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 ‘퍼스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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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2012)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순간은 당시 전 세계 5억 명의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그의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인류의 최초 달 착륙’은 공상과학(SF) 영화의 소재이지만 이를 그린 영화는 거의 없었다. ‘미국이 가지도 않은 달에 다녀왔다고 조작했다’란 음모론이 달 착륙 이후 5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지 않아서다. 달 착륙은 꾸준히 증명돼 왔지만 아직도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의심을 지우지 않는 음모론자들이 있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첫 번째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2018년 개봉했다. <라라랜드(2016년)>를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재결합한 <퍼스트맨>이다. 반세기 가까이 지나 영화로 만들어진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는 다소 의외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영상미를 뽐내고 상상력을 자극하던 영화들과 결이 다르다. <퍼스트맨>은 영웅주의로 점철된 웅장한 달 정복기나 감성을 끌어올린 우주 배경 드라마 등 어느 쪽과도 거리가 멀다. 항공우주기술역사학자 제임스 R 핸슨이 펴낸 전기 <퍼스트 맨 : 닐 암스트롱의 일생>이 원작이다.

영화는 역사적인 인물의 일대기를 위대한 인류의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우주 개척의 역사에서 한 인간이 감내해야 했던 희생과 그 가족이 껴안아야 했던 고뇌를 입체적으로 다뤘다. 닐에겐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깊이 배어있다. 그는 뇌종양을 앓던 어린 딸을 떠나보낸 뒤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매달린다. 잃어버린 삶의 의지를 도전에 쏟아 부은 것이다.

닐은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뒤 목숨을 건 훈련을 거듭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와 놀아주고 아내와 함께하는 일상을 보낸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출근길에 나선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숱하게 잃는다. 출발하면서, 때로는 불시착해 동료들은 죽어 나간다. 무모한 도전에 대한 반대 여론에도 부딪혀야 한다. 늘 기자회견장에 서서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멀게만 보였던 일상과 우주의 간극은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점차 하나의 비극으로 겹쳐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닐은 나약한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 언제 가족 곁을 떠날지 몰라 혼란과 두려움에 휩싸인 모습이다. 달 착륙을 위한 아폴로 11호를 타러 가기 전 인사도 없이 떠나려고 하지만, 아내의 권유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사를 두 아들에게 힘겹게 전한다. 1961년 소련(옛 러시아)이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소련을 추월하기 위해 벌인 우주개발에 희생된 영웅의 이면이다.

<퍼스트맨>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지 않는다. 그래서 달 착륙 당시 성조기를 힘차게 꽂는 모습도, 멋진 우주선이 하늘로 멋지게 뻗어 오르는 장면도, 위풍당당하게 헬멧을 들고 우주선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도 없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위험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우주비행사들의 고난과 역경이 담겨 있다.

기존 SF영화들과 또 다른 점은 그저 광활한 우주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하게끔 한다는 데 있다. 조종석에 탑승하는 닐은 인류의 꿈을 짊어진 영웅이 아니다. 심적 부담과 긴장, 고통을 견뎌내는 인물이다. 닐이 우주선 조종석에 앉을 때 화면은 1인칭으로 바뀐다. 지름이 약 3m에 불과한 비좁은 우주선에 몸을 실은 성인 남성 3명이 느꼈을 갑갑함과 공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면은 폐쇄적인 우주선 조종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불안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으로 계기판을 응시하는 조종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훑어낸다. 비좁은 우주선의 폐쇄감과 온몸을 뒤흔드는 속도감을 나타내는 쇳덩이 특유의 진동,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 그 사이로 들리는 거친 숨소리, 불안에 휩싸인 두 눈을 통해 마치 관객들이 조종실 안에 함께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물이 느꼈을 모든 감정은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래서 공포영화보다 무섭다는 후기도 종종 보인다.

영화는 무중력 상태를 만끽하는 우주인들의 모습이나 시공간을 넘어설 정도로 탁 트인 우주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않는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진입할 때의 광활한 풍광은 우주선 창문을 통해 잠시 보여준다. 하이라이트는 달에 착륙할 때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 광대한 지평선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천신만고 끝에 닐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은 정지화면처럼 한동안 고요하다. 관객도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정공법으로 이어진다. 시제가 뒤섞이거나, 플롯이 복잡하지도 않다. 이는 인류의 영웅의 이면에 존재한 상처를 가만히 보고 귀 기울이라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고요의 바다’에 도착한 닐은 그곳에서 아픔을 묻는다. 소리도, 산소도 없는 달에 홀로 선 그는 고독하기만 하다. 숭고한 순간에 그가 느꼈을 감정은 감동이 아니었다. 달은 밝게 빛나지 않는다. 잿빛 암석만 가득하다.