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줌in줌人] (67) 김밥

세상에서 가장 간결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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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일곱번째칼럼-김밥]이민호의 줌in줌人_201601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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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 오다이바에서

지금부터 김밥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갈 테다.

김밥은 세상에서 가장 간결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단 단어 자체가 간결함을 증명한다. ‘김밥’은 ‘김’과 ‘밥’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므로 한눈에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바다의 해초를 말려 만든 ‘김’과 논에서 생산된 쌀로 지은 ‘밥’으로 구성된 ‘밥’ 즉, ‘음식물’이라는 것이다. ‘김밥’이라는 단어가 간결함을 증명하듯 외양도 이를 증명한다.

새하얀 접시 위에 시커멓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화선지 위에 힘 있게 써진 ‘한 일’자를 보는 것 같다. 동양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까지 포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몇천도 씨의 온도와 몇천 번의 두드림을 견뎌 낸 ‘일본도’의 모습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간결하다고 해서 실용성까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김밥의 지름은 입에 넣기 알맞은 크기여서 씹고 삼키는 데에 불편이 없으며 햄버거와 샌드위치처럼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흘릴 염려가 없다. 또 한 줄에 2,000원을 넘지 않는 가격도 실용성을 증명하고 있다.

김밥이 번쩍이는 은박지를 입게 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기술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소풍, 운동회, 여행, 집회와 같이 ‘야외활동’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다면 같이?적용된다. 하지만 김밥은 공산품이 아니라 사람이 섭취하는 것으로 간결함과 실용성만 가지고 있어선 안 된다. 바로 음식으로서의 깊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깊이는 만드는 과정과 영양의 균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달걀을 잘 풀어 소금을 넣어 지단을 부쳐 길게 썬다.
두 번째-오이를 적당한 두께로 길게 썰어 단단한 부분을 그대로 쓰거나 소금을 넣어 살짝 볶는다.
세 번째-당근을 적당한 두께로 길게 썬 다음 소금을 넣어 프라이팬에 볶는다.
네 번째-햄을 적당한 두께로 길게 썰어 프라이팬에 볶는다.
다섯 번째-단무지를 적당한 두께로 길게 썬다.
여섯 번째-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깨소금, 소금, 참기름 등으로 간을 하여 김발위에 고르게 편 다음, 그 위에 준비한 재료들을 가지런히 놓는다.
일곱 번째-김발을 이용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만다.
여덟 번째-한입에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썬다.

과정에서 살펴봤듯이 들어가는 재료들은 하나하나 일일이 따로 볶아야 한다. 함께 볶게 되면 재료 각자가 익는 타이밍을 계산할 수 없으므로, 귀찮더라도 일일이 따로 볶아야 한다. 한 눈에 보더라도 실용성과 간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다.

이제 영양을 살펴보겠는데, 김밥 1인 1회 섭취분량(250g) 안에는 탄수화물(71.3g), 지질(6.6g), 식이섬유(0.8g), 철분(2.6mg), 비타민A(347.9㎍ R.E), 비타민C(11.4mg), 에너지(397kcal), 단백질(11.8g), 콜레스트롤(86.6mg), 칼슘(72mg), 나트륨(669mg), 비타민B2(0.22mg), 비타민E(1.91mg)이 들어가 있다.

앞서 나열한 열량만 놓고 보더라도 순두부찌개 한 그릇 정도의 열량과 맞 먹는다. 이를 통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철문도 세월이라는 ‘녹’을 통해 그 형태를 잃어가듯 앞서 말한 김밥의 다양한 정의도 그 형태를 잃어가고 있다. 간결함의 경우 ‘새싹 채소로 만든 샐러드’, ‘생채소돌돌’, ‘사과 샐러드’, ‘시금치 채소밭’이라는 수식어들이 ‘김밥’ 앞을 꾸미고 있어 당최 무엇인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또한,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그 두께는 너무 비대해졌다. 심지어 재료가 많아 스스로 터져버리기도 한다. 그로 인해 은색 옷을 입고 현장을 누비면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이 이 정도 되었다면 ‘여백의 미’나 ‘일본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음을 직감하실 것이다. 가격도 최대 4,000원까지 올라 저렴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김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어머니 옆에서 볼 수 있어 영양과 깊이를 실제로 느낄 수 있었으나, 작금의 현대 사회는 경쟁 사회다. “그 사회로 나가기 위해 무장을 해야 할 아침에 김밥 따위를 어찌 정성스럽게 말 수 있겠는가?”

“그렇다. 대부분 가구는 김밥극락에서 김밥을 구입한다. 과정을 보지 않았는데 어찌 영양과 깊이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재료로 우리를 속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의심은 생태 교란종인 편의점 삼각 김밥을 보면 더욱더 커진다. 음식이 아니라 돈을 남기기 위한 제품일 뿐이니 많은 시간과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로의 전봇대도 한 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김밥의 종류가 하나뿐인 시절 가격도 1,500원이면 하나였는데, 이제 메뉴판을 보면 상당히 복잡한 마음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내 수준에 비싼 김밥을 먹어도 되는가?”하는 마음 말이다. 3평짜리 직사각형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1,500원짜리 김밥만 먹을 인간이야?”라는 마음을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지 않은가?”

그런 측면에서 김밥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우리네 지갑은 얇아질 것이고, 김밥 속 재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의 곤궁함은 더 늘어날 것이다.?김밥은 이 사회의 행복을 가늠하는 ‘측량자’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