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의 전단지 투쟁 일지 (3)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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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17:46 | 최종 업데이트 2016-01-11 17:46

[편집자 주] <둥글이의 유랑투쟁기>의 저자이자 전국을 유랑하며 환경운동을 벌여 온 둥글이 박성수. 그는 2015년 제작한 전단지를 제작, 배포한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뉴스민>에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전단지 투쟁 일지인데,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3차례 나누어 싣는다.

구속!?4월 28일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짬을 내서 사진 한 컷을 찍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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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포 – 구속이 두렵지 않다. 다만 미인계만 두렵다! 국민주권 행사에 대한 국민탄압 중단하라!’

하지만 서초경찰서 수사를 마치고 유치장에서 나오는 순간, 대구수성경찰서 경찰이 체포영장과 호송차를 대기시키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소의 불안이 엄습해 왔음이 사실이다. ‘잘하면 구속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수갑을 차고 대구로 끌려가는 심정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다.

대구수성경찰서에 도착하자 변홍철 위원장과 홍가혜 씨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나의 호송을 맡고 있었던 지능팀장은 그들이 옆에서 사진 찍는 것에 짜증을 부리며, 팔꿈치로 쳐내기까지 했다. 하여 대구수성경찰서 지능팀으로 향하는 어두컴컴한 계단 복도에서 지능팀장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 무슨 콤플렉스 있어요?”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지능팀장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고 나를 계단 복도에 세워놓더니, “야 임마 너 조심해!”라고 협박하며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쿡 두 차례 찔렸다. 당시 양쪽에서 지능팀 형사들이 내 팔을 잡고 있었고, 수갑까지 차고 있었던 그야말로 철저한 무방비 상태였기에 지능팀장의 폭력은 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당시 나는 ‘이대로 끌려가서 두들겨 맞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이후에도 지능팀장은 나에게 “너 이 새끼!”, “이 자식이!”, “너 몇 살이야?”, “어린놈이!”라는 비하와 욕설을 이십여 차례 쏟아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워낙 분하고 억울해서 면회 온 분들에게 그 억울함을 성토했고, 변홍철 위원장 등이 릴레이 1인 시위를 해주셨다.

20190_752060171581658_2183292814901502457_n특히, 검찰청 앞에서 ‘멍멍’이라고 외쳐서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던 당시 함께 있었던 고은광순님 등은 그 후 8개월 동안 매달 ‘둥글이 석방하라’며 검찰청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셨다.

하여간 이 다음날은 10시간 동안 되지도 않는 질 낮은 질문들에 답변하느라고 짜증이 밀려왔다. 특히, 조사를 담당했던 문 모 형사는 어떻게든 문제를 부풀리려는 방편이었는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적어 놓기도 했다.

가령 “전단지에 쓰여 있는 ‘염문’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며 질문을 해오기에 ‘남녀 간 관계에 관한 소문이다’라고 답변했는데, 나중에 조서에는 ‘남녀 간 관계와 성관계에 대한 소문이다’라고 답변했다고 쓰여 있었다. 이는 내가 박근혜, 정윤회가 성관계했다는 확신 하에 노골적으로 전단지를 만들어 살포한 것으로 만들어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한 수작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사진=정윤재님
▲사진=정윤재님

다음날 4월 30일.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대구지법으로 포승줄에 슬리퍼 질질 끌고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갔다. 사건을 담당한 박순배 검사는 내가 ‘박근혜와 정윤회가 성관계했다는 이야기를 퍼트려서 두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나는 ‘염문설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 실태’를 비꼬았을 뿐이었다. 박순배 검사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에 대한 대응을 명했다’는 기사를 인용해 대통령이 나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며 구속의 사유를 주장했다.

그런데 그 기사는 내가 전단지 만들기 몇 개월 전에 나온 기사고, 민주당 정치인들의 발언을 꼬집어서 한 말이었다. 검찰이 사실관계를 따지는 능력보다는 편집기술에 혁혁한 역량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눈앞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속 재판 중 변호를 맡아주시던 김인숙 변호사께서 재판부에서 구속 재판에서 피의자 변론을 위해서 필요한 사건 기본 서류도 받지 못했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정영식 판사는 김인숙 변호사께 진심으로 사과(?) 입장을 표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변호사님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속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에 대한 구속재판을 진행하면서 더군다나 재판에 꼭 필요한 사건 서류(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서류)도 제공하지 않은 이런 날림 재판에서 설마 구속을 시키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그날 오후 나는 구속이 결정되었다. “박 씨의 범죄 행위가 상습적이고 도주 증거 인멸 우려, 재범의 우려가 있으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다”는 이유였다.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이 전단지에 ‘내 사진’, ‘연락처’를 넣었고 심지어 ‘잡아서 구속하려면 구속해라 이 ㄱㅅ끼들아!’라는 문구까지 적시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 표현은 국민의 권리라는 확신이 있었고, 혹여나 문제 삼더라도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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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주, 증거인멸의 우려라니?

