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의회 지원예산 전액삭감, 불안한 정신장애인

“지원할 법적 근거 없다” vs “약자는 보호해야”...추경예산 편성 논의

10:07

정신장애인 양정은(가명, 31) 씨는 최근 다시 우울증이 도지려고 한다. 자신이 사는 여성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 ‘희망의 집’이 경산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해 문 닫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정신병원에서 나와 이곳으로 들어온 양 씨는 직업 재활 교육에 열심히 참여했고, 18일부터 붕대 만드는 공장에 첫 출근했다. 열심히 일해 집을 사는 것이 목표인 양 씨.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거주가 막막해졌다.

“우리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어요. 당장에. 가족이 있는데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들이고. 그러면 다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는 공간도 좁고 안 좋아서 있기만 해도 우울해져요. 밖에 나올 수도 없고. 여기는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일도 시작해서 좋았는데···” (양 씨)

정신장애인 구지순(가명, 21) 씨는 시설이 어렵다는 말을 듣자 눈물부터 흘렸다. 부모에겐 버려졌고, 할머니는 요양병원, 할아버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구 씨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과거 주변인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시설에서 나가려고 하니 그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여기 문 닫으면 저는 어떻게 해요. 갈 데가 없는데. 아는 사람 집을 떠돌아다니는 거 밖에는···”

희망의 집 입소자들
▲희망의 집 입소자들

정신장애인 9명이 살고있는 희망의 집은 새해부터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경산시의회는 2016년 사회복귀시설 보조금 중 시 부담액을 전부 삭감했다. 시의회는 2015년에도 부담액을 전액 삭감하고 희망의 집에는 입소 장애인의 부식비 16만8천 원만 배정한 바 있다. 2009년부터 희망의 집은 2014년까지 매년 약 6,500여만 원(분권교부금 1천만, 도비 1,230만, 시비 4,277만 원)의 지원금으로 운영됐다.

시의회는 2015년부터 분권교부세가 폐지되자 “지원금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당장 보조금을 삭감했다. 분권교부세는 2005년 국가보조사업이었던 노인·장애인·정신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 사업이 지자체로 이관되며 재원 보전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2014년 분권교부세 총액은 1조 6,884억 원(지방교부세의 4%)으로 보통교부세(31조 8,845억 원)에 비해 적다. 하지만 노인·장애인·정신요양시설과 같은 사회복지시설 등 국고보조사업 지방 이양에 따른 경비에만 사용할 수 있게?돼 있어 사회복지시설의 주요한 보조금으로 사용됐다.

희망의 집은 “분권교부세가 폐지됐다 하더라도 지자체에서 예산을 배정하지 않은 곳은 전국에서 경산시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 “경산의 다른 사회복귀시설에는 2015년 4천7백여만 원을 배정했기 때문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예산 삭감”이라고 항의한다. 경산시 다른 사회복귀시설로 대구대학교정신건강상담센터가 있다. 센터는 2015년 실제 4,695만 4천 원의 보조금을 경산시로부터 지원받았다.

연간 약 6천5백만 원의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희망의 집은 2015년 시비 16만8천 원과 도비 1,400여만 원을 지원받았고, 2016년 시비 0원, 도비 9백9십여만 원을 배정받아 운영비가?대폭 삭감됐다.

때문에 희망의 집 직원 2명(시설장, 직원 1명)은 인건비를 줄였다. 희망의 집 급여내역표를 확인한 결과 2014년 2월 월급 227만 원을 받은 윤영숙 시설장은 보조금이 삭감된 2015년 이후 89만 원(2015년 2월)으로 임금이 줄었고, 아예 월급을 받지 않는 달도 나타났다. 170만 원을 받던 다른 직원도 월급이 8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줄었고, 받지 못하는 달도 있었다. 2015년 6월에는 야간 당직을 전담하던 직원 1명이 아예 일을 그만뒀다.

