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은 ‘밑 빠진 독’이라는 인식 전환해야”

나백주 교수, 대구의료원 역할 토론회 발제
“공공병원 짓는 것 중요···불가피한 적자 해결책 고민해야”

07:58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관심도 커졌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공공의료기관은 소위 ‘밑 빠진 독’으로 치부됐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밑 빠진 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겪은 일화를 통해 강조했다. 나 교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시 서북병원장을 지내고 2016년부터 지난 6월까진 시민건강국장으로 재직했다.

나 교수는 12일 오후 ‘코로나19 최전선 대구의료원의 역할과 과제 및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주제로 대구시의회에서 진행된 토론회 발제자로 나서 공공의료 강화와 지방의료원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 교수는 시민건강국장 시절 경험과 서울시 보건 행정 현황 등을 짚으며 공공의료가 갖는 기능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운데)는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 전환을 강조했다.

나 교수는 “6월 퇴직 전에 5월 마지막 의회 추경 심의를 받았다. 시립병원이 코로나19 대응하면서 적자 본 걸 보전하는 추경이었다. 그때 시립병원 투자에 비판적이었던 의원이 기존보다 더 늘려서 수정 발의하면서 그런 말씀을 했다. 그동안 공공병원은 밑 빠진 독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대응 보면서 공공병원 투자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나 교수는 “공공병원은 의료 안전망 기능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선도적으로 도입해서 민간병원으로 확대해나가는 역할도 한다”며 “또 신체 질환 동반 정신 질환자 응급 입원, 기초생활수급, 노숙인 같은 분들이 입원이 필요할 경우 그 역할을 하는 것까지 민간병원이 갖기 힘든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에 공공병원이 대응한 것처럼 그 역할이 크지만, 앞서 이야기한 의원님처럼 공공병원이 왜 필요하냐고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다”며 “기존 공공병원의 시설과 장비에 투자를 하고 인력을 늘려서 공공병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자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프레임이 거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지방의료원법)을 보면 3년 이상 적자가 나면 원장을 바꾸거나 해야 하는 조항도 있다”며 “예전에 진주의료원 폐업 때 계기가 되어서 복지부가 최초로 불가피한 적자를 계산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서 멈췄다. 서울시만 불가피한 적자를 평가항목으로 가져와 평가하고 해당 병원이 계획을 내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 설명처럼 지방의료원법 22조에는 3년 이상 당기 순손실이 발생하면 운영진단을 할 수 있고 운영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복지부가 의료원장 해임을 지자체에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교수는 “불가피한 적자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직원 월급을 줘야 하는 원장 입장에선 경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공병원도 공공의료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정부, 지자체는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짚었다.

나 교수는 그 과제로 단연 공공병원에 대한 예산 지원을 꼽았다. 그는 “서울시 시민건강국 예산이 꽤 많은 편이다. 서울시 자치구 예산과 맞먹을 정도인데, 서울시 예산이 굉장히 커서 비율로 보면 1% 정도밖에 안 되긴 한다”며 “서울시는 전국 처음으로 공공병원 예산 파트에 한 꼭지를 더 만들었다. 시설·장비 투자, 공공사업 투자에 더해서 공공적 기능을 평가해서 불가피한 적자를 한 꼭지로 예산을 준다. 전국적으로 확대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또 다른 과제로 신설하는 공공병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거나 다른 기관과 다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다른 기업 예타와 똑같이 평가를 해버리는 문제도 있다. 돈은 못 벌지만 지역 주민의 감염병을 억제했다거나, 정신질환 피해를 억제했다거나 이런 게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대구의료원 기능 강화와 제2 대구의료원 설립에 공감대를 전하면서도 예산 문제에 대한 중앙 정부 차원의 해결책 마련을 강조했다. 그는 “대구의료원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제2 대구의료원도 고민하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런데 시립병원은 만들어지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불가피한 적자 지원이 없으면 공공병원이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이 부분은 중앙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공공의료기금 같은 걸 신설해서 광역자치단체가 공공의료 투자, 불가피한 적자 지원을 지자체가 판단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다른 공공병원 설립을 하는 지자체와 연대해서 움직임을 가져가려고 한다. 제대로 된 공공병원을 고민하는 분들이 전국적인 흐름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