대구수성경찰서 유치장에서 구속 소식을 들은 나는 ‘야호~!’라고 환호를 지르며 춤을 췄다. 인생살이 다양한 경험을 재산으로 여기고 있었던 나는 또 한 번의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할 찰나였다.

5월 1일 저녁에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나에 대한 구속이 이뤄진 직후 대구지방변호사회에서 긴급회의가 이뤄졌고, 이승익, 김미조, 류제모 변호사 세 분이 무료로 변론해주시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원래 변호를 맡으셨던 김인숙 변호사님과 함께 네 분의 막강한 변호인단이 꾸려진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 샘솟았다.

이후 여러분들의 관심과 지지, 기자회견, 항의 행동들이 이어졌고, 나 역시 유치장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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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며칠 후인 5월 6일. 대구수성경찰서 유치장 생활이 끝나고 대구구치소로 넘어가기 전, 검찰청 구치감에서 대기하다가 검사실로 포승줄에 묶여 끌려갔다. 내가 박순배 검사에게 건넨 첫마디는 “안 부끄러우세요?”였다. 이런 사건을 이런 식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구속한 것이 정녕 검찰의 임무였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다소의 불안과 걱정을 안고 대구구치소로 옮겨진다.

구치소 입소 심정은 그야말로 똥 씹은 그것이었다. 과거에도 강정마을 건으로 1주일을 제주교도소에서 살았고, 한심한 시의원 후보 규탄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2주일 군산교도소에서 살았던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벌금을 안 낸 결과의 노역’이었다. 그렇게 제 발로 교도소 찾아 들어가는 것도 통제되는 자유와 억압의 분위기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는데, 정권의 공안몰이로 기약 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소의 불안이 밀려왔다.

처음 며칠은 6명이 생활하게끔 만들어진 작은 방에 7명이 함께 생활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 유일하게 호황인 구치소-교도소였는데, 전국적으로 정원이 초과한 상태였다. 대구구치소는 정원의 20%가 초과하였단다. 이 때문에 잠잘 때는 특히 고역이었다.

특히나 이런 비좁은 환경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웠던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키 190cm의 조폭 아저씨 옆자리에서 잤다. 자다가 어느 때 둔탁한 기분이 들어서 깨어보니 눈앞에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져 있는지라 잠시 내가 머물러 있는 곳에 대해?착각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잠결에 조폭 아저씨 등에 니킥을 날렸던 것이다. 만약 그 아저씨가 당시 깨어났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한 방에 모인 조폭, 사기꾼, 협박범, 마약범과 며칠 생활을 하며 앞으로 구치소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다가 며칠 후 방이 배정됐다. 나는 독방이었다.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뿌린 이유로 ‘공안범’으로 분류된 때문이었다. 혼거방보다는 자유스럽게 지낼 수 있음이 위안이었지만, 좀 싸늘한 것이 문제였다.

0.67평의 공간에서 혼자 먹고, 자고, 일과를 수행하는 것에 상당한 고립감이 동반되었지만, 나는 결코 무기력하게 갇혀있지만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6월 11일 보석재판이 있었다. 변호사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나 역시 보석에서는 틀림없이 나갈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여 보석재판 끝난 후 구치소로 돌아가서 이제나저제나 출소 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보석이 기각된 사실을 듣고 다소 황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특히, 이틀 정도는 누워서 잘 때, 그리고 아침에 기상할 때 가위눌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이 악몽이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다. 김태규 판사가 말한 ‘보석기각사유’는 ‘도주우려’란다. 이에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삶에 대한 회고록’인 <둥글이의 유랑투쟁기>가 혁혁한 증거 역할을 한 것인가?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를 출소할 그날에 대한 희망은 접고 현재를 버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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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서신》
이곳에는 구속이 많은 지역답게 신입 구속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들어오는데 그중에서는 삶의 희망을 포함한 난파선 같은 이들이 종종 있어 다양한 소란이 동반됩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음울한 절망은 다른 수감자들의 인생 한탄과 섞여 복도를 서성이다가 조그마한 배식구를 통해 제 귀에 전해지는데… 그럴 때면 시대의 야만이 짖눌리면서도 결코 잃지 않으려던 여유가 단박에 증발해버리고, 마음에는 패배, 상실, 공허, 좌절 등이 어우러진 음습함이 채워집니다.

