상을 빼놓지 않고 말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실력도 문제다. 다만 카메라 렌즈가 비추는 이 사람들이, 그 존재가 아름다울 뿐. 그 아름다움의 편린을 기사에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편린을 부여잡는 것이 내가 계속 돌을 던질 동기라고 생각한다.?2015년 쓴 기사 중 눈에 밟히는 기사 몇 개만 작성일 순서로 꼽아봤다.

화성산업 창업주 조문행렬이 불편한 까닭? 故 이윤석(99) 화성산업 명예회장이 타계한 이후 지역사회의 반응을 짚은 기사다. 지역 관료와 정치 인사들이 앞을 다퉈 조문행렬에 들었지만, 수많은 건설 노동자의 죽음에는 침묵하는 현실을 기록했다.

대구퀴어축제, ‘사랑’과 ‘자긍심’이 혐오 이겼다 무수한 혐오 속에서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의 축제를 기록했다. 이날 거리에서 손을 잡은 커플의 사소한 용기, 그리고 그들의 깊은 눈빛을 기록하고 싶었는데, 역시 부족하다.

세월호 1년, “고통은 계속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호는 내게 방 한편에 치울 수 없는 누군가의 영정사진 같은 것이다. 항상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대구에서 세월호 관련 행사가 있으면 최대한 기록했다.

명륜지구 재개발, “폐지 줍고 사는데 아파트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재개발 광풍으로 인한 고통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는다. 대구에도 곳곳에 삶의 터를 잃게 될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많은 경우에 재개발이 무너트리는 것은 빈곤한 사람들의 삶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은 그들의 삶의 터전 위에, 그들과는 무관한 아파트가 들어온다.

[대굴대굴] 집보다 길거리가 안전한 탈가정 청소년?탈가정 청소년과 먹고 자면서 기사를 썼다. 관찰자인 내?생각이 많이 개입됐다. 그만큼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1.?삼평리 주민과 연대자, 송전탑 넘는 넝쿨이되어?2.?나의 살던 고향은…단지 삼평리에 살았을 뿐인데?청도군 삼평리에서 송전탑 공사에 저항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취재했다. 실로 삼평리는 내 기자 생활의 기쁨이었다. 기자 초년생으로서 그때는 감정적이었고, 요령도 없었다. 그만큼 내 기사도 서툴렀지만, 날것 그대로였다.

땅땅땅! 하고 새해가 된다고 내 삶과 우리 삶이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나이만 한 살 더 먹는다. 아, 이제 서른이다. 외모부터 생각마저?‘아저씨’가 되어 가는 걸 느낀다. 나이 들지언정, 눈빛만큼은 늙지 않고 싶다. 거창하진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찾아 기록하겠다는 새해 다짐을 해 본다. 거창한 다짐일까? 새해에는 더 많은 사람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삶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독자와 친구들 비판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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