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당신은 어린이가 아니라 초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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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린이’ 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어린이라는 호칭을 접목해 탄생한 신조어로, 요리 초보자는 ‘요린이(요리+어린이)’,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주식+어린이)’, 등산 초보자는 ‘등린이(등산+어린이)’로 표현한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언어인지 모르겠지만 우후죽순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이 표현이 언젠가부터 불편했다. ‘왜 초보자에게, 굳이 어린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걸까?’

백파더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요리초보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요리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인데 나이 불문 참여자 모두를 ‘요린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실수하는 순간 누군가는 답답해하고 누군가는 어이없음에 웃지만 그들의 미숙함은 결국 ‘요린이’ 라는 이름 아래에 용서된다. (그럼에도 어르신에게는 존중의 의미인 ‘요르신(요리+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주어진다.)

▲MBC 백파더 갈무리

많은 사람이 시작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본인의 미숙함, 실수로 일을 그르칠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책임질 수 있는 위치라면 그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시작하겠다고 결정내림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판단일 것인데, 본인의 미숙함을 책임지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린이’라는 호칭에 숨어 면피하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어린이는 미성숙하다는 사회적 편견이 생길까 우려스럽다.

어떤 사람은 ‘어린이는 미성숙한 존재가 맞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성인보다 신체적으로는 미성숙하다 볼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어린이는 늘 초보이지 않고, 때론 성인보다 뛰어나기도 하다. (이 의견에 동의 되지 않는다면 SBS영재발굴단을 보시길 추천한다.) 또 어떤 사람은 처음 본 어린이에게 반말을 쓰고 ‘말대꾸’라는 표현을 들먹이며 의견을 묵살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의 생각을 무시하고 통제하려는 행위를 볼 때마다 심장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누구나 본인만의 생각과 사고가 있고 인권이 있음에도, 존중하지 않는 일부 어른들이 사실은 더 미성숙한 존재 아닌가.

유럽인종차별위원회 일반정책권고 제15호에 따르면,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나 신념, 국적이나 출신국가·민족, 혈통, 나이, 장애, 성,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등을 포함한 개인의 특성이나 지위에 기하여 이루어지는 비하나 이를 옹호·증진·선동하거나, 적대·비방, 괴롭힘, 모욕, 부정적 고정관념, 낙인찍기나 위협 및 이러한 모든 표현을 정당화 하는 표현”을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한다. 개인의 특성을 대상화하여 호칭으로 사용하는 ‘~린이’ 는 ‘나이가 어린사람은 미성숙할 것이다’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게 할 경향이 크기 때문에 혐오 표현의 일종이며,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이다.

많은 사람, 다양한 사람에게 노출되는 매체는 혐오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파급력을 갖춘 매체에서 존중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비싼 돈 들여 찍는 공익광고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더불어 이 언어를 사용해왔던 당신이, 혐오 차별적인 의도로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TV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이니까’, ‘유행이니까’, ‘표현이 귀여우니까’ 등의 이유로 사용해 왔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혐오차별적인 표현임을 알게 된 후에도 계속 사용하는 당신에게는, 아주 깊은 탄식과 안타까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