이럴 때는 저 너른 하늘이 있을 만한 방향으로 긴 한숨이라도 뿜어내기 위해 화장실 창으로 눈을 돌리지만, 견고한 철망은 이곳에 갇힌 수인들의 시냐가 온전히 세상에 닿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과 산자락의 희미한 윤곽을 전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 흐릿한 희망의 근거를 찾기 위해 동공을 조절하다 보면, 시야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동치던 어떤 경계에서 묵직한 쇠창살이 포착되는데, 이는 더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생을 단절하기 위해 목을 맨 기둥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험하게 살아온 이유로 인해 갓 5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당뇨에 신장병, 위궤양, 퇴행성관절염, 우울증 등이 겹쳐 약 한 주먹을 털어 넣고도 밤새 잠을 못 이루는 상습마약중독자 등의 뒤척거림을 듣고 있을라치면…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닿은 느낌이 엄습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듯한 악몽같은 어수선함 속에서 소등되지 않고 밝게 빛나는 형광등 빛 아래 누워 눈을 깜박이다보면 형틀에 묶여 있는 기분입니다.

그런데…수면제 먹고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조직폭력배 두목 아저씨의 한탄이 머리에 울리는 터, 도무지 가능할 것?같지 않았던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일들이 점차 저 멀리 터널 끝 얘기처럼 느껴지던 어느 때…저는 잠에 빠져듭니다. 저는 이것이 기적임을 체험합니다. ‘잠잘 수 있는 능력’, ‘잊을 수 있는 능력’은 생명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특권이 아닌가 합니다.

‘잊음’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절망에 마냥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잊음의 능력은 단순히 기억이 지워진다는 소극적 의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와 증오, 열등과 상실을 털어버리고 타인을 원망하지 않고, 상황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 자학하지 않고, 현재를 온전히 맞대면할 수 있는 ‘비움’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능동적 잊음은 이해와 용서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오늘 눈을 감으며 하루 동안 이곳에서 들어찬 온갖 절망을 털어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새롭게 주어질 또 다른 하루 속에 여유와 희망을 채워 넣을 것을 다짐해봅니다.

여러분도 혹시 오늘 어떤 열 받는 절망스러운 경험을 하셨다면…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을 쥐어흔들고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새날을 맞으십시오. 누적되는 절망을 견뎌내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는 것은 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김태규 담당 판사는 재판 내내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드러내는 듯했다. 재판 중 변호인 측이 증인에게 하는 심문에 짜증스러운 표정을 하는 것은 물론 다음 공판기일을 50일 후로 잡는 식으로 재판하는 통에 이래저래 구속 피고인으로서 재판받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0.67평 독방 안에서 언제 끝날 줄 알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나마 편지 쓰고 책 읽고 하는 시간 덕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설계가 잘못된 아파트식 수용시설인 대구구치소는 사계절 내내 태양빛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데, 여름 더위는 직살 맞을 정도였다. 6월 중순 대구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으니 기온이 오르면서 구치소 안에서의 고초는 말할 수 없었다. 한여름 2주 정도는 그야말로 ‘용광로’ 같은 더위를 견뎌야 했는데, 어느 때는 새벽 1시 온도가 32도여서 수감자가 취침 중 졸도해 의무과로 이송되는 사건도 생겼을 정도다.

구치소 내부 사정과는 별도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하여 어처구니없이 한심한 폭력수사를 진행했던 대구수성경찰서 측에 편지를 보내서 ‘내가 출소하면 수성경찰들이 한 작태에 대해서 응전할 테니 이것이 두렵거든 통성기도 해서 내가 무기징역이나 사형당하기를 기도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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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이 먹혔는지 (뒤에서 다루겠지만) 나는 6개월 만기 구속 후 추가구속이 되어 한 달 반을 더 살아야 했다. 또, 대검찰청에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을 구속해줘서 유명하게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취지로 감사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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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2주 후 일산경찰서 경찰들이 찾아왔다. 일산경찰서에서 기자회견 중 ‘멍멍’이라고 외치고 조성훈 씨가 개사료를 뿌리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에 대한 ‘집시법 위반’ 사건 추가 조사였다. 그런데 왜? 5개월이 지나서 새삼스럽게 이 별 볼 일 없는 사건을 추가 조사하는가?

