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 찾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만들겠다”

아사히글라스를 일궈 온 사람들 (1) 안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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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4:33 | 최종 업데이트 2016-01-05 18:05

[편집자 주]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된 지 6개월째 접어들었습니다. 최저시급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장을 가동했던 이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 직후 한 달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회사는 계열사 정규직 노동자 공정이 없어져,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아사히글라스는 구미시로부터 40만㎡의 땅 50년간 무상 사용, 법인세 등 국세는 5년, 지방세는 15년 동안 감면받고 있는 기업입니다. 지역 경제활성화와 고용창출을 위한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특혜지만, 고용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민>은 해고 문제 해결이 될 때까지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삶을 살펴보는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어디를 가나 최저시급이다. 벌써 25년째. 그 이상을 물어보면 이상한 사람이 됐다. 노동조합은 생각도 못 해봤다. 아니, 노동조합은 브라운관에서나 나오는 사람이었다. 마흔다섯쯤 되면 벌어놓은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니고 싶었던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안진석(46) 씨. 꿈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를 주눅들게 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여행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 LG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곳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 학교처럼 종이 울리면 퇴근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가전회사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로, 부산에서 울산, 김해로.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자유로운 시간 보장을 중요하게 여겼던 진석 씨가 택한 일은 경비였다. 물론 최저시급이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경비한다는 게 못마땅했던 공무원 아버지의 눈칫밥이 견디기 쉽지 않았다. 다시 공장을 찾아보다 워크넷(노동부 구직 홈페이지)을 통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다. 먼저 연락 온 곳으로 마음먹은 진석 씨. 구미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지티에스)로부터 연락이 오자, 연고도 없는 구미로 와서 일을 시작했다. 2010년 4월이었다.

‘휴일 있는 삶’을 원했던 진석 씨
설, 추석 연휴는 의미 없고, 한 달에 하루 쉰 적도 있어
그저 근무표에 따라 휴무가 결정될 뿐

경북 구미4공단 아사히글라스 공장 출입구는 용역 경비 10여 명이 삼엄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 풍경 사진을 찍으려 기자가 다가서자, 용역 경비 손에 쥔 무전기가 움직였다. 입구에서 내려와 노조(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사무실 겸 천막농성장 문을 열고 해고 생활 6개월을 맞은 진석 씨를 만났다.?(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향상을 요구하며 지난해 5월 29일 노조를 결성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30일, 회사는 하청업체 3곳 가운데 GTS와 계약 해지를 알렸다. 그리고 GTS는 7월 31일자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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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1년 이상 다닌 회사가 없었던 그는 아사히글라스에 5년 동안 일했다.

“처음에 1시간 일하고 20분 쉰다고 하기에 놀리는 줄 알았다. 첫 1년은 너무 많이 쉰다는 생각도 했다. 유리회사는 이렇게 안 하면 못 버텨서 그렇다더라. 지금껏 다닌 회사에 비해 일이 견딜만했다. 그러던 차에 회식자리에서 관리자가 ‘진석아, 니 우리 회사 오래 다니면 좋겠는데,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눈치 없이 ‘평일에 야근해도 좋다. 밤을 새워도 좋다. 단, 천재지변이 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은 놀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답이 없더라. 내가 잘못 말한 거였다”

그는 ‘휴일이 있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3조 3교대로 돌아가는 공정에 여유 인력이 없는 공장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3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만 쉰 적도 있었다. 달력에 찍힌 빨간색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근무표에 따라 돌아갈 뿐이었다. 진석 씨는 이때 쌓였던 불만이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계기라고 말한다.

“근무표에서 쉬는 날은 쉬는 거고, 일하면 하는 거다. 5년 동안 설에 쉰 적이 한 번밖에 없었다. 노조 만들기 1년 전쯤 했던 5.5세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던 RF공정 잔업 때 퇴직까지 고려했었다. 수동 적재를 위해 일요일 근무도 계속했다.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동료와 근무를 바꾸지 않으면, 쉴 수가 없었다. 사장한테 인력을 더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았다’는 말로만 끝났다.”

