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 출간

사라져가는 농본적 세계와 자연에 바치는 만가이자 송가
‘자연과 거리두기’ 혹은 ‘개발과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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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창비시선448)>을 지난달 말 창비에서 출간했다. 두 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실천문학사)>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이번 시집은 표제시 ‘끝은 끝으로 이어진’을 비롯해 ‘흑매 지다’, ‘깨진 토기 위에 햇살이’, ‘난설헌의 남매 묘(墓)’ 등 신작 시 60편을 담았다.

▲2018년 2월 영주 자택 서재에서 만난 박승민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발갛게 떨어지다가 벌겋게 흩어지다가 발강에 벌겅을 도장밥처럼 몇번씩 꾹, , 눌러 찍으면서 흑매 흑매 흑매 흑매흑매흑매 하고 우는 듯, 천지 사방 소리 없이 소리 없이 내려오는 저 매화창()만가(輓歌)인 듯 아니고 송가(頌歌)인 듯 또 아니고, 두 대목이 어느새 한 목청으로 만나, 두 손을 등 뒤로 묶고 벌겅 속마음에 발강을 한겹 한겹 더 기워 입으면서 흑매흑매흑매 하고 우는 듯, 우는 듯, 영영 져버리는 것 // 달빛 받아놓은 논물 안으로 후르르르륵 줄줄이 따라 들어가는 흑매흑매흑매, 긴 소리의 새끼들

흑매 지다전문

장이지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그의 시선은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고 한 초기 시(‘메모’-“지붕의 등뼈”)의 구절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측인지심에 기반을 두었다”며 “마침내 이번 시집에서 자기 내면의 가장 어두운 것으로 남아 있는, 최초이자 최종적인 타자인 죽음마저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끝은 끝으로 이어진 세계의 연속’(‘끝은 끝으로 이어진’)이지 궁극적인 ‘단절’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작은 잎이 관(棺)을 뚫고 시퍼런 꼭대기까지 삶을 끌고 간다’(‘버드나무로 올라가는 강물’)는 직관을 통해 시인은 죽음을 삶에 끌어들이면서 융해한다”고 평했다.

나희덕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인은 침착한 사제처럼 감정이입을 줄이고 ‘죽음 바깥’(‘삶은 오래 죽는다’)을 살아내며 그 존재들을 극진히 배웅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소리 없이 지는 흑매의 ‘매화창(唱)’처럼, 사라져가는 농본적 세계와 자연에 바치는 만가(輓歌)이자 송가(頌歌)’(‘흑매 지다’)라고 할 수 있다”고 적었다.

박승민은 ‘시인의 말’에서 “이 봉쇄된 구(球) 안에서 / 전진하는 후퇴 같은 이 세계의 발열 앞에서 / 시의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쯤일까. / 어디를 향해 언어는던져져야 하는가. /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구나…… // 김종철 선생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밤. // 2020년 8월, 코로나19 속에서 / 박승민”이라고 적었다.

그는 또 “읽기 편하고 짧은 ‘미루나무의 겨울 순례’로 시집을 열었다. 특별한 대표시를 고를 수는 없으나, ‘흑매 지다’가 좋겠다. 김종철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떠오른 ‘April Come She Will’, ‘대풍헌(待風軒) 시대’, ‘벼랑에 고드름’ 같은 시편들이 있는데, 다음 시집에 쓸 시편들과 같은 주제”라고 말했다.

시인은 1964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가 있다. 박영근작품상, 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대구·경북작가회의 대표를 역임했다.

▲박승민 작 ‘끝은 끝으로 이어진'(사진=정용태 기자)

나는 이미 거기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 죽음이라 부르는 그 흔한 곳에 / 몸의 일부, 나빴던 내 과거의 행실까지도 / 거기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 거기의 나는 여기의 무엇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 다른 색깔과 다른 형식, 다른 국적으로 / 보이진 않지만 가끔 이상한 기분의 형태로. / 핏속에 피부 밑에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 나와 떨기나무 뿌리와 물과 공기와 달빛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을까? // 태양의 시간을 받는 것은 지구이지만, 그 순간에도 / 달빛과 별빛으로 흘러들어 다른 존재를 무한 광합성 한다. // 끝은 끝으로 이어진 세계의 연속, / 존재는 늘 새로운 형식으로 우주의 일부로 다시 드러난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