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김수영-되기] (6) 사랑

17:13

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글에서 인용한 ‘사랑’은 <김수영 전집 1(시)>에 수록됐습니다.

김수영은 자신의 영혼에서 혁명에 대한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 시를 썼다. 혁명이 “꺼졌다 살아났다”하는 위태한 형국인데도 뭔가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는 것은, “배웠다”가 암시하는 어떤 전조(前兆) 때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메마른 대지가 기다리는 폭우는 내리지 않지만, 밤하늘에 막전(幕電)이 나타나듯 아직은 설렘이 꺼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2연에서 “그만큼 불안하다”는 “살아났다”에 의해 역설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물론, 이것은 어떤 희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희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시의 세계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 시는 희망을 노래하는 양식이 아니라 설렘 또는 설렘의 그림자인 좌절의 파토스를 표현해야 한다. 스피노자에 기대어 말하면 “공포 없는 희망은” 없다.

내가 여기서 설렘과 설렘의 그림자인 좌절의 파토스를 읽는 것은 3연의 “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 때문이다. “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 바로 아직 꺼지지 않은 혁명에 대한 설렘과 설렘의 짝패인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불안은 영혼이 브라운운동 상태에 빠진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희망이나 절망은 운동이 아니라 운동의 종료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이 시는 혁명과 혁명의 변질 사이에서 김수영이 심한 떨림을 경험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시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느끼는 것은 제목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김수영은 혁명을 통해서 “사랑을 배웠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말이다. 그가 “불안”한 것은 배운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사랑을 몰랐으면 모르되 이미 사랑을 배운 상태에서 그 사랑을 자기 혼자 앓아야 한다는 슬픔의 정서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김수영이 이전 시에서 보여줬던 “고독”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정언과 잠언을 알지만, 김수영 시에 나타난 사랑은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가 월북한 김병욱에게 쓴 공개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때는 정말 ‘남’과 ‘북’도 없고 ‘미국’도 ‘소련’도 아무 두려울 것이 없습디다.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자유독립’ 그것뿐입디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 나의 온몸에는 티끌만한 허위도 없습디다. 그러니까 나의 몸은 전부가 바로 ‘주장’입디다. ‘자유’입디다……. ‘4월’의 재산은 이러한 것이었소. 이남은 4월을 계기로 해서 다시 태어났고 그는 아직까지도 작열하고 있소. 맹렬히 치열하게 작열하고 있소.”

물론, 1954년 작 「나의 가족」에서는 “고색의 창연한 우리집에도/어느덧 물결과 바람이/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면서 “이것이 사랑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전쟁 통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는 감격과(“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세계에 대한 고뇌(“나의 위대한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는 일) 사이에서 벌어진 분열 때문에 쓸쓸한 정조를 자아낸다.

하지만 김수영은 4·19혁명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혁신한다. 그 첫 고백이 바로 이 시에서 드러나며, 1967년에 쓴 「사랑의 변주곡」에서는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이라고 진술하면서 그의 ‘사랑’이 바로 4·19혁명에서 연원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김수영에게 사랑은, 존재와 세계의 혁명을 동시에 수행하는 에로스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에 대한 김수영 특유의 인식을 살필 필요가 있다. 「사랑」은 1961년 작이고 「사랑의 변주곡」은 1967년 작인데, 두 작품에서 공히 드러나는 사랑의 모습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에서 사랑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이라고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사랑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 심어진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사랑의 모습에 가까운 것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는 데서 드러난다.

그리고 「사랑의 변주곡」에 진술된 사랑은, 앞에서 인용했듯이, “눈을 떴다 감는 기술”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그 의미나 내포가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운동하는 것이며 구체적 맥락 속에서 그 의미가 재충전되는 것이다. 물론, 재충전은 방전과 동시에 일어나는 운동이다. 앞에서 말했듯 「사랑」에서는 사랑을 좌절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느끼고 있지만, 「사랑의 변주곡」에서는 당당하게 “욕망”을 통해 “사랑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는 김수영이 「사랑」 이후에 일어난 혁명의 타락과 반혁명을, 그리고 그로 인한 짧지 않은 침잠을 통과한 다음에 도달한 지점이다.