휴무에 대한 불만, 송곳처럼 나타나
“노조 활동하면 신세계 본다? 그래 한 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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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있다고 언제 어디서나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어지는 휴무 없는 근무에도 진석 씨는 노동조합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청업체 소속이라 노조가 생기면 바로 해고될 것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차헌호 지회장이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일방적인 권고사직을 통보받는 과정에서도 그러려니 했다. 16명 가운데 12명이 잘 뭉쳤고, 권고사직을 철회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헌호 지회장을 중심으로 노조를 만들어보자는 뜻이 모였고, 진석 씨에게도 함께하자는 권유를 했다.

“사실 저는 여기 오기 전까지 노조를 방송으로만 봤거든요. 더군다나 비정규직인데. 지티에스는 설비조차 없는 회사잖아요. 사람밖에 없는 회사에 무슨 노조냐, 바로 계약 해지될 거고, 사람들 다 뿔뿔이 흩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교육한다고 해서 갔는데, 머리에 잘 안 들어왔어요. 그 순간 RF잔업이 생각났어요. 어차피 지킬 것도 없다. 올해가 될지, 2~3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쫓겨나기는 마찬가지다. 최저시급으로 일하는 곳은 많지만, 그거 몇 년 더 하기보다는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희망퇴직을 거부한 것도 RF잔업 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그때 드러난 거죠.”

그 분노는 두 번째 교육장에서 만난 한 민주노총 활동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다.

“안 한다고 뿌리치지 못해 따라간 교육장에서 배태선 실장(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굉장히 운이 좋다.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다. 노조를 하면 신세계를 볼 것이라고. 노조에 대한 선택권이 나한테 있으니, 교육들으러 온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깊게 생각했다. 그래 합시다. 나도 그 신세계를 한 번 보자고”

그 신세계가 보였을까. 진석 씨는 “한상균 위원장이 왜 출마해서 구속을 감수하고 총궐기를 하자고 할까. 시간 지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모든 노동자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신세계가 ‘짠’하고 나타나지는 않았다. 휘황찬란하고 멋진 것도 아니고, 남이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찾아가는 것이고, 각자 마음속에 박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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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누떼처럼…
임금도 중요하지만, 부당함에 맞선 자존심
“좋은 회사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다“

노조를 만들고 첫 교섭 날, 진석 씨는 ‘투쟁’이 적힌 머리띠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갑을 관계에서 주눅들어 있던 감정을 날려버렸다고 한다. 노조 활동을 시작하면서 진석 씨는 “누떼가 강을 건너가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일자리와 임금 지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신을 억눌러온 부당함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번에는 꼭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지티에스의 희망퇴직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사무실에 가서 그들과 대면하면서 그들이 내미는 희망퇴직 카드를 받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나면, 노동조합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 생계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지만, 금속노조에 가입하면서 해고자 구제기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해고가 길어지면서 힘들지 않겠냐며 2016년 전망이 어떨 것 같으냐는 기자의 어리석은 물음에 진석 씨는 담담하게 현명한 답을 꺼냈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예측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현장복귀하자고 하면 어떤 사람은 세상물정 모른다,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처음 지티에스에서 노조가 가능하냐고 했는데, 교섭하고, 천하무적 골리앗 같은 아사히가 우리를 내쫓았다. 어떻게 될지는 열어봐야 안다. KEC가, 갑을오토텍이 하지 않았나. 나는 좋은 회사가 있으면 가는 줄 알았는데, 노동조합으로 만들 수가 있더라. 들어가려면 굉장히 많은 것을 바꿔야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꼭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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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진석 씨는 조합원들과 현수막을 들고 아사히글라스 정문으로 향했다. 교대시간에 맞춰 ‘해고 철회’ 선전을 하기 위해서였다. 진석 씨는 “처음에는 공장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선 것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당당해졌다”면서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어둠이 찾아오고, 퇴근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해고 철회’ 현수막은 얼마나 비쳤을까. 어디를 가나 최저시급인 세상에 좋은 회사가 ‘짠’하고 나타나길 바라는 건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이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바꾸는 게 ‘신세계’의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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