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1) 소실된 뻔한 기억의 보존

기억연구회 그늘-영남대 링크플러스 사업단, 합천 원폭자료관 자료 전산화

19:01

지난 6월 18일 일본 추고쿠(中國) 신문에는 한국인 3명이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진이 실렸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과 최범순 영남대 교수, 김동호 ‘기억연구회 그늘’ 대표가 주인공이다. 원자폭탄 투하 75주기를 맞아 ‘히로시마의 공백’이란 특집 기사를 준비하던 추고쿠 신문은 지난 2월 20일 경남 합천을 찾아 세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 추고쿠 신문 6월 18일자 보도.

세 사람이 이날 주고받은 건 ‘합천원폭자료관 소장 자료 보존을 위한 기록자료 영상화 결과보고서’다. 오랜 세월 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가 소장해온 원폭 피해 및 피해자 자료를 전산화한 결과물이다. 낡아 소실될 위험에 처했던 원폭 피해 고증 자료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세 사람 덕분에 영구적으로 보존될 수 있게 됐다.

전산화 작업은 협회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목록화해 분류하고,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구술증언이나 개인신상정보 카드 같은 자료는 그 자체를 이미지화해서 보존시켰다. 보존된 개인신상정보나 구술증언, 회원등록증 등은 2,904명, 3,149건, 4만 1,989점에 달한다.

역사관 개관 당시부터 자료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심진태 지부장은 “자료를 남기는 건 역사를 남기는 것”이라며 “원폭 피해자로 약 5천 명이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데 실제 자료는 2,900명 정도밖에 없다. 그만큼 분실됐다는 의미다. 보존에 관심만 있을 뿐이었는데 영남대에서 최범순 교수와 학생들이 도와준 게 너무 고맙다”고 작업의 의미를 되새겼다. (관련기사= [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2) “자료를 남기는 건 역사를 남기는 것”(‘20.8.6))

▲2017년 개관한 원폭 자료관은 원폭 피해자들 관련 자료보단, 원폭 관련 정보 제공 전시물이  대부분이다.

상당한 의미를 갖는 작업이지만 사실 이 작업은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적 노력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자료의 중요성을 인지한 개인들의 의지로 진행됐다. 전산화 작업을 도맡아 한 ‘기억연구회 그늘’은 2017년 우연히 들른 원폭자료관에서 심 지부장에게 관련된 이야길 듣고 작업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김동호 그늘 대표는 “당시에 심진태 지부장께서 많은 말씀을 해주시면서 피폭자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대학원 다니면서 자료수집 정리는 많이 해봤으니 그런 걸 도와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분들은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사람과 돈이 없고, 저희는 시간이 있고 능력이 되니까, ‘한 번 해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언약을 한 게 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3) “손대면 바스러지는 자료, 데이터화 의미”(‘20.8.6))

뜻 있는 학생들의 ‘좋은 일’로 그칠 뻔한 작업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사업화’됐다. 영남대 링크플러스사업단 지역협력센터장인 최범순 교수(일어일문학)는 심 지부장으로부터 그늘팀 소식을 전해 듣고, 이를 링크플러스 사업단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사업화했다.

최 교수는 “지역협력센터는 지역사회에 협력하고 기여하는 게 역할인데, 자료관에 종이 상태로 오래된 자료가 많은 걸 봤고 이걸 디지털화하고 장기보존할 수 있는 형태로 두면 지역에도 좋고, 연구자들에게도 좋겠다는 고민을 했다”며 “사업단엔 예산이 있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이었는데 그때 ‘그늘’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4) “축적된 기록 정리 중요···궁극적으로 교육해 알려야”(‘2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