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를 ‘이용수’로 바라봐야 할 시간

지난 14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
이용수 기자회견 후, "고정관념화된 청자 커뮤니티 확인"
"피해의 상징 넘어 시민으로서 자리매김해 준 적 있는가"

11:17

“이용수 할머니의 이번 증언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과 동일한 정도의 충격을 줬다”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4일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93) 씨의 두 차례 기자회견을 두고 한 말이다. 1991년 고 김복동 할머니가 처음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후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책임을 끌어내기 위해 시작된 운동은 어쩌면 30년 만에 처음으로 그 운동 방식에 의문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씨가 ‘수요집회 중단’을 말한 이유(‘20.5.13),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위안부’ 운동 끝이 아니라 데모 방식 바꾸겠다는 것”(‘20.5.25))

‘증언과 구술의 번역 : 군 위안부 운동 역사를 논의하기’란 주제의 포럼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이용수 님의 발화가 일으킨 반향은 우리 사회의 청자 커뮤니티가 얼마나 단일하고 획일적이고 고정관념화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며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을 수 없다면 말하는 사람은 다양하게 말할 수 없다. 군 ‘위안부’ 여성을 식민지 피해와 고통의 상징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 시민으로 자리매김해 준 적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혜인 연구위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화된 피해자가 아닌 ‘마주 선 피해자’로서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가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은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더 들어야 한다”며 “공공의 역사를 피해자의 말로써 만들어가야 할 때, ‘마주 선 피해자’라는 지위를 드리고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씨 기자회견 후 나온 반응은 크게 찬반으로 나뉘었다. 한 편에서는 정의기억연대 비리 문제를 부각하면서 이 씨를 운동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용수 할머니 지키기’에 나섰다. 정의기억연대를 지지하는 측에선 이 씨의 발언이 지난 30년 운동을 폄훼하는 데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이 씨의 기억력 문제, 배후설 등을 들어 발언 자체를 의미 없는 거로 만드려는 반응을 보였다.

정유진 전 일본 도시샤대학 조교수는 ‘대의를 훼손한 자’ vs ‘관제 시민운동의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라고 설명하면서, 결국 두 논의 모두 이용수 씨의 말을 듣기보다 외부를 의식한 듣기 방식에서 비롯된 대립구도라고 지적했다.

정 전 조교수는 “그의 말이 해명되기도 전에 운동에 대한 찬반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의문스러운 일이었다”며 “일본과 한국이라는 2차원의 좌표에서 피해의 증명으로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피해자가 스스로 ‘내가 느끼는 문제는 한일관계뿐이 아니다’라는 걸 말했다. 2차원의 좌표가 부동의 존재가 아니란 것을 이야기했을 때 한국 사회는 민족주의적인 인식의 혼란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역시 “이용수 님의 말은 피해자의 말로 대표되기도 하고, 피해자의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각자가 피해자를 원하는 방식대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피해자가 여성인권운동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운동의 전망을 제안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것도 우리가 상상하는 우상화된 피해자의 모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수 씨가 5월 첫 기자회견에서 수요집회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을 때, 논쟁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지킬 것이냐 없앨 것이냐로 번졌다. 이 씨는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논쟁은 숙지지 않았다. 결국 이 씨는 지난 7월 단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요집회는 지지하지만,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쟁은 일단락(?)됐다. (관련기사=이용수, 정의연·시민모임과 만나··”수요집회 지지, 변화 필요해”(‘20.7.3))

권김현영 활동가는 “피해자가 욕망을 드러냈다는 것이 사람들이 놀랐던 지점이다. 피해자가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지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며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은 반성폭력 운동에서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피해자로서 생존하는 것, 우리와 같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걸 만드는 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조교수도 “피해자가 ‘산 증인’으로만 머물러 있을 때, 피해자는 당시 경험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그릇’ 같은 존재로 규정된다. 그런 논의는 피해자를 비사회적인 존재로 다루게 된다”며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사회화되고, 순간순간 변한다.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있는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