「사랑」 이전의 사랑은 김병욱에게 썼듯이 “작열” 그 자체였지만, 「사랑」에서의 사랑은 두려움과 한몸이 되었다가 「사랑의 변주곡」에 와서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도 강 건너의 “암흑”도 “가시밭, 넝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랑의 변주곡」은 「사랑」의 변주곡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고 보면 김수영이 5·16 쿠데타 이후 ‘신귀거래’ 연작에서 보여주었던 퇴행과 그것을 뚫고 나와 “일”을 통해 사소한 일상을 긍정하려 했던 시간 모두가 김수영에게는 사랑의 ‘의미’가 전적으로 교체되는 시기였을 수도 있다.

예컨대 「현대식 교량」에서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이 시에서는 분명히 그 “엇갈리는 순간”인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사랑을 배운다”라고 썼다)이나 「이혼 취소」에서 “국회의장 공관의 칵테일 파티에 참석한/천사 같은 여류작가의 냉철한 지성적인/눈동자는 거짓말이다”며 “그대가 흘리는 피에 나도/참가하게 해다오”라고 말할 때 사랑은 변함없이 변주되고 있지 않았을까?

만일 김수영의 시를 사랑을 중심으로 살피려는 연구자가 있다면 「사랑」에서 시작해 「사랑의 변주곡」에서 끝나는 시편들을 ‘사랑’이라는 더듬이로 다시 읽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사랑의 변주곡’이란 제목을 택했을 때는 다른 내밀한 이유가 혹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러한 추정성 발언이 갖는 위험은 있지만, 아무래도 내게는 「사랑」과 「사랑의 변주곡」이 연결되어 있단 느낌이다.

김수영이 「사랑」에서 두려움을 토로했다면 그것은 물론 「사랑」 이전에 보여줬던 혁명에 대한 “작열”했던 자신의 파토스의 후유증일 공산이 크다. 그 직전에 쓴 「눈」이라는 시에서는 “저항시는/방해로소이다/저 펄 펄/내리는/눈송이를 보시오”라며 “저항시” 자체를 의미절하하고 물활론적인 지경까지 나아간다.

김수영에게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기 때문에 “저항시”라는 것은 실제의 “민중”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살아 있는 민중은 “저 펄 펄/내리는/눈송이”와 같다. 다시 말하면 “저 펄 펄/내리는/눈송이”와도 같은 “민중”이 있는 한 차라리 “저항시는/더욱 무용”하니 “눈 오는 것만 지키고 계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마저 민중의 혁명에 굴복하는 일이 사랑이며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김수영에게는 사랑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유로 인해서―당연히 장면 정부의 반동 때문에―그 순간이 깨어져 버릴 것 같은 예감이 이 시를 썼다. 그리고 혁명이 곧 사랑이었던 것은, 그의 영혼을 통째로 불구덩이에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꺼졌다 살아났다”하는 사랑이 「쌀난리」에 와서는 “이만 하면/아직도/혁명은/살아 있는 셈이지”라는 안간힘으로, 다시 “나의 주위에 말짱 <반동>만 앉아 있”(「황혼」)는 참담함을 지나, 「<4·19>시」에서는 완전한 무력감으로 변질되어 가고 말았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혁명을 깡그리 짓밟은 5·16쿠데타였다. 이 사랑의 급격한 실패 앞에서, 사랑의 폐허 한가운데서 시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김수영이 좌절하지 않았다면 김수영의 사랑은 가짜였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김수영의 사랑 실패에 대한 예감은 전적으로 장면 정부 때문이었을까? “나의 주위에 말짱 <반동>만 앉아 있어/객소리만 씨부리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 반어이다)(「황혼」)는 사실에 대한 진술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쩌면 그가 사랑의 실패를 예감하게 한 보다 더 직접적인 계기는 장면 정부의 “개수작”(「육법전서와 혁명」)이라기보다, 가까운 사람들, 문단의 문우라든가 가족들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 김수영은 혁명을 겪고, 사랑에 돌입했어도 고독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혁명도 고독해야 했던 것’(「푸른 하늘을」)이다.

“작품 전문은 저작권자와 협의하에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