희망의 집 시설장과 직원의 2015년 11월 급여내역표. 시설장은 급여를 받지 않았고 다른 직원은 50만 원을 받았다.
▲희망의 집 시설장과 직원의 2015년 11월 급여내역표. 시설장은 급여를 받지 않았고 다른 직원은 50만 원을 받았다.

윤영숙 센터장은 “정신장애인은 증상이 있을 때는 같이 살기가 힘들다. 폭력성도 있고 환청이 들리면 생각지 못한 이상행동도 하기 때문에 퇴원해도 (가족들이) 같이 살기를 꺼린다. 지금 입소자들은 이 시설 말고 갈 곳이 없다”며 “운영이 어려워져서 접으려고 했는데 입소자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그만둘 수가 없다. 입소자들도 불안해하는데 사정이 힘들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버리지 않겠다고 안심시켜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예산 배정이 안 된 이유를 모르겠다. 이분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 수 있나. 시의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 사실 국가에서 보호해야 할 사람들인데 우리가 맡아서 하는 것이니만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시의회, 의원들끼리도 의견 갈려
“희망의 집은 보조금 부당 수령한 곳”, “지원할 법적 근거 없다” vs “약자는 보호해야”
경산시, “부당 수령 조치는 끝나 무관···예산 지원 위해 노력할 것”

한편 시의회는 희망의 집 등 사회복귀시설 예산을 전격 삭감한 이유로 “보조금을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도 희망의 집이 과거 보조금을 부당 수령한 문제를 지적했다.

A의원(행정사회위원회, 새누리당)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부당하게 보조금을 수령한 전과가 있는 시설에 지원할 수는 없다. 시설장 윤영숙 씨는 당시 기소유예를 받았다”며 “분권교부세가 없어 부담인 데다 도비·시비 매칭사업도 아니다. (지원 근거를 만들려면) 매칭 사업으로 돌리면 된다. 선심성으로 줄 수는 없다. 현재 시설 입소자들은 보건소 협약 요양시설 등 대체 시설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희망의 집은 2011년(당시 ‘햇살가득한 집’) 보조금 이중수령 문제로 2013년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이중수령한 보조금 환수조치를 받았다. 감사받기 전 시설장이 현 윤영숙 시설장으로 교체됐는데, 전 시설장과 현 시설장은 자매지간이다.

이에 윤영숙 시설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윤영숙 시설장은 “당시 시설을 운영하던 내 동생이 어린이집도 운영했다. 둘 다 한꺼번에 하다 보니 인건비도 동시에 편성했다. 거짓말로 몰래 가져간 것도 아니고 지출내역서에도 보고했다. 중복수령으로 안 된다는 것을 당시에 몰랐을 뿐”이라며 “그 후로 아무 문제가 없다. 감사하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보조금을 안 주면서 운영 자체를 못하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금은 사비로 당직비나 운영비를 내는 상황이다. 우리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입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인데 시의회가 거꾸로 해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6년 예산 편성 당시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 시의원 중에서도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B의원(행정사회위원회, 새누리당)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일정 부분 시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시설에 입소한 약자들이다. 시의회도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약자를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본예산에서 삭감됐는데 다음 추경 예산에 편성된다면 그때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떤 확답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영희 경산시청 정신보건과장은 “시의회는 매칭사업이 아니라서 시비를 줄 이유가 없다는데 관에서는 법적 문제가 없는 한 예산 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희망의 집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희망의 집

420장애인차별철폐경산공동투쟁단과 우리복지시민연합은 14일 성명서를 통해 “복지에 사용하도록 꼬리표가 달린 분권교부세가 2015년부터 보통교부세로 전환되었지만, 지역민의 복지증진을 최우선으로 의정활동을 해야 할 의원이 2년간 전액 삭감한 행위는 이례적일 뿐 아니라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곳 모두 정신장애인의 쉼터와 지역사회 전환서비스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에 보조금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장애인 당사자들을 위해 시급히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