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대구했네”···코로나19가 촉발한 대구 혐오

"기득권 누리던 대구, 코로나19때는 혐오 대상 전락"

11:04

‘살천지’, ‘확찐자’, ‘돌밥돌밥’···코로나19 이후 수많은 신조어가 나왔고, 이 중에는 대구 사람에게는 아픈 말도 있다. “대구가 대구했네”

“대구가 대구했네”라는 말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대구가 전국적인 이슈의 중심에 서는 동안 만들어졌다. 신천지 발 집단 감염, 긴급생계자금 1인 가구 지급 기준 문제, 총선 이후 긴급생계자금을 지급한다는 권영진 시장의 말, 권영진 시장의 병원행 등의 사건이 이어졌고, ‘미래통합당 소속 권영진 시장의 행정 미숙→나라 팔아먹어도 미래통합당 찍는 대구→모든 대구 사람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대구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도식이 짜여졌다.

대구 사람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상점 안내문이 붙을 정도로, 대구 사람은 대구라는 지역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경험도 하게 됐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는 개인을 지역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부당하지만, 이번 일이 대구 사람도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반성도 나온다.

28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코로나19 지역혐오의 성찰과 과제” 공개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에는 윤창준 대구MBC PD, 육주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김동식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의원, 김지원 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활동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좌담회는 지역을 이유로 한 차별적 시선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증폭됐다고 입을 모았다.

▲28일 오후 3시 열린 코로나19 지역혐오 성찰과 과제 좌담회. 왼쪽부터 서창호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장, 김지원 활동가, 육주원 교수, 김동식 의원, 윤창준 PD

최근 대구 상황에 대해 김동식 의원은 “전세가 역전됐다”고 설명한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이 시작됐을 때 ‘우한 코로나’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였으나 이후 ‘대구 코로나’라는 말이 나왔다. 특정 지역 비하가 되돌아온 것이다.

육주원 교수는 서울에 있는 아버지와 병원에 갔을 때 병원 입장을 거부당했다. 육 교수는 “대구 사람은 아프면 병원도 못 가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한국 사회가 사람을 ‘대구’라는 지역성 하나로 본질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성소수자’, ‘신천지’라는 말처럼 ‘대구’도 어느새 소수자성을 띤 말이 된 셈이다.

윤창준 PD는 대구 지역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대구의 정치적 보수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특정 정당의 독점적 지위가 바뀌지 않는 한 대구시민은 앞으로도 정치가 시민의 삶을 바꾸는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전라도 또한 과거부터 지역성을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화두도 던졌다.

김동식 의원은 “과거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번 총선 결과 대구·경북이 고립되고 있다. 정치 성향을 이유로 왕따 시키기 쉬워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대구에서 터지니 (정치 성향과) 단정적으로 연관 지었다. 이제 ‘쟤들은 이상하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기 쉽게 됐다”고 말했다.

김주원 활동가는 “대구 청년들은 ‘쌍도'(경상도를 비하해서 쓰는 말)라는 자조적인 말을 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분위기에 대해서 그런 말을 쓴다”며 “대구가 경직됐고 보수적인 곳이란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주원 교수는 “진영론적 사고가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동의하면서, “과거 호남 혐오가 강했다면 이제 코로나19를 계기로 대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폭력적 일반화의 대상이 됐다. 대구 사람이 병원에 가는 걸 막고, 취직을 막을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혐오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역으로 생각할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어 육 교수는 “대구가 받은 혐오의 경험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질 수 있는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지역 혐오를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 방안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화두는 차별금지법으로 넘어갔다. 차별금지법은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대구 혐오와 같은 지역 혐오를 포함한 소수자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육주원 교수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할 수도 있지만 퇴보할 수도 있다. 제도적 장치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며 “코로나19는 차별과 혐오 속에서 소수자가 감염되면 사회 전체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차별금지법은 처벌을 위한 게 아니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말했다.

김동식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집단의 적극적 찬성 의지는 안 보이지만, 반대 집단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정치인은 이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민주당이 법 제정에 적극적이기 어렵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좌담회는 대구경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인권실천시민행동, 인권운동연대, 코로나19대응대구공동행동이 주최하고 국가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 뉴스민이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