나중에 일산경찰서에 아는 경찰을 통해서 확인해 본 결과 이 사건 자체가 별것이 없어서 사건을 종결하려고 했는데, 고양검찰과 대검 등에서 8번을 불러서 사건화하라고 압력을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하여 자신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을 해 줬다. 대검에 감사장 보낸 효과인가? 한 장 더 받으려고 검찰이 수를 쓴 것인가?

이 말도 안 되는 사건 덕에 나는 ‘집시법 위반’혐의로 구속 만기 6개월을 채우고도 풀려나지 못하고 11월 9일 추가구속 되었다. 그리고 2주 후 결심공판이 있었다. 최후 변론 때는 어차피 담당 김태규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하지 못하는 듯해서 하고 싶은 말 다했다.

또, 이러한 시국전단지를 살포한 대역죄에 겨우 3년을 구형한 박순배 검사에게 보은의 마음을 가득 담아 편지를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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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나는 특수 수갑을 차고 제주도까지 비행기 타고 재판받고 왔다. 제주도 강정마을 사건으로 역시나 억울하게 3년을 끌었던 재판이다. 그런데 이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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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배 검사가 나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유, 김태규 판사가 계속 나를 추가 구속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제주도에서 특수공무집행 방해로 재판을 받고 있으므로 도주우려가 있어서’였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당시 억울하게 체포되었던 것이 이렇게 ‘무죄’로 증명된 것이다. 그러면 판결할 때 이것이 참작될까? 절대 그럴 리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 재판뿐만이 아녔다. 구속 상태에서 군산으로도 재판받으러 오가야 했다. 나는 2014년 수원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중 나를 방해하던 수원검찰청 수사관의 행태를 문제 삼아 ‘검찰청장’,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6월경 역시나 수갑 차고 포승줄에 묶여서 군산 법원에 변론하러 갔다. 그리고 7월에 승소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런 것들만 추려서 볼 때 나는 그야말로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폭력을 대구에서 당하고 있었다.

결심공판이 끝나고 선고를 기다리며 ‘선고형량 맞추기’ 게임판을 만들어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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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교 신도들은 둥글이가 ‘하루속히 출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1) ‘벌금-무죄’, 2) ‘집행유예’ 등을 찍었다. 하지만 정작 둥글이는 5) ‘징역 3년 이상~사형’에 가지고 있는 영치금을 모두 배팅했다. 나름 작전이 있었다. 그 다음 날 담당 판사에게 ‘사형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만들어 보냈던 것이다.

▲이 탄원서 내용을 보면 언뜻 김태규 판사가 승진하려고 이런 재판을 끌어온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잘못이고 표현이 다소 사려 깊지 못했음을 인정해야겠다.
▲이 탄원서 내용을 보면 언뜻 김태규 판사가 승진하려고 이런 재판을 끌어온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잘못이고 표현이 다소 사려 깊지 못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렇다. 이 탄원서는 기실 둥글이가 대박 로또의 꿈을 꾸며 한목 챙겨보려는 교묘한 술책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게 ‘판사와 짜고 승부조작하는 것이 아닌가?’ 투덜대기도 하겠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다.

하여간 불운하게도 12월 22일 선고 결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선고형량 맞추기 내기를 했다는 사실은 잊도록 하자)

사실 나는 판결이 날 때 내가 집행유예인 줄도 몰랐다. 그 1주일 전 산케이신문 기자가 세 시간 동안 서서 판결문을 듣고 있었다고 하기에 나도 최소한 한 시간은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귀마개를 끼고 선고에 임했다. 담당 판사가 뭐라고 뻐끔거리는 사이에 한마디씩 들리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맥락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판결이 끝나고 함께 재판받는 변홍철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기에 ‘집행유예구나’라고 직감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출소했다. 흔히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하지만, 나는 영치금 부자가 되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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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수성경찰서에 찾아가서 피켓을 들며